새로 생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가는 길은 즐겁습니다. 더군다나 ‘공예’를 다루는 박물관입니다. 아름다운 것들이 즐비할 것이라는 기대로 서울공예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예상대로 공예 작품 뿐만 아니라, 박물관의 건축과 조경, 가구와 조명 등 인테리어 환경과 주변의 풍경도 아름다웠습니다. 게다가 공예박물관에는 아카이브실도 있습니다. 박물관은 왜 아카이브실을 만들었을까요. 어떤 관점과 시선으로 아카이브실을 조성하고 운영할까요. 한편 요즘 많은 박물관/미술관의 ‘보이는 수장고’, ‘개방형 수장고’와 아카이브실은 어떻게 다를까요. 서울공예박물관 아카이브실을 다녀왔습니다. 람다의 리뷰 네 번째입니다.
공예아카이브실은 전시2동에 있습니다. “박물관 소장품을 기반으로 입수한 유무형의 공예기록과 박물관의 전시, 연구, 교육 등의 활동에서 생산, 수집한 박물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고, 보존과 관리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기록물 실물도 열람할 수 있는 개방형 수장 공간”이라는 것이 박물관의 공식 설명입니다.

박물관에서 소장품과 기록(아카이브)은 구분됩니다. 기록은 소장품이라는 정제된 콘텐츠를 둘러싸고 있는 맥락, 레퍼런스, 참고자료의 성격으로 읽힙니다. 이것은 위계의 상하를 다투는 문제는 아닙니다. 소장품이 전시나 연구 등에 활용되면서 관련 아카이브를 계속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공예아카이브실은 ‘남겨진’ 유물과 함께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기록도 수집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합니다. 박물관 아카이브의 지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아카이브는 종종 모호하거나 여전히 정립 중인 어떤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박물관 아카이브의 가능성도 있겠죠.
아카이브실에 들어가려면 에어 매트를 밟고 지나 티켓팅을 해야 합니다.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는 곳이지만, 정식 허가를 얻어 입장하고 있다는 실감을 감각으로 전달합니다. 키오스크에 출입자 정보를 입력해서 티켓을 받아 QR코드를 출입문에 스캔하여 입장하는 이 특별한 관람 경험은 잘 설계되어 있습니다. 관리와 관람 사이의 균형감이 좋습니다. 자료의 안전과 보안을 위해 절차를 밟지만, 매끄러운 경험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입장하면 언론인이자 민속 문화 연구자인 고 예용해 선생을 기억하는 <아임 프롬 코리아>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예용해 선생이 모은 아카이브가 벽면을 가득 그야말로 ‘아카이브스럽게’ 채우고 있습니다. 그의 라이카 M6 카메라, 만년필과 잉크, 빼곡한 기록으로 남은 수첩과 티켓, 뮤지엄의 브로슈어 등도 쇼케이스에 정돈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의 관점에서 이것은 유물이나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아카이브입니다.

명확하게 공간으로 구분하지는 않았지만 원본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테이블의 풍경은 흥미롭습니다. 적층식 플라스틱 박스, 여러 형태의 기록을 보관할 수 있는 상자, 무심하게 손수레에 실려 있는 전개도처럼 펼쳐져 있는 상자, 그것들이 쌓여 있는 개방형 서가(레어로우 rareraw의 시스템입니다)가 있습니다. 이곳은 아키비스트의 작업 공간이면서 기록정보의 열람 공간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생생한 느낌을 전달합니다.

열람 테이블 반대편에는 따로 구분된 ‘작업실’이 있습니다. 미세한 굴절의 유리벽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안쪽이 완전히 선명하게는 보이지 않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세심하게 유리벽 재질을 골랐을 설계자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공간을 관람하게 하면서도 아카이브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적당히 가리는 의도가 있었겠죠? 관람자는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아카이브의 일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거나 옮겨담거나 세척하거나…본격적인 보존과학의 일은 아니지만 그런 상상만으로도 근사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특히 유리벽에 붙은 각종 문서 기록의 ‘어지러운’ 풍경은 훌륭한 연출입니다. 관람객은 이 공간을 들여다보면서 아카이브를 신뢰하게 되는 기획자의 내러티브에 동의하게 됩니다. 유물도 기록도 아닌 일 자체를 보여주고 설명하는 일이 최고의 마케팅이고 브랜딩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카이브실은 보이는 수장고를 넘어 거닐 수 있는 수장고입니다. 원래는 폐가식으로 운영하는 아카이브의 서가를 관람객이 자유롭게 ‘배회’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입니다. 의도하지 않았던 세렌디피티(serendipity)와 발견이 아카이브에 있습니다. 서가는 여러 종류의 기록을 담기 위해 다양한 규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컬러도 공예박물관 전체 브랜드 아이덴티티 전략에 부합합니다. 특히 반투명의 아카이브 박스나 도면과 그림 등이 보관되어 있을 것 같은 넓은 중성 상자가 통째로 격납된 서가를 거닐며 둘러볼 수 있습니다. 공예박물관의 다른 전시실처럼 아카이브실도 많은 설명을 전달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아카이브실에는 여러 가지 아카이브, 장비, 보존용품, 디스플레이, 가구 등이 있지만 밀도가 적당합니다. 경험의 피로도가 높지 않죠.

서울공예박물관 아카이브실에는 그밖에도 흥미로운 설명 장치나 콘텐츠를 보조하는 도구와 장비가 갖춰져 있습니다. 보통의 라이브러리와는 확실히 다른 정체성과 목적이 보입니다. 아마 이 공간을 상상하고 설계하고 만들었던 사람들의 의도가 그런 것이겠죠. 완벽히 깔끔하게 정제되지는 않았지만, 풍부한 자료를 보여주고 해석과 큐레이션의 영역은 열어두는 아카이브, 그 아카이브에서 얻는 연결과 영감…
정성을 들인 공간에 아카이브라는 이름을 붙인 곳을 다녀왔습니다. 이런 감각적 경험은 오랜만이었습니다. 그 아카이브가 박물관 속에 있어서 맥락은 더 흥미로웠습니다. 공예 아카이브실이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대규모 공간에서 전개되는 전시가 아니더라도 박물관의 ‘Behind the scene’인 아카이브에는 흥미진진한 뒷 이야기가 많겠죠.
서울공예박물관 웹사이트 SeMo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