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다의 Re:view #5: 보존과학, 마법과 과학의 경계

“나는 망가진 책의 기억을 관찰하고, 파손된 책의 형태와 의미를 수집한다. 책 수선가는 기술자다. 그러면서 동시에 관찰자이자 수집가다. 나는 책이 가진 시간의 흔적을, 추억의 농도를, 파손의 형태를 꼼꼼히 관찰하고 그 모습들을 모은다.”

얼마 전 재영책수선의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각자의 사연과 추억, 기억이 담긴 망가진 책과 만화책. 오래되어 바랜 결혼 사진 앨범, 손으로 쓴 일기장 등 재영책수선에 의뢰하는 기억의 뭉치들은 다양했습니다. 보존과 복원 과학, 지류 수선과 화학 공식의 어려운 말은 없었습니다. 대신 책에 남은 낙서의 흔적이 떠올리는 어린 시절, ‘무너져 가는 책의 시간’과 안타까움, 책 수선가라는 직업의 보람과 이면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안에 담긴 보존과 복원 과학의 세계는 자못 흥미롭습니다. 마법같은 일들이 가득합니다. 찢어진 종이를 온전하게 되살리고, 누렇게 바랜 문서도 원래의 제 모습에 가깝게 돌아옵니다. 인문학만 공부한 자들은 결과물에 놀랄 뿐입니다.

보존과학은 아카이브의 세계에도 있습니다. 시간 속에서 풍화되어 일그러진 문서, 사진, 박물 등을 되살리고 미래를 견디게 하는 일입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이 일은 표준화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보존과 복원의 대상은 매번 낯설어서 기존의 방법을 완고하게 고집하는 일이 꼭 미덕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정규화된 프로세싱 대신 가볍게라도 챌린지가 있는겁니다. 겨우 1cm의 종이를 다시 살리기 위해, 기록이 만들어진 시기의 재료를 연구하고, 데이터를 모으며 적합한 처리 방법을 고민합니다. 이런 일은 들이는 노력만큼이나 결과도 극적인데 과정은 마법의 시약처럼 숨겨져 있곤 합니다. 그런데 최근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과학자들이 실험실 밖으로 나와 자신의 일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합니다.

암스테르담의 라익스뮤지엄(Rijksmuseum Amsterdam)은 렘브란트가 17세기에 그린 Night Watch의 보존복원 연구와 과정을 생중계 했습니다. 이 라이브 자체가 화제였습니다. 보존과학의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준 박물관의 시도는 <Operation Night Watch, Follow the research and conservation project>에서 볼 수 있습니다. 채널도 다양합니다. 뮤지엄 웹사이트, 유튜브 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TV로도 알립니다. 보존가(conservator)와 함께 데이터 과학자, 분석가가 지혜를 모아 데이터를 분석하고 복원과 향후 보존의 방향까지도 예측합니다. 이 라이브는 스펙터클합니다. 마법과 과학의 경계란 아주 얇은 것처럼 보이죠. 매끈하게 처리 완료된 결과물을 전시로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고, ‘Behind the scene’으로 방문객과 잠재 고객에게 손을 내미는 박물관의 결정이 놀랍습니다.

미국 워싱턴 D. C. American Art Museum의 맨 위층에는 Lunder Conservation Center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이 곳에서 느꼈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보존복원 센터의 복도와 실험실은 쇼윈도처럼 보였습니다. 실험실 안에서는 과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근사해보이는 일’의 광경입니다. 과학은 신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저 박물관으로 입고된 오브젝트는 신뢰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보호되는구나’ 라고 생각했죠.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이런 신뢰는 박물관 펀딩으로도 연결되고, 브랜딩과 마케팅의 효과를 높입니다. 사실, 우리 일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마케팅 중 하나일 겁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열렸던 <보존과학자 C의 하루>(2020)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보존과학의 세계를 소개했습니다. 미술관의 과학적 조치와 과정 소개는 물론이고, 단정하게 정리해서 아름다운 보존 도구, 복원과 수복을 위한 노력, 과정의 꼼꼼한 기록, 보존과학자 C의 서재…마법처럼 보이는 과학의 아름다움은 미술관 전시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인문학과 보존과학이 융합된 기술미술사의 현장입니다.

팬데믹 이후 뮤지엄, 갤러리, 미술관은 사후적 보존과 복원과 함께 예방보존(preventive conserv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예방보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은 영역입니다. 약물 처방이나 물리적 조치를 가급적 줄이려는 노력, 수장과 보존환경 정비와 관리, 더해서 교육과 강의 등 참여 프로그램 등도 포함한다고 합니다. 팬데믹 시대의 문화기관은 방역과 소독의 잠재적 위험성을 감지하고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더해서 관람의 에티켓과 매너를 알림으로써 더 많은 작품이 더 온전히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일관된 노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뮤지엄과 달리 기록을 손으로 직접 만지는 아카이브에서 활용과 보존은 늘 토론의 대상입니다. 서비스 부서는 적극적인 활용을 위한 개방적 정책과 실무를 주장하고, 보존 부서는 안전한 보존과 보관을 위해 더 조심히 다뤄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 토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그 자체로 건강한 일입니다. 토론 속에서 정책과 기술, 실무는 더욱 발전할 테니까요.

* 보존과학과 관련해서 아래의 링크에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해보세요.

  1. 재영책수선
  2. Operation Night Watch(Youtube)
  3. Lunder Conservation Center
  4. 국립현대미술관, 보존과학자 C의 하루, 2020
  5. 조자현, 미술관에 작품이 사라진다면, 경기문화재단
  6. 서울기록원 소장 기록물 복원(정다영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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