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차차의 뉴스레터에서 『도서관 환상들』 (2021 / 저자 아나소피 스프링어, 에티엔 튀르팽)이라는 책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몇 가지 사례 중 특히 흥미로운 기관이 있었습니다.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 이하 AAA)입니다. 책에서는 2014년 이루어진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관을 소개했는데요.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난 현재 AAA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습니다. 또 인터뷰에서 소개한 프로젝트 외 AAA의 컬렉션, 웹사이트의 구성을 더 깊이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궁금한 내용을 검색해 얻은 자료들을 정리하여 소개합니다.
책장 하나 규모의 서재에서 시작한 아카이브

홍콩에 소재한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는 2000년 클레어 수(Claire Hsu)와 존슨 창(Johnson Chang)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기관입니다. 겨우 책장 하나의 규모에서 시작한 AAA는 22년이 지난 현재 11만 점 이상의 온, 오프라인 기록물을 보유하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아트 아카이브로 성장했습니다. 홍콩 본점에 이어 각각 2009년, 2016년 뉴욕과 뉴델리에 문을 연 미국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 in America, AAA in A)와 인도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 in India, AAA in I)는 AAA의 글로벌 허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서재가 어떻게 세계 미술의 지형과 흐름을 바꾸는 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AAA는 아시아 미술의 현주소를 기록하고 누구나 접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취지로 설립되었습니다. AAA의 초기 구성원들은 AAA가 미술기록을 보관하는 기능을 넘어 아시아 현대 미술의 연구를 주도하고 지역 커뮤니티에 예술적 실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관으로 성장하길 바랐습니다. 설립 당시부터 이러한 미션과 비전에 따라 움직였던 AAA는 이미지나 문서 등 일반적인 미술기록의 수집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 토크와 강연, 심포지엄 디지털 자료를 풍부하게 갖추며 규모를 키워 나갔습니다. AAA가 소장한 기록은 AAA가 발행하는 온라인 저널 Field Notes, 리서치 프로젝트, 심포지엄, 전시 및 교육 등에 활용되며 미술계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활동을 장려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예술적 실천을 이끌어내는 아트 아카이브
지가은(2013)은 아시아 미술 아카이빙의 현주소를 바라보는 AAA의 문제의식을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번째는 오늘날 아시아 현대미술의 양상을 기록하는 과정과 결과물이 더 이상 한 국가의 한정된 범위 안에서 국소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복합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서양 편중적인 미술사의 서술 속에서 다소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아시아 현대미술의 위상은 정보 부족으로 인해 그 의미가 저평가되거나 왜곡되기 쉽다는 점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기록을 보관하는 기능을 갖춘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AAA가 주체가 되어 국가 간의 협력과 교류를 통해 미술계에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는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이처럼 기존 미술의 지형도에서 인풋과 아웃풋의 흐름을 뒤집는 것이 AAA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카이브가 어떻게 새로운 전환을 위한 수단으로,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아시아 미술의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일례로 AAA의 교육&참여 부서(Learning and Participation Department)의 공공교육 지원 활동이 있습니다. AAA의 교육&참여 부서는 홍콩의 미술 교과과정 개편 과정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학습자료와 현장 교사들의 낮은 이해도에 관한 문제의식을 근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450여 개에 이르는 홍콩의 중학교와 협력하고 있는 이 부서는 아카이브에 있는 현대 미술자료가 공공교육에 포함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생생한 자료를 통해 홍콩의 사회, 문화적 조건과 삶의 문제를 통합적이고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 밖에도 AAA는 기관에서 보유한 컬렉션을 연결하고 해석할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방대하지만 유연한 컬렉션
소장품과 아카이브는 미술관이 표방하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재료와도 같습니다. AAA 역시 아카이브를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만큼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합니다. 가장 오래된 1923년 기록부터 2000년대까지 AAA는 아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작가들의 기록을 약 11만 점 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AAA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아트 아카이브를 지향하는 만큼 디지털화를 중요한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소장자료를 디지털화하여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아시아 미술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 있는 AAA의 웹사이트는 이러한 전략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잘 구축된 디지털 플랫폼은 AAA를 특별하게 만드는 온라인 컬렉션이 구성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성은 보통의 컬렉션과는 달리 AAA는 국경이나 지리적 경계를 넘어선 컬렉션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어떤 문제는 그 문제가 발생한 국가를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상과 지식은 국경을 넘어 스며들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변이되고는 합니다. 아시아 아트의 지형판도를 바꾼다는 목적의식과도 부합하는 이러한 특징은 기록의 유형이나 생산지에 관계없이 병렬적으로 배치된 컬렉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록관리에서 출처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들에게는 파격적인 방식입니다. 물론 검색 방식을 얼마든지 국가나 생산연도, 생산기관이나 작가로 검색할 수 있는 온라인 컬렉션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배치된 컬렉션은 우리가 한계지었던 지리적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연결점과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서로 다른 국가와 유형의 자료들이 배치된 것을 볼 수 있다.>
네트워크의 교점 그리고 과제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AAA는 어떤 아트 아카이브의 지형을 그려낼 수 있을까요? AAA가 지향하는 조직 구조는 이 기관의 방대하고도 유연한 컬렉션을 닮아 있다는 사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AAA의 연구·프로그램 디렉터로 활동했던 하마드 나사르(Hammad Nasar)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조직 개편은 무척 다양한 업무를 포괄하는데, 본질은 구성원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무슨 일을 맡길지 구조화하는 것이다. 조직 구조는 계속 변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조직이 발전함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 가능한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조직 구조는 조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신호를 안팎으로 발산한다. 해서 AAA는 조직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평가하며 구조를 정비해 나간다.”
앞서 소개했듯 AAA는 홍콩에 본점, 미국과 인도 두 곳에 지점을 두고 있는 구조입니다. 하마드 나사르는 이러한 구조가 현지에서 활동하는 중개인이라는 필터를 통해 보여지는 모습으로만 어떤 지역을 파악한다는 한계를 지닌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AAA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맞지 않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파악한 것입니다. 하마드 나사르에 따르면 AAA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조직 구조는 본점과 지점으로 구성된 기업식 구조가 아닌 교점과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유기적 구조입니다. 본점에서 지점으로 획일화된 규정과 지침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된 틀 안에서 대략적인 가이드만을 공유하고, 각 조직이 자율적으로 인력을 구성하며 운영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AAA는 이러한 구조를 완전히 이루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아의 경계를 넘나 들면서도 유연하게 계층을 수정하는 컬렉션처럼 AAA의 조직도 과연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요?

앞으로도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를 주목하고 싶은 이유는 아카이브가 어떻게 새로운 방법론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전통적 관점과 달리 물리적으로 고정시킬 수 없는 아카이브는 불안하지만, 유연하게 변화하는 컬렉션은 아카이브가 가진 도구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계 너머까지 확장되고 공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카이브가 단지 기록만을 보관하거나 일방적인 해석만을 제시하는 곳이 아니라면 AAA에게 던진 질문을 똑같이 되물을 수 있습니다. 정확성과 완전성에 대한 환상을 버렸을 때 아카이브에 어떤 상상력이 피어날 수 있을까요? “어떤 순수주의자에게는 AAA가 전혀 아카이브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좋을 대로 불러달라.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말로 정의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실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마드 나사르)
※ 참고자료
아나소피 스프링어, 에티엔 튀르팽, 『도서관 환상들』, 만일 출판사, 2021
이한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국제 심포지엄「미술관은 배움의 장소가 될 수 있는가?」2019
지가은, ‘아카이브/기관 004.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 Asia Art Archive‘, 미팅룸, 2013
Asia Art Archive 웹사이트
Yunyi Lau, An Interview With Alexandra A Seno, Head of Development of Asia Art Archive, theArtling, 2016
Mark Rappolt, ‘We’re Shaped by Our Memories’: Claire Hsu on Two Decades of Asia Art Archive, ArtReview,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