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다의 Re:view #7: 새러데이 나잇 세미나 리뷰

세미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 가르치고 배우는, ‘수평적 공유’의 공부 방법입니다” – 정승연, <세미나책>

엉겁결에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권유를 진지하게 받아 ‘우연하고 충동적인 용기’를 내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동료들에게 ‘새러데이 나잇 세미나’를 제안했습니다. 봄부터 시작한 이 세미나를 돌아보고 기록했습니다.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곧 기말고사입니다. 제안을 받아준 세미나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의 시대입니다. 지금은 완화되었지만 1학기가 시작되었던 3월에는 ‘디폴트’가 줌(zoom)이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로 공부하는 환경은 낯설었습니다. 저는 ‘인강’ 세대가 아닙니다. 줌 속의 동료들은 같은 크기의 사각형 속에 들어 있었고, 지금 누가 말하고 있는 것인지를 열심히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알기 힘들었습니다. 줌 속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말로 자신의 말을 시작했습니다. “제 목소리 잘 들리시나요?”

녹화도 되고 실시간 채팅으로 파일을 보내고 질문도 할 수 있고, 귀여운 이모지(emoji)로 상대의 말에 반응할 수 있지만, 공부란 의견(말)을 나누고 섞는 과정이고, 말하는 것과 듣는 것 사이에서 작은 스파크가 튀면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 못내 아쉬웠습니다. 스무명 가량의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니 말하기와 듣기는 정해진 순서가 아니면 할 수 없었습니다. 대면 수업에서는 섞이는 게 자연스러웠던 대화가 줌에서는 소음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이내 수업 형식은 교수님의 콘텐츠 전달(송출), 학생들의 ‘시청’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준비하는 것이라지만 어렵게 모아 낸 등록금 생각이 났습니다. “세미나를 해야겠다”

정승연은 <세미나책>에서 세미나가 두 가지 면에서 좋다고 합니다. 하나는 “의식적인 공부 그 자체가 주는 효과”입니다. “공부를 시작하고 유지해서 마무리하는 과정과 여정이 주는 즐거움과 괴로움”입니다. 그렇죠. 해본 사람들은 알죠. 공부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것은 의식적이고 (반)강제로 지켜야 하기도 한 것이어야 더 진하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을요. 다른 하나는 세미나를 통해 우리는 “네트워크에 접속”하게 됩니다. 어려운 일(공부)을 만났을 때 “고립이라는 편리한 답보다 참여해서 연결되는 어려운 길을 일부러 선택하고 ‘타인의 해석’을 들어 볼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죠. 비록 작은 네트워크지만, 학교에서 수업에서 아는 사람이 생겼다는 이 환대의 감정은 그것 자체로 귀합니다. 세미나를 돌아보니 그렇습니다.

A 수업의 게시판에 텔레그램 채팅방 링크를 공유했습니다. “세미나 하고 싶은 사람 모여라.” 텔레그램의 그룹 채팅은 화상회의를 지원하는데 비디오는 끌 수 있습니다. 그게 필요했습니다. 이전에 몇 번 활용을 해보니 화면은 끄고 오디오로만 채팅하는 것이 자료 읽기나 집중에 유리하더군요. 마침 녹음 기능은 필요했고, 귀여운 ‘라이언’ 이모지는 불필요했습니다. 5명이 모였습니다. 박사과정 3명, 석사과정 3명입니다. 세미나에 딱 좋습니다. 발제 순서가 격주 정도로 돌아오고, 거의 매 시간 말할 기회가 생기니까요. 세미나 진행 규칙(이랄 것도 없는)은 간단했습니다.

토요일 8시에 텔레그램 그룹 채팅으로 모여, 1시간(최대 1시간30분을 넘기지 않는다) 동안 돌아가며 표준을 읽고, 논문을 읽을 경우에는 2편 정도 발제를 준비해서 토론

교수님이 권해준 표준을 먼저 읽기로 했습니다. ISO-15489, ISO-23081, ISO-16175. 세미나 진행을 위해 모임에 앞서 혼자 소리내어 읽어보았습니다. 10분을 읽어보니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눈으로만 대각선 읽기(훑기)에 가까운, 요약 정리와 핵심 내용 추출을 위한 직장인의 실용 독서가 아니라, 입으로 소리를 내어 꼼꼼하게 한 문장씩 읽어보면, 내 입이 텍스트를 읽으면서도 ‘찰나의 잡생각’에 빠질 수도 있더군요. 10분을 집중해서 4.5페이지를 읽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사이클을 세 번 돌면 한 학기가 지나가겠구나, 생각을 했지만 건조한 표준을 몇 주 읽으니 아쉬움은 남더군요. 이 표준의 지향과 이상이 정책과 실무에서는 어떻게 적용될까, 앞서 공부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했을까도 궁금했습니다. 먼저 표준을 해설한 논문도 읽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15489는 2016년 개정으로 평가, 정보자산으로서의 기록의 성격 등이 추가되면서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기록학 이론의 권위자인 S 선생님(교신저자)의 논문, 개정판의 주요 특징을 정리한 Y 선생님(교신저자)의 논문 두 편을 읽었습니다. 한편 16175를 분석한 J 선생님의 논문은 다소 어려웠고 23081을 다룬 논문은 거의 없었습니다. 표준이라는 ‘드높은’ 기준서를 먼저 읽고 공부해서 논문으로 정리해주신 선생님들께 새삼 존경을 표합니다.

그 사이 교수님의 배려로 몇 번의 특강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현실에서 C, P, S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운영되는지, 버튼과 기능 설계에 녹아 있는 기록관리의 원리와 규약은 무엇인지가 궁금해졌고 관련된 논문을 찾아 멤버들에게 제안했습니다. 2017~2018년 국가기록원의 차세대 기록관리 설계 프로젝트는 결과가 몇 편의 논문으로도 정리되어 이론과 제도, 실무와 기술의 흐름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실이 이런데 법과 제도는 왜 뭉그적대고 있을까’, ‘정보이고 자산이기도 한 기록이라는데 보수적 실무 관행과 레거시 시스템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음은 계속됐고 세미나 시간은 늘 부족했습니다.

지난주에는 ‘기록 평가’를 공부했습니다. 평가는 우리 보다 앞서 기록관리를 한 영미권의 기라성 같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과 관점이 분분합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는 더 어려워졌는데 업무평가, 사전평가, 기능평가, 레코드센터에서의 준현용 기록 평가, 아카이브에서의 가치 평가 등 기록의 생산부터 종착까지의 거의 모든 프로세스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고작 두 편의 논문을 읽었지만 기록 평가는 우리에게 ‘공부할 것을 공부하는'(정승연, 같은책, p.73) 세미나의 모습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제 참고문헌과 참고문헌의 참고문헌을 따라 공부하면 됩니다.

곧 종강입니다. 고작 10번의 세미나로 겨우 몇 가지 용어를 익혔고, 앞서 공부한 선생님들의 성함을 확인한 정도입니다. 지금 세미나 멤버들에게 방학에도 계속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표준도 몇 사이클 더 읽고, 교수님의 권고대로 Moreq2010 등 원전도 고통스럽게 읽어보고, 논문도 발제하면서 방학을 보내겠다니! 벌써부터 즐겁고 고통스럽습니다. 방학에도 다음 학기에도 새러데이 나잇 세미나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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