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가치가 있는 일이 기록되고 역사로 남아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도록 하는 것. 그렇게 하는 데에 일부분이라도 기여하고 싶어서 기록학을 선택했고, 재밌게 공부해왔고, 어느새 경력이 두 자리 수가 되는 날이 머지 않은 아키비스트(굳이 분명하게 말하자면 아키비스트보다는 레코드매니저에 훨씬 가깝지만)가 되었다.
즐거울 때도 있고, “분명 학생일 때에는 그렇게 실제로 해보고 싶었던 그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재미가 없지?” 싶을 때도 있는, 혹시 내 지금 모습이 내가 반면교사로 삼았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진 않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하는 9년차. ‘전문가는 1만시간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문장을 책상 앞에 붙여두고 있지만, 정작 퇴근하면 멍하게 있거나 맥주를 마시면서 ‘이만하면’ 고생한거라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더 많은 직장인. 그러면서도 여전히 처음 하고 싶었던 주제를 맴돌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내가 그걸 해내는 사람이 될거라고 기대하고, 읽지도 않을 자료를 열심히 검색하고 저장해두고는 잊어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사회학, 철학, 문화학 등 관련 서적을 기웃 기웃 거리면서 ‘혹시 내가 아키비스트로서 더 성장하려면 오히려 기록학이 아닌 다른 학문을 공부하는게 맞는건 아닐까’라는 의심과 함께 흘려 보낸 시간이 벌써 몇 년. 역사학 전공자이면서도 이런 쪽에 대한 공부가 워낙 부족해서 머리 주변에 개념들이 둥 둥 떠다니고 있는 상태였는데, 작년에 우연히 에릭 케텔라르 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써 둔 기록학 소개를 읽으며 그 조각들이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첫 번째 글로 적당하다고 떠올렸던 주제로 시작한 글들은 모두 선배(누가 나에게 ‘선배로서’라고 하면 나는 왜 당신이 내 선배냐는 말을 할텐데!)랍시고 하는 잔소리, 또는 하소연, 그것도 아니면 그냥 뻔한 소리로 끝나게 될 것 같아 중단하고, 일기에 적어둔 덕분에 살아남은 이 글을 공유한다.
archivistics, 또는 archival science란?
Archival Science는 유럽에서 ‘Wissenschaft’라고 말하는 그 과학이다. 영미권에서의 자연과학과 헷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개인적으로는 archival science보다는 네덜란드어로는 archivistiek, 프랑스어로는 archivistique, 독일어로는 Archivistik,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로는 archivistica와 동의어인 archivistics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주: SAA 기록학 용어사전에는 archival science와 archival studies만 올라와 있다.)
기록(Records)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늘 생산되고, 그 과정은 다시 아카이브즈(Archives)에 맥락과 구조를 부여한다. 기록학(archivistics)는 문서 내용이 아닌, 이러한 절차에 의해 결정되는 문서의 맥락, 구조, 형식에 초점을 맞춘다.
기록학(Archivistics)은 무엇이 사회나 조직이 기록을 생산하고 유지하게 만드는지,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기록을 만들고 관리하는 방식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기록 생산 방식에 대해 설명하게 해줄지 등과 같은 기본적인 질문을 다룬다. 그래서 우리는 아카이브(archives)를 만들어내는 사회, 조직, 그리고 사람을 연구한다. 이것을 나는 사회적.문화적 기록학(archivistics)이라고 명명하였다. 이 학문은 기록의 생산/처리/활용까지 이르는 연속체를 연구한다.
전통적으로, 기록학(archival science)의 목표는 일단 보존소(repository)의 문턱을 넘어서 들어온 아카이브즈의 본체가 되는 것이었다. 아키비스트는 관리쪽에서 생산하고 넘긴 것을 받는 쪽에 있는 보관자 혹은 관리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록정보(recorded information) 생애의 비현용단계를 향했던 아키비스트들의 초점은 최근 기록 연속체에서의 가장 앞부분으로 옮겨왔다. 아키비스트는 이제 문서가 기록관리시스템으로 획득되기 전 단계부터 개입한다. 정보전략과 조직의 기록관리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 아키비스트(archivistics professional)는 사람들이 기록(records and archives)을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카이빙(archiving) 이전 단계부터 고려하여야 한다. 이것이 내가 archivalization-어떤게 보관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선택(이는 사회적.문화적 영향을 받는다)-이라 부르는 것이다.
아카이빙(Archiving) 그리고 Archivalization은 사회.문화.정치.경제적 맥락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이 점이 기록학이 비교 과학이 되도록 하는 도전 과제를 안겨준다. 비교 기록학(compative archivistics)은 국제적.다문화적 관점에서 다루고 가르치는 걸 넘어서는데, 이는 ‘왜’를 뒤따르는 ‘무엇’에 대답하기 위하여, 민족학에 이어 ‘문화기술지’에 대해 묻기 때문이다. 비교 연구는 현재 시점에서, 문화적.사회적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과거의 시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나의 가치
60년도 더 전부터 나는 도서관과 기록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더 나중에는 전문 아키비스트(professional archivist)로서, 교육자로서, 기록 분야의 관리자로서, 그리고 기록학 연구자로서 난 언제나 기록의 유일함(uniqueness)에 감탄해왔다. 그 성질은 기록(archives)을 만들어낸 과정과 기초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일한 활동에 의해 생성된 다른 문서의 맥락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나는 식별과 분류, 자각과 사회적 위치로 이어지는 “의미 만들기”의 과정에 도움을 주는 그 유일함을 옹호하는 것이 아키비스트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공통성, 연결성, 집단성. 정체성은 기억에 뿌리를 두며, 그 기억은 비문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비문과 공간 모두는 개인, 집단, 또는 기억 기관에 의하여 점점 더 나뉘어서 “클라우드에” “위치” 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맥락에서, 그들은 모두 기록(archives/records)과 다른 기록 텍스트를 구성하는 생태계의 한 주체이다. 아키비스트에게 이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커뮤니티 그리고 다른 기억 기관에 속한 전문가들과의 협력; 새로운 형태의 웹 2.0 및 참여형 아카이빙을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우리 기관의 벽 뒤에 있는 능숙한 전문가보다는 우리 사회의 커뮤니티에서 관련된 행동가(actor)로 변화한, 아키비스트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을 더 풍요롭게 하는, Terry Cook이 커뮤니티라고 이름 붙인, 곧 일어날 패러다임 전환을 포용하는 것을 뜻한다.
아카이브즈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관리하는 중요한 사회적 공간이다. 아카이브즈는 더 나아가 사람들의 경험이 의미로 바뀔 수 있는 기억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한다. 아카이브즈는 관리권과 신뢰를 공유하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