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인터뷰시리즈-7
아키비스트, 기록연구사, 기록물관리전문요원.. 어떤 명칭이든 우리의 이름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합니다. 그래서 ‘난 OOO야.’라는 한 마디로 우리의 일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그 일에 대한 관심을 갑자기 받게 될 때가 있습니다. 기록과 관련한 뉴스가 쏟아져 나올 때입니다.
작년에는 유난히 기록과 관련된 이슈가 많았습니다. 2018년은 일부 공공기관이 이전 정부에서 생산된 4대강과 자원외교 관련 기록을 무단 파기했다는 소식으로 시작하였고, 이명박 전 대통령 시기의 청와대 기록이 영포빌딩 지하 창고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연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지만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는 그럴 때, 우리를 대표해서 고민하고 행동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이하 ‘협회’)입니다. 아키비스트라운지에서는 2013년부터는 세 번째 협회 사무국장으로서, 2017년 7월부터는 공동 운영위원장으로서 협회를 꾸려나가고 있는 박종연 공동운영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인터뷰 일시: 2018년 12월 21일(금), 14:02- 15:42
- 인터뷰 방법: 메신저(텔레그램)
- 인터뷰어: 황진현
- 정리: 류신애, 황진현
본인과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개를 해달라.
한국기록전문가협회 공동운영위원장이다. 지난 7월부터는 비상근직이니 현재는 프리랜서라고 보는게 좀 더 정확하겠다. 프로젝트도 하고 기회가 되면 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두 아이의 아빠다. SNS를 보면 매우 가정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들 둘을 키우는게 대단해보이기도 한다. 두 아이의 아빠로 산다는 것은 어떤건가?
두 아이의 아빠로 산다는 표현은 너무 부모 중심적인 표현이다. 두 아이의 아빠로 산다기 보다 ‘가족’으로 함께 산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그냥 내 시간이 좀 더 없어진 만큼 비례하는 행복과 고통(?)이 있다. 요즘은 아빠가 늦게(?) 와서 작은 애를 돌보고 있는 큰 애를 보면 미안해지기도 하는데.. 그냥 내 삶의 일부인 것 같다. 실제로 작년 여름에 혼자 여행을 갔는데 옆에 아내와 아이가 없어서 정말 어색했다.
가정적인 아빠라는 것도 요즘은…집안일도 이전보다는 좀 덜 하고 있어서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열심히는 한다. 요리는 시간이 나면 자주 해주는데. 요즘에는 주로 주말에 한다. 문제는 집에 계시는 세 분이 다들 식성이 달라서 각 사람의 기호에 맞춰서 요리를 해줘야 한다는거다.
현 시점에서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꼽는다면?
가장 중요한 3가지는 가족, 논문, 건강이다. 하지만 지금 가족과 건강 두 가지는 잘 챙기지 못하고 있다.
사학을 전공했고, 기록학 대학원에 오기 전에는 직장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기록학계에 처음 들어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정확히는 한국사를 전공했고, 한국사(근현대사) 전공으로 대학원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당시 학부 지도교수님이 대학원 오면 밥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셔서 직장을 좀 다녔었다.
기록학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대학교 4학년 때 어떤 수업을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머리 한 쪽에 두고 잊고 있다가 직장 생활이 너무 재미가 없고 비전도 보이지 않아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 할 때 떠올렸다. 한국사를 다시 전공할까도 고민했는데 현실적인 문제(취업 등..) 등을 고려해서 기록학 대학원에 들어왔다. 사실 처음부터 취업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들어오고 나서 내가 아는 ‘대학원’과 많이 다른 모습에 조금 놀라기는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학부를 졸업한 곳이 공부를 유난히 많이 시키는 학교였다.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석사 졸업 후 일을 하다가 취직을 하는 경우가 보편적인데, 바로 공부를 이어서 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는지 듣고 싶다. 꿈이 있었다든지.
앞서도 얘기했지만, 대학원에 들어오게된 주된 이유는 취업이었다. 그런데 일단 석사과정 3학기를 마치면서 내가 그동안 뭘 배웠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할 때가 제일 좋다. 그래서 바로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다니면서 한양대 기록관에서 일을 했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철이 없는 생각을 한 것일수도 있겠다.
주된 관심 분야가‘기록의 역사’라고 들었다. 논문을 앞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본인의 주요 연구 주제가 무엇인지 소개 부탁한다.
기록관리제도에 관심이 있다. 주요 연구 주제는 우리나라 기록 분류, 평가제도인데 기록관리체계에서 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지금과 같은 기록 분류, 평가 방식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기록학계에는 이에 대한 역사성 검토와 정리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록관리가 실용 학문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학문이 그렇듯 역사성과 역사적 맥락 즉, 학제 연구 등이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록관리분야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기초, 기본연구가 부족하다.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학문은 뿌리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록관리가 실용 학문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학문이 그렇듯 역사성과 역사적 맥락 즉, 학제 연구 등이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록관리분야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기초, 기본연구가 부족하다.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학문은 뿌리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양대 기록관에서 기록전문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어떤 일을 주로 했는지, 그곳에서 느낀 보람과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학교 70년사 편찬 뒷마무리, 행정문서 이관 및 폐기, 학교사 기록물 전수조사. 서고정리 등을 했다. 그 중 가장 공들여서 했던 일은 전수조사이다. 인력도 사람도 없는 환경에서 성과를 내도 자랑(?) 보고할 곳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보유하고 있는 문서 및 박물류에 대한 전수 조사 작업을 진행하고, 목록화 하고, 기록에 대한 내용도 검토하면서 기록 관리가 참 재미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꼈다. 사실 기록을 봐야 내가 뭘 하는지 알 수 있는거니까.
가장 공들여서 전수조사를 한 이유가 있다면? 마지막 대답인 ‘기록을 봐야 내가 뭘 하는지 알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는건가?
기록관이라고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는 여기에 왜 있어야 하는지가 궁금했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보유하고 있는 기록에 대한 정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필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보니, 일단 무작정 시작했다.
그리고 막상 기록을 보다보면 내가 왜 필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기록의 내용과 맥락을 이해해야 기록을 서비스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전수조사 후에는 그 목록을 가지고 요청자료가 있을 때 대응하는게 좀 수월해졌고. 오히려 필요한 자료를 조금이나마 가이드 해줄 수 있었다.
한양대 기록관에서 일을 더 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일을 추진했을 것 같은가?
전시 관련 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좀 쉽지가 않더라. 첫째, 일단 대학은 정말 돈이 없다(있어도 예산을 기록관에 주지는 않는다). 둘째, 기록의 내용을 살펴보면 학교에서 홍보하는 학교사가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런 중요한(?) 내용을 설명하는 전시는 할 수가 없다.
한국의 대학 기록관리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인 것 같다. 실제로 일을 해본 사람으로서의 생각은 어떤가? 모기관이 대학교인 기록관의 기록관리는 공공기관의 기록관리와 어떻게 다른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사립대의 경우 기록관리라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경영자들은 기록관리와 박물관(또는 도서관)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 간혹 한양대와 같이 행정기록 폐기를 하는 사립대의 경우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기록관리가 말하는 행정 투명성, 민주주의의 확립 이런 것들이 사립대학교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결국 대학의 기록관리는 학교와 지역사회의 문화를 연결시키는 문화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정도가 현재로서는 최선일 듯하다.
기록관리가 아직까지는 시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시민의 지지를 받는 영역이 아니다보니 각종 이슈가 발생할 때 우리만의 목소리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2013년 한국기록전문가협회 사무국장으로 협회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사실 박종연이 사무국장을 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고 할 만큼, 매우 놀랍고 생각지도 못했던 참여였다. 어떻게 제안을 받았고, 어떤 고민을 거쳐 수락을 결정했는지 궁금하다.
2013년 1월 말인가에 이원규 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다. 협회에서 일을 좀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냥 행정업무 정도만 하면 된다고.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었던 상황이어서 즉답을 하지는 않았는데, 박사과정 중에 이직을 하려던 것이 잘 되지 않았던 것도 있고 해서 잠깐만 일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반 정도는 낚인 걸로 봐도 맞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대학기록관협의회에 참여하셨던 이원규선생님께서 박종연이라는 사람을 눈여겨 보고 계시다가 협회일을 시작하게 되시면서 함께 일하자 제안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 내가 대학기록관협의회 활동을 할 때 나에게 학술분과를 맡기셨던 기억이 있다. 역시..당한건가.
협회 사무국장은 협회 구성원 중 유일한 상근직이었다(주1) 회원 관리부터 예비학교와 아키비스트캠프 등 큰 행사에 기록 이슈에 대한 성명서 발표까지 손이 가지 않는 곳이 없다. 미래에 차기 사무국장 선발을 하게 된다면 가장 중요하게 보고 싶은 지원자의 역량은?
이 질문은 조금 수정해서..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상투적인 답변일 수 있겠지만 협회만큼 그 두 가지가 필요한 공간은 없을 것 같다.
일을 잘하는 것 보다는 책임감 있게 수행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센스가 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협회라는 공간은 일종의 민원센터라고 봐야하는데 그걸 절차적인 해결보다는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센스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지금 말한 것들은 사실 모든 직장인에게 요구되는 항목이기도 한데. 협회에서는 그게 더 절실한 이유는?
협회는 정말 작은 조직이다. 그러데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언젠가 대충 계산해 봤더니 협회 운영을 위해서는 최소한 3~4명의 상근직이 있어야 하겠더라. 그런데 이걸 1-2명이 다 해내야 하는 구조다. 그렇다면 책임감과 성실함은 어찌보면 당연한게 아닐까.
협회 내 주요직(현 공동운영위원장(구 사무국장 포함), 운영위원등)은 실무 현장의 이슈나 기록의 정치적 공방 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고, 성명서를 내고,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협회 내부에서는 의사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현 공동운영위원장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어떤 부분인지 궁금하다.
협회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은 운영위원을 중심으로 최대한 민주적으로 이루어진다.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별도로 구성된 정책&논평팀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의견을 정리한다. 입장 정리가 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논의가 중단된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구성원(운영위원)들의 참여와 의견제시이다.

협회 일을 한지도 벌써 7년째에 접어든다. 협회의 주요 인사로서 협회 일의 매력은 어디에 있나고 생각하나?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 그리고 자유로운 것? 다만 가끔, 아주 가끔.. 주말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사실 그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나. 협회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2017년 협회 운영체제를 바꿀 때였다. 협회장 추대 또는 선출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이 협회 입장과 내 입장에서는 가장 힘들었다. 이 때 협회 일을 그만 두고 좀 쉴 생각도 했었다.
박종연 공동운영위원장에게 협회는 애증의 존재이지 않을까 싶다. 본인이 협회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미래상이 있다면 듣고 싶다.
우선 애증의 관계라는 말에 가슴 깊이 동의한다. 협회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미래상이라기 보다 협회의 미래상이 있다면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공간이 되고, 기록관리 대중화를 선도하는 기관이 되는 것이다.
서대문역 근처에 한국공인회계사회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 앞에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섭니다.”라는 말이 쓰여 있는 걸 보았다. 우리도 “기록관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라는 문구를 쓸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그 정도의 공간도 있다면 좋겠다.)
사실 협회는 기록공동체에서 매우 중요한 단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여기에 대한 생각은? (질문을 부정해도 좋다)
질문을 반대로 하고 싶다. 협회라는 조직이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는 지지 기반이 다른 곳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넓다. 공공기록물법상 ‘기록물관리전문요원’ 자격을 갖춘 사람이 많이 잡으면 약 2,500명이다. 이 중 약 750명, 즉, 협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전체 인원의 1/4정도가 정회원, 학생회원, 준회원이다. 이 정도면 지지 기반이 있다고 봐야 한다. 단, 모두를 만족시키고 모두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약간 방향을 틀어서 볼 필요는 있다. 그리고 요즘 세대들은 어느 단체에 가입하거나 회비를 내거나 후원을 하는 것을 꺼려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협회만의 문제가 아니고 많은 시민단체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안다.
여기에서 질문 하나만 더. 본인이 생각할 때 기록공동체에 약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각종 이슈가 발생할 때 논리를 세우기가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그걸 중심으로 말해달라.
기록공동체의 약점이라고 딱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부족한 점이라고 한다면 기록관리가 우리 사회에 주는 영향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하겠다. 다른 전문직 또는 시민사회 영역과 달리 공동체 구성원의 수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기록관리가 아직까지는 시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시민의 지지를 받는 기록관리가 아니다보니 각종 이슈가 발생할 때 우리만의 목소리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편으로는 점차적으로 공동체 내 결속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작은 공동체이지만 이 내부 안에서도 세대간의 갈등과 구성원간의 갈등이 점차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우리 사회 전반에 기록관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원인 일 것이다.

기록전문가로서 본인이 그리는 10년 후의 모습은 무엇인지 듣고 싶다.
나이 40이 된 후로는 ’10년 후’라는 시점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다만 10년 후에는 기록관리가 메인이 아닌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박사학위를 받고 난 후에는 다시 다른 공부-사회학과 철학-공부를 하고 싶다.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예전부터 하고 싶었다.
기록학계 2세대로서 기록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위의 질문과 좀 반대되는 이야기지만 우리의 10년 뒤의 모습을 함께 그려봤으면 한다. 요즘 ‘10년 뒤 기록관리는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공공부문의 기록 관리가 법제화 되고 전문 인력이 배출되었지만, 공공기록 관리는 행정 영역에서 핵심이 아니다. 지원 영역도 아니다. 여전히 서무 영역(?)에 머물러 있다(인사, 조직 분야에서는 그렇게 보는 것 같더라). 그런데 계속 이런 식이라면 공공기록관리는 다시 예전처럼 서무 보조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기록관리 환경 변화로 인해 더더욱. 우리 스스로 우리 영역의 위상을 높이지 못한다면 10년 후 기록연구사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방법을 같이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록학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나 외부에서 학생 대상 강의를 할 때마다 처음 하는 말이 “공무원(또는 공공기관)취업’이 목적이라면 다른 길을 알아보시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이다.
사실 순수히 취업만을 목적으로 학교에 들어왔다면 이젠 취업할 수 있는 곳이 정말 많이 줄었다. 그래서 취업이 목적인 분들에게는 진진하게 고민하라고 이야기한다. “꽃길은 원래 없다. 다 가시밭길이다.” 라고 현실을 알려준다. 그래야 현실을 바라보고 준비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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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2017년 3월 협회는 운영위원회 체제로 바뀌었고, 2017년 7월부터 상근 간사 1명을 추가 채용하는 동시에 공동운영위원장(박종연)은 반상근 형태로 전환했다. 2018년 8월부터는 간사 1명과 비상근 공동운영위원장 1명(박종연)이 협회 업무를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