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인터뷰시리즈-10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받은 2019년 달력을 넘겨보다가 4월 달력에서 손을 멈추었던 기억이 납니다. 4월 16일의 16이라는 숫자가 별다른 설명 없이 노란 색으로 쓰여 있었거든요. 이렇게 기억할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바로 그보다 한 달 전에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2019년 달력 시안을 검토했던 저는, 일정대로 제작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다른걸 더 생각해보지 못했던 과거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4월 16일. 그 날 이후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기록공동체에 있는 분들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이번 달에는 아키비스트로서 본인의 역할을 고민하며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했던 사회적참사 특조위 김신석 선생님을 만나보았습니다.
- 일시 : 2월 22일(금) 오후 6:30 – 7:30
- 장소 : 서울스퀘어 코피티암
- 인터뷰 : 류신애
- 정리 : 황진현, 류신애
- 일러두기
- 이 인터뷰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기관들이 등장합니다. 기사 안에서는 다음과 같이 약칭을 사용했습니다. (클릭하면 해당 기관/단체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 4.16 가족협의회: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
- 특조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2015. 1. – 2016. 9. , 시작일은 법령 시행일 기준)
- 국민조사위: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2017. 1. – 2018. 3. )
- 사회적참사 특조위: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2017. 12. – , 시작일은 법령 시행일 기준)
- 이 인터뷰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기관들이 등장합니다. 기사 안에서는 다음과 같이 약칭을 사용했습니다. (클릭하면 해당 기관/단체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김신석. 학부에서는 한국사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기록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는 2014년에 들어갔다. 4.16 가족협의회에서 10월 6일부터 작년 3월까지 일했고 그 이후에는 사회적참사 특조위 출범기획단에 있었다. 최근에 정식 출범한 사회적참사 특조위에 지원했고 이번주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
지금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인가?
시간(논문을 쓰고 싶어서)과 돈(오래 일을 쉬어서). 그 외에는 잘 모르겠다.
새로운 기관에 출근한지 3일째다. 근무하는 곳은 어떤 곳이고, 어떤 일을 하게 되는가?
사회적참사 특조위에서 별정직 7급 자리인 기록관리실무지원 담당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특조위 내에 자료기록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안에서 조사관들을 위해 기록을 제공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된다. 자료기록단은 사무처장님인 단장을 제외하면 총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장님을 제외한 직원 다섯 명 중 네 명이 기록학 전공자이다.
“동기들이 너무 좋아서 학교 생활 자체가 즐거웠다. 수업이 끝나면 같이 술을 마시는 것도 답사를 가는 것도.”
기록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과정, 그리고 기록학 대학원으로 진학하기로 결정한 계기가 궁금하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원래는 조선시대 건축사를 전공하고자 했다. 문화재수리기술 자격증도 따서 관련 일을 하려고 준비하기도 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아서 8개월이 붕 떴다. 그 시기에 주말마다 인천인권영화제 책모임과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기록학을 하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먹고 사는데에 큰 지장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마침 그 때 선거관리위원회에서 3-4개월 정도 목록 정리하는 아르바이트 채용 공고가 있어서 친구와 같이 했는데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본인이 진학하던 시기 즈음에는 기록학 전공자들의 취업에 대한 전망이 밝지만은 않았는데 그 점이 고민이 되지는 않았나?
사실 잘 몰랐다. 취업 전망에 대해서는. (웃음)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세웠던 목표 – ‘졸업하고 이런 일을 하고 싶다’ 라든가 – 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나?
글쎄. 취직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든 돈만 잘 벌고 먹고 살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회 운동을 하는 단체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주변에 인권활동가인 형들이 몇 명 있어서 인천인권영화제에 가보게 되었는데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좋았고 배우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기록관리가 거기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생계 유지에 대한 고민이 없지는 않았다.
대학원에서의 가장 즐거웠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 하나씩 꺼내본다면?
동기들이 너무 좋아서 학교 생활 자체가 즐거웠다. 수업이 끝나면 같이 술을 마시는 것도 답사를 가는 것도. 힘들었던 것은 논문이다. 꼼꼼하게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걸 잘 못해서 쉽지 않았다. 지도교수님과 다른 심사위원분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신 덕분에 졸업을 할 수 있었다.


피해자 가족들과 대학생, 활동가들 쪽에서 경찰들을 찍은 사진. 당시 시민들은 반대편에 모여있었고 경찰은 차벽으로 시민과 가족들 사이를 막았다.
대학원 재학 중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 서울, 안산 등에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었는지 소개해달라.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을 때 참사 소식을 접했다. 처음 사건이 있었던 때에는 월드컵경기장에 차려진 분향소에 친구들과 다녀왔다. 기록학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은 되었지만 무엇을 해야할지는 잘 몰랐다. 그러다가 5월에 안병우 선생님, 이세영 선생님, 동기들, 선배들과 함께 진도 체육관으로 갔다. 김익한교수님과 권용찬선생님이 지키고 계시던 부스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하루를 지내고 난 후, 어떻게 기록을 모으고 보존하려 하는지 처음 듣게 되어 관심이 생겼다.
그 외 활동은 주로 인천인권영화제 분들이 문화연대와 같이 서울시청에서 한 활동에 참여한 것이었다. 서울시청에서 종이배를 접거나, 전시하거나, 하는 공공예술 같은 행사들을 했다. 그 일들을 같이 하기도 했고. 4.16과 관련 있는 책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일들도 했다.
그 이후인 2014년 10월 6일부터 세월호 가족협의회 사무처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친구인 최주환이 제의를 받았었는데 그 친구는 입사가 결정되어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 얘기를 들은 나는 지원해서 들어갔다. 그 이후에도 동료들이 들어오면서 2016년 8월까지 일을 했다. 논문을 쓴 후에는 가족협의회가 4.16연대와 조직한 국민조사위에도 있었다.
4.16가족협의회와 관련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제 특성상 자료 조사 등 논문 작성 과정 하나 하나가 모두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제를 통해서 꼭 말하고 싶었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소개해 준다면?
논문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기록에 대한 개념이다. 보통 기록을 조직이 생산한 기록물 전체라고 정의하고 있지 않나. 그러나 사람들도 만나고 책도 읽어보면서 고민을 하다보니 도구나 생산물 등은 기록의 범위 내에 점차 포함되고 있지만 ‘사람’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는 생산된 기록물만을 대상으로 일을 하지만, 기록학을 공부하고 기록연구사로 기록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로서 기록의 개념과 범위의 확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물화된 기록이 아니라 제도나 (기록을 생산하거나 관리하는) 사람들도 그 기록의 영역 안에 끌어와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웃음).
두번째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기록학 하는 사람이 활동가로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결국 우리가 관리하는 것은 기록물만 하는 것이었다. 활동가로서의 정체성도, 아키비스트로서의 정체성도 함께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서로 간의 관계를 풀어내고 싶었다.
기록관리에서 ‘사람’이 빠져있다는 문제를 이야기했다. 혹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다. 첫째로, 가족들은 피해자 가족들이라고 해도 모든 기록을 볼 수는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특조위에서 기록들이 생산 되어도 모든 기록이 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공개되지는 못하는데, 피해자 가족들은 ‘우리가 당사자고 우리가 다 알아야 하는 내용인데 왜 못보는가’에 대한 아쉬움들이 있었다.
또 하나는 기록의 생산이다. 특조위 입장에서는 피해자 가족분들이 기록을 생산하는 한 축이다. 우리는 절차가 중요하기 때문에 기록을 절차에 따라 남겨야 하지만, 피해자 가족분들은 마음은 무엇이든 함께하고 싶지만 기록을 생산하는 것, 문서화 하는 것들에 대한 낯섬이 있었다. 참사로 인해 고인이 된 사람들과 생존한 사람들, 그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매우 많고 살고 있는 지역들도 다른데 특조위에서 하는 활동, 생산하는 기록들에 모든 내용이 담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고민들이 있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가 4.16 모으다 웹아카이브이다.
대학원 재학 중 일을 한다는 것이 많이 힘들지는 않았나?
가족협의회 분들의 배려가 매우 컸다. 사실 1년 정도 약속되어 있었던 재정 지원이 3개월 만에 중단되면서 임금을 받을 수 없게 된 적이 있다. 그러자 가족분들이 직접 돈을 모아서 임금을 주시기도 했고. 학교 수업시간을 고려해서 근무 시간도 조정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시기도 했고, 많은 배려가 있었다.
“가족협의회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는 일의 범위가 매우 넓었다. 일반 사무부터 기록관리까지 모든 것을 다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중략) 가족협의회는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피해자 가족분들이 기록을 일일이 모아주거나 정리해 주시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우리가 직접 물으러 다니고, 파악하고, 수집하러 다녔다.”
4.16참사 국민조사위원회에서는 주로 어떤 업무를 했는지 궁금하다.
1기 특조위가 강제종료되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4.16국민조사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위원회에서 아카이브를 담당한 우리들은 별도의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기에 4.16모으다 웹아카이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위원회 내에서 자료가 필요하다고 하시면 우리가 작업한 자료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4.16 모으다는 기획부터 종결 단계까지 모두가 함께 한 작업이었는데 아카이브랩과 함께 대략 2017년 9월부터 작업에 들어가서 2018년 3월에 오픈을 했다. 자료 목록작업도 함께 했는데, 처음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잘 몰라서 헤맨 것도 많다.
4.16 참사와 관련된 기관들에 꾸준히 지원하고 일하고 있다. 본인이 이 분야에 특별히 더 마음을 쓰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물론 다른 곳을 지원할 수도 있었지만, 금번 기관에 먼저 지원하게 된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 참여해서 해왔던 일을 정리하고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앞으로 약 1년(연장된다면 2년) 정도 일을 할 것 같다.
본인이 그동안 일해왔던 분야는 아키비스트(또는 기록관리자)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알반적인 기관과는 차이가 있었을 것 같다.
가족협의회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는 일의 범위가 매우 넓었다. 일반 사무부터 기록관리까지 모든 것을 다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피해자 가족들은 외부인들을 신뢰하기 힘든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협의회에서 일하려는 사람들을 경계하기도 했다. 관련 집회에 참여해서 촬영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각종 회의에 참여해 회의록을 작성하고 목포나 진도 에 가서 직접 수집을 해오는 등 가족협의회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함께 했다. 가족협의회는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기록을 일일이 모아주거나 정리해 주시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우리가 직접 물으러 다니고, 파악하고, 수집하러 다녔다. 사실 그 당시가 대학원 2학기에 재학중이었을 때라 아는 것이 부족해서, 일단 축적하고 보자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기록관이 생기면 수집한 기록들이 의미가 있게 활용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말하는 여유란 생각하고 실천하는 여유는 물론 과감한 선택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을 말한다. 기록전문가에게는 새로운 현실과 기술을 지금 내가 속한 조직이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아카이브에 적용하게 하는 힘, 제한된 경제력과 정치적 상황 가운데 아카이브에 닥치는 온갖 파도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긴 기간은 아니지만, 대학원 재학시절부터 졸업 후 지금까지 여러 활동과 일을 해오지 않았나. 그 시간 동안 본인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나, 기록공동체의 변화 등을 느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달라졌다기 보다 많이 배웠다.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도 모르는 것이 많았는데, 웹아카이브를 만들거나 일을 하면서 많은 선생님들이 도움을 주셔서 배워나간 것이 크다.
기록공동체에 대해서는, (나의 관심사여서 더 크게 느낄 수도 있지만) 예전보다 기록의 개념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되고 새로운 논문들이 발표되는 것 같아 반갑다.
덤덤하게 말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해낼 수 있었던 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일단 하고 보는것. 가족협의회를 비롯해 지금까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다 그렇다. 사실 잘 하지는 못했지만, 일을 배우는 과정이나 함께하는 과정이 의미있었다.
덧붙이자면 이건 내 장점이자 단점인데, 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웃음).
앞으로 어떤 기록전문가로서 성장해나가고 싶은가?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말하는 여유란 생각하고 실천하는 여유는 물론 과감한 선택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을 말한다. 기록전문가에게는 새로운 현실과 기술을 지금 내가 속한 조직이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아카이브에 적용하게 하는 힘, 제한된 경제력과 정치적 상황 가운데 아카이브에 닥치는 온갖 파도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황 이해력, 판단력과 결단력, 조직구성원을 설득 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형성된 라포 등. 그러기 위해서는 기록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상당해야 하고 현실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서도 다방면에서 숙달해야 한다.
하지만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기록전문가들에게 여기에 대한 온전한 공감을 요구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겠다. 공공기관이 가진 한계와 제약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공공기관보다는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활동하거나 일을 해보고 싶다. 법과 규정에 정의된 존재들 이외에 제도 밖에서 자유롭게 기록관리를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기록관리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냥 계속 배우는 것이지 않을까. 기술도 기록물도 사람도 계속 새로워지니까. 거부감 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것, 그런 것이 좋은 것이지 않을까? 모든 일이 다 그럴 것 같다.
기록공동체의 동료나 선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되게 좋은 일 하시네요.’ ‘그 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등의 얘기를 매우 많이 들었다. 민간 영역의 범위가 매우 넓은데 그 중에서도 사회 운동으로 보고 너무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느껴져서 처음에는 불편했다. 이 분야의 일을 예외적인 영역으로 바라보는 경직된 시선 앞에서 사석에서 입을 닫게 되는 것도 경험했다.
이 일도 내가 있었던 기관도 평범한 일, 기록전문가가 일하는 여러 기관 중 하나로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곳에 오고 싶은 사람도, 떠나서 다른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도 부담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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