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는 기록관리 못합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허덕행

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인터뷰시리즈-11


직장인 5년차. 대리나 선임이라는 이름으로 누구보다 많은 일을 능숙하게 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동시에 직장인 사춘기를 겪으며 이직 또는 퇴직을 꿈꾸기도 하죠. 일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난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직장생활은 어떨까요? 

전문요원으로 취업만 하면 다 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조직문화와 기록관리체계를 혼자서 다 뒤집어 엎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이미 체감한 시기인 경우가 많을겁니다. 지금의 내가 스무 살에 상상했던 ‘서른 살의 나’의 모습과 조금씩은 다른 것처럼요. 

이번 달 아키비스트라운지에서는 두 번째 직장에서 기록물관리전문요원으로서 4년차, 첫 번째 직장을 포함하면 6년차에 접어든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허덕행 주임을 만났습니다. 직장인으로서 전문요원으로서 힘든 점도 있지만 ‘좀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기관 내에서 기록관리 역량으로 발휘되기를 기대합니다. 

  • 일시 : 4월 8일(화) 오후 7:30 – 8:30
  • 장소 : 스타벅스 대전법원점 
  • 인터뷰 : 황진현
  • 정리 : 류신애, 황진현
  • 일러두기
    • 이 글에서는 전체 공공기관 중 중앙부처(및 특별행정기관)와 지방자치단체, 교육(지원)청 등을 제외한 정부산하공공기관을 ‘공공기관’이라고 지칭하였습니다.

 


 

본인과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소개해달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일하는 허덕행이다. 업무분장상 ‘정’으로는 기록관리, 문서보안, 구매계약을 맡고 있다. 기관에서는 기록관리 인식 개선과 관련된 노력을 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일이 더 많아서 속이 상한다.

지금 현재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면? 현재 최우선 관심사는?

우리 기관 이사장님이 바뀌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분이 열정이 있으셔서 이것 저것 많이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가장 큰 관심사는 기관이 이사를 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그와 연관 지어서 문서고가 사무실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데, 앞으로 기관이 이전을 하면 (아직 미정이지만) 문서고가 사무실과 붙어 있을 수 있는가가 가장 큰 관심이다.

사적으로는 여행에 관심이 많다. 해외든 국내든 떠나는 것에 관심이 있다. 7월에 베트남 무이네로 여행을 간다. 배틀트립에 나와서 유명해진 곳인데 친구들과 길면 1주일 정도 다녀오려고 관련 정보들을 찾아보고 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대학원에 재학했다. 기록학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졸업 이후에 대한 별 고민 없이 대학 때 정말 열심히 놀았다. 내가 졸업한 충북대는 청주에 있고, 청주에는 공단이 있다. 그 중 한 공장에 취직하면 되겠거니 했다. 그러던 중에 4학년 때 한 학기분 교양 강의용 자료를 만드는 교내 공모전에 친구들과 참여하게 되었다.

구석기부터 현대사까지의 한 학기 강의에 대한 자료를 만들었다. 그런데 강의안을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웠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야 그러려니 했지만, 이보다 자료를 찾고 강의안을 만들기가 더 힘들었던 부분이 현대사였다.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구술사나 사진 같은 자료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왜 없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기록이 별로 없다는 것으로 연결이 되었고, 관심이 있어서 찾다가 ‘기록물’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던 차에 학교 선배 중 한 분이 기록관리와 기록관리전문요원에 대해 취업 특강을 진행하셨다. 그게 좋게 다가왔다. 마침 명지대 대학원에 선배가 있어서 얘기를 들어보니 괜찮은 것 같아서 들어왔다.

석사학위 논문 주제는 서비스평가지표다. 처음 기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다른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된 계기가 있는가?

내가 귀가 얇다. 1학기에 들은 수업 중 제일 재밌었던 과목이 이해영선생님의 서비스 수업이었다.  1학기에 논문 주제를 제출하면 2학기에 논문 지도교수가 정해지는데 수업을 같이 들었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서비스를 주제로 냈을 정도였다. 

지금은 이 논문을 쓴 것이 너무 창피하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글이다. 그 땐 사람들이 기록관에 와서 서비스를 받고 거기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평가지표가 국가기록원에만 있었고 그마저 허술해보였다. 그래서 그 평가지표를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지를 보면서 영국/미국의 기준을 접목해서 한국의 지표를 개발하려고 시도한 것이 석사논문이다.

덧붙이자면 논문 학기는 나에게 정말 힘든 시기였다. 명지대 대학원이 등록금이 비싼 편이다. 그래서 전업 학생은 전액이든 반액이든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 대부분 조교를 한다. 나도 마찬가지. 고맙게도 친구가 나에게 조교 자리를 양보해주어서 전액 장학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서 한 달 동안 누워 있었다. 그래서 병원을 다니고 진통제를 맞으면서 논문을 썼는데 30-40페이지 정도 왔을 때에 도저히 계속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김익한 선생님께 이번 학기 논문 제출은 포기하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받으러 갔더니 지금까지 작성한 논문을 가져오라고 하셨고, 글을 보시더니 이 정도 – 내용 말고 길이가 – 썼으면 졸업해야 한다고 서명을 해주지 않으셨다. 포기도 못하니 결국은 써야 했다. 그래서 혼자 랩실에 나와서 울면서 논문을 썼다.

다른 친구들이 받는 논문 스트레스와는 달리, 몸이 아파서 많이 힘들었겠다.

논문학기엔 다들 폐인처럼 지낸다고 하지 않나. 나는 정말 누워서 쓸 수 있는 책상을 쓰기도 했고, 누워서 가슴에 키보드를 올려놓고 쓰기도 했다. 힘들었다.

 

기억이 나는 면접 질문은 “입사 후 10년이 지났을 때 기록관리가 어떻게 되고 있게 하겠는가?”라는 물음이었다. 지금 있는 기관에 들어올 때 받았던 질문이었다. 보통 공공기관은 기록 ‘관리’보다는 폐기를 중요시하고 면접에서도 ‘어떻게 관리하고 폐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몸이 아픈 와중에도, 힘들게 논문을 쓴 후 졸업을 했다. 취업 과정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면접 질문이 있나? 취업을 준비 중인 후배들을 위해 공유해 주면 좋겠다.

지금 직장에 들어오기 위한 면접에서 받았던 질문 두 가지가 기억이 난다.

하나는 그 기관의 특수성을 어떻게 기록관리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시장을 관리하는 기관이지만 시장 자체가 직제에 반영되어 있지는 않다. 때문에 시장에서 생산되는 기록을 관리해야 하지만 직제상 직접 관리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게 그 내용이었다. 이 기관에서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라는 존재와 기록관리라는 업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하나는 “입사 후 10년이 지났을 때 기록관리가 어떻게 되고 있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보통 공공기관은 기록관리업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폐기를 가장 중요시하고 면접에서도 ‘어떻게 관리하고 폐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졸업 후 한국도로공사에서 근무했었고,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현재 근무 중이다. 두 개의 공공기관에서 5년 이상 꾸준히 일해 왔다. 일하는 데 있어서 중앙행정기관 및 특행, 지자체에서 근무하는 동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공공기관은 다 이렇다’ 라고 특정지어서 얘기할 수는 없다. 공공기관은 100개 기관이면 100개 기관이 모두 서로 다르다. 지자체나 중앙부처는 연구사가 배치된 지 오래된 편이기 때문에 기록연구사가 기록관리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어느 정도 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점이 많겠지만). 하지만 공공기관은 국가기록원이 지정한 직접관리공공기관이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고, 한 기관 안에 있는 기록관리 담당 직원의 수, 기관의 규모와 예산, 인원이 매우 상이하다. 때문에 내가 기록관리업무를 얼마나 할 수 있는지가 다르다.

한국도로공사 같은 경우 운이 좋았다. 좋은 환경에서 많은 예산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었다. 흔하지 않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계약직으로 있었기 때문에 정규직과의 차이에서 오는 힘든 점이 있긴 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은 정규직으로 있어서 그런 것은 없지만, 내부적으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규모가 작은, 예산도 작은 기관이다 보니 한 명이 해야 하는 일의 종류도 많은 등 업무적으로 부침이 있다.

방금 언급한 내용에 대해서 더 듣고 싶다. 실례가 되는 질문일 수 있지만, 기록전문가가 비정규직일 때와 정규직일 때 느끼는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나의 경우 공식적인 기록에는 내 이름과 내가 한 일이 남지 않는 것이 슬펐다. 도로공사를 예로 들어 얘기해보겠다. 나는 2014년 3월 3일부터 일했다. 들어가자마자 김천으로 이전 준비를 했다. 그 전에 계시던 분이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였고 나는 실무를 진행했다. 그런데 계약직은 사번이 없어서 사원증이 나오지 않는다. 이전 전에도 기관이 김천으로 간 후에도 손님용 출입증을 가지고 출퇴근을 했다. 사번이 없다 보니 처음에는 사옥을 신청할 수도 없었고, 사번이 없다보니 메신저도 내 것이 아니었다. 휴직자 계정에 현재 사용자가 나라는 설명을 덧붙여서 메신저를 이용해야 했다. 그 공간과 공식적인 기록에는 내가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 기관은 다른 측면으로 힘들다. 기록물관리전문요원들의 딜레마 – 다른 업무를 처음부터 쳐낼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추후 일을 유연하게 해나갈 것인가 – 가 있다. 나는 매정하게 쳐내지 못하는 스타일이어서 업무를 하나 둘 맡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회계와 부동산에 자산관리도 맡았고, 지금은 구매와 계약까지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하고 있는 보안업무는 당연히 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총무팀에서 하는 모든 일의 ‘부’담당자가 나다. 내가 지금 하는 업무가 아닌데도 ‘네가 했었던 일이니까. 너는 부서 이동 없이 이곳에서 고정된 일을 할 것이고 결국 이 일도 맡게 될 거니까.’ 라는 맥락에서 오히려 더 일이 많이 온다.

 

IMG_2019-05-01 09:52:02
사무실 책상. 기관 내 1인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고군분투 현장.
 
근무하는 기관에서 기록관리를 대하는 시각이 어떤지도 듣고 싶다. 상처가 되었거나 또는 반대로 위안이나 감동을 주었던 일은 없었는지?   

이 기관은 2014년에 신설된 기관인데 원래 있던 기관이 통합된 기관이어서 1999년 입사자도 있다(주1). 그 분들은 기록관리라는 업무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들어본 적도 없는 상태였다. 기록관리란 업무가 끝나면 그냥 폐기하면 되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고, 기록은 이사를 하다 보면 그냥 버릴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내가 오면서 전에 하지 않아도 되었던 일이 하나 둘 늘어나게 되었다. 나도 그 분을 이해할 수 있긴 하다. 경인본부만 해도 소상공인의 수가 170만 명인데 직원은 100명으로, 단순하게 계산하자면 직원 1인이 소상공인 1만7천명 이상을 담당하니 일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 와중에 내가 자꾸 공문을 보내서 뭘 하라고 하니까 싫은거다. ‘지역본부가 너네 보조기관인줄 아냐’는 전화가 걸려오기도해서 속상했다. 우리에겐 이 업무가 가장 중요한 일인데 – 역사를 만들고 지킨다는 사명감이 있는데 – 사실 기관에서 볼 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니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기록관리 외 다른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주임님은 이런 것까지 하세요? 기록관리는 (바빠서) 어떻게 하세요?’라며 도와주려는 분들도 계셔서 위안을 받는다. 그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모빌랙이 너무 갖고 싶다.

 

기록관리 외에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기록관리 일보다는 다른 업무들이 우선하게 되거나, 기록관리에 소홀해 지는 일들이 많을 것 같은데 그럴 때 어떤 느낌인지 듣고 싶다.

조금 허무한 느낌도 많이 든다. 한 가지 일을 예로 들겠다. 사무실에서 도보 5분-10분 거리에 있는 문서고에 모빌랙이 하나도 없다. 모빌랙이 너무 갖고 싶다. 그래서 2016년에 입사한 후 2017년도 예산을 신청할 당시, 법령을 다 따져가면서 문서를 작성하여 보고했다. 현재 문서 보유량, 앞으로 생산량 등을 고려하여 모빌랙이 어느 정도가 필요하고, 예산이 얼마가 있어야한다 라는 내용으로 열심히 작성했다. 그런데 신청한 예산의 항목이 잘못 배정되는 바람에 예산을 받아오기는 했지만 실제 모빌랙을 구매하는데 사용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아주 작은 예산만 남기고 타 부서에 예산을 이리저리 빼앗기게 되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2017년에 슬럼프를 겪었다. 내가 속한 본부에서도 기록관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본부와 수많은 지방 사업소들에서 파악된 문서들만 관리하는 것으로 제대로 된 기록관리가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작년에는 기본적인 것이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전체 기록관리 사이클을 한 번 돌려보았다. 그런데 올해에는 구매계약 업무도 추가로 맡게 되어서 ‘그럼 올해에는 기록관리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업무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근무하고 있는 기관에서 주요 업무인 기록관리를 포함하여 가장 우선순위로 두거나, 이루고 싶은 업무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두 가지가 있다. 일단은 내가 구매계약 담당인 만큼 모든 센터에 복합기를 주어 사무 환경을 개선하고 싶다. 기록물관리전문요원으로서 가치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기관의 직원으로서의 입장도 생각하게 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산하에 지역 센터가 많다. 소상공인들은 전국 모든 곳에 있으니까, 전국에 60개 가량의 센터가 있다. 하지만 센터에는 직원이 많지 않아 작은 곳은 3명의 직원이 두세 개의 군을 담당하기도 한다. 사무환경이 매우 열악할 수밖에 없고 복합기가 없어서 스캔을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각 센터에 복합기를 주고 일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다음으로 제대로 된 보존 환경을 갖춘 문서고를 갖고 싶다. 지금 문서고에는 소화시설이 하나도 없고 항온항습기도 모빌랙도 없다. 단지 책장에 박스가 쌓여있는 형태다. 내후년 예산 반영을 올해부터 신경 써서 제대로 된 문서고를 꼭 만들고 싶다.

하나만 더 이야기 하자면, 전국 모든 조직을 포괄하는 기록물 정리를 꼭 해내고 싶다. 지역본부나 센터에서는 사업 관련 업무를 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에 관련된 기록물들을 정리한다는 일은 정말 꿈과 같은 일이다.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기록물을 몇 년이 지난 시점에서 정보공개나 감사와 관련하여 찾으려고 하면 절대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향후 생산되는 기록물들이야 교육을 하고 의식을 바꾸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지만, 이미 생산된 기록물들은 현재 상황으로서는 정리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하고 싶다.

 

나는 협회에 와서 일만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내가 앞으로 함께해 나갈 수 있는 인연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중략)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서 물어볼 수 있다는 게 큰 힘이 된다. 많은 분들이 협회를 비롯한 여러 기록 커뮤니티 행사에 나와서 동료들을 알게 되고 같이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바쁜 와중에도 협회에서 주최하는 행사, 기록인대회 등에서 꾸준히 참여하고 도움이 되어주고 있다. 대학원 재학시기부터 협회 사무국 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크고 작은 관심과 도움을 주게 된 동기가 있다면? 

처음에 내가 어디에서 시작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대학원 입학이 확정된 후 2월에 있었던 기록학 예비학교에 참여했다가 거의 반강제적으로 (웃음) 협회 사무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자격을 갖춘 사람이 1000명이 넘었다고 말하던 시기였는데 실제 한국기록전문가협회 회원은 많지 않았고, 그 중에서도 협회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이 열심히 활동해주셨고, 그런 선생님들과 협회의 행사들을 함께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그게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여러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기만 할 수는 없지 않나. 본인이 얻는 것이 있다면. 또는 즐거웠던 일은?

특별히 무엇이 있었다기 보다, 사무국 활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 어울리고, 행사를 준비하고, 뒤풀이 하던 것 등이 즐거웠다. 사실 그 구성원들이 다 또래들이어서 더 즐겁고 재밌었던 것 같다. 

사전 질문지 중 “기록학계에 들어오려고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는 질문을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인데, 나는 협회에 와서 일만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내가 앞으로 함께해 나갈 수 있는 인연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기관마다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은 대부분 한 명인데, 기록관리와 관련한 많은 문제에 ‘이걸 어떻게 해야 해?’,  ‘전문가니까 방법을 알려줘’ 등의 문의를 많이 듣게 된다. 사실 기관에서 일하다 보면 공부했던 것들이 잘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고, 잘 모르겠어서 법령을 찾아보고 얘기해 주는 것이 대부분일 때가 많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서 물어볼 수 있다는 게 큰 힘이 된다. 또 어떤 기관에 전화했을 때 “어디에서 봤던 누구시죠?” 라며 나를 기억해 주면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많은 분들이 협회를 비롯한 여러 기록 커뮤니티 행사에 나와서 동료들을 알게 되고 같이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실무에서 근무한 연차가 낮기 때문에 처음 해보는 일들이 많을 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그리고 기관에서는 전문가라고 알아서 다 하라고 하는)에 봉착할 때에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듣고싶다.

기록관리와 관련된 질문을 내부에서 받을 때에는 나보다 상위기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도움이 된다. 공공기관은 100이면 100 다 다르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기관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응을 한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하는지를 들으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기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물어본다. 협회 행사, 기록인대회 등 뿐 아니라, 국가기록원 업무협의회라든가 하는 일에 최대한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같은 상위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관련 기관들이 모이는 곳에는 꼭 간다.

2012년 대학원 입학한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재학 중에도 협회 활동을 해서 기록학계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본인이 느끼는 변화가 있다면? 

우리는 처음에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기록전문가의 사명감에 대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기록학을 전공한 선배들이나 선생님들이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지, 2010년 시행령 개악 때에는 어떤 활동들을 했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판단했을 때(2013년)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의미보다는 단지 취업을 위해서 대학원에 오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취업이라는 목적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도 전문요원이라는 자격요건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으니까. 부족한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아쉼다. 내가 대학원 생활을 즐겁게 했기 때문에 더 그런 안타까움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지만,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 선후배들과 같이 만나서 얼굴을 보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기록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매우 추상적인데. 나는 내가 기록물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뭐 하나씩 잘 빼먹고, 매번 허둥댄다. 그래서 잘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 받는 것이 나 스스로도 부끄러울 것 같다. 그래서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법령에 나와 있는 일은 다 하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되고 싶다. 내가 일하는 동안 그 기관에서 기록관리가 법령에 나와 있는 대로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 무언가 하나씩 결여되어 있었다. 하나씩 해나가고 싶다. 

둘 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듯 하나씩 해내고 싶다.

그림25

 

 


주1.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2014년에 (구)소상공인진흥원과 (구)시장경영진흥원이 통합되면서 만들어진 기관으로, (구)소상공인진흥원은 1999년에 설립된 소상공인지원센터와 2006년에 설립된 소상공인진흥원이 통합되면서 설립되었다.  (출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홈페이지> 공단소개> 연혁  )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