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뭐 하실 건가요?: 차병원 최영주

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인터뷰시리즈-13


“Keep the legacy alive!”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에서 카렙이 시애틀 그레이스에 남을 것인가 존스 홉킨스로 갈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던 장면이 나오던 순간, ‘존스 홉킨스에도 아카이브가 있을까?’라는 궁금함에 검색을 해보니 바로 이 문장을 내걸고 있는 홈페이지가 나왔습니다. 아홉 명의 직원이 열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그 곳의 기록을 관리하고 서비스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주요 병원들 중에도 아카이브와 아키비스트가 있을까 생각하다 이 분을 떠올렸습니다. 차병원 홍보본부 마케팅커뮤니케이션실에서 일하는 최영주 대리입니다. 법이 아닌 필요에 의해서 기록전문가를 뽑는 기관에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할까요? 업무 영역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아키비스트는 어떻게 그 기관에 기여하고 본인의 존재감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아키비스트라운지에서 들어보았습니다.

  • 일시 : 2019. 6. 7. (금) 13:00-14:00
  • 장소 :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크리에잇쿠키
  • 인터뷰 : 류신애
  • 정리 : 황진현, 류신애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 웃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웃을 일을 찾아 돌아다닌다. 웃을 일이 없으면 만든다. 예전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좋다. 

현재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면? 관심사라든지. 

세 가지로 말한다면 재미, 웃음, fun. 사실 다 같은 건데 세 가지로 맞춰보았다. 재미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2005년에 석사학위를 받았으니 기록학 전공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입학했다. 기록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떤 계기로 진학을 결심했는지 궁금하다.

대학 졸업 후 바로 대한통운 국제물류라는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했다. 대학 나와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단순 업무를 했는데 혼도 많이 나고 적응도 잘 못했다. 그 곳에서 잘 다녔다면 일반 사무직으로 쭉 갔을지도 모르겠다. 겨우 1년을 버티고 나왔다. 

가스공사 자료실에 계약직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무엇을 하며 먹고 살지를 다시 고민했다. 같은 직장에 있던 사서 선배가 명지대학교 석사과정을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에 기록학이라는 전공이 있던데 해보면 어떠니’라고 기록학 대학원을 알려주어서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원에 입학할 때 그렸던 졸업 후 본인의 모습은?

내가 입학한 당시만 해도 기록연구사라는 직렬이 없을 때여서 공무원이 될 거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공부를 마치면 회사에 들어가서 관련된 일을 하게 되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동기가 몇 명 없었던 기수라고 알고 있다.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2년에 대해 특별히 남은 기억이 있다면?

학비를 벌어야 해서 학교 생활을 일과 병행했다. 주간에는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고, 사서 자격증을 활용해서 사서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 당시 주변 친구들로부터 석사로 대학원을 다니면 연구실에서 혹사당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 우리 대학원은 그렇지 않았다. 김익한 선생님께서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셔서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고 일하는 분위기였던 것이 기억난다. 전업 학생들에게는 학교에 나와서 함께 공부하라고 권하셔서 출근부를 적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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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컷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롬정보와 STX팬오션을 거쳐 차병원까지, 쭉 사기업에서 기록관리를 해왔다. 기록학을 전공한 후 공공영역이 아닌 곳으로 취업하는 것은 이례적인데 어떤 계기로 ‘기업 기록관리’ 영역으로 들어갔는지, 각 직장에서 어떤 일을 했었는지 듣고 싶다.

기록연구사 공고가 뜸하게 하나씩 나고 있던 시기에, 오롬정보와 같이 프로젝트를 몇 번 하셨던 설문원 선생님께서 회사를 소개해주셨다. 도서관과 기록관 컨설팅 업무를 많이 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시스템이 들어갈 때 요구분석 설계를 했고 학술진흥재단 아카이빙 시스템 컨설팅에도 참여했다.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그 후 이직한 STX팬오션에서는 레코드매니저로서 현용 기록을 관리했다. 각 부서에서 문서실로 기록을 보내면 문서실에서 가지고 있다가 필요할 때 서비스해주는 일이 주 업무였다. 그 곳에는 기록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만 7명 정도가 있었다. 알다시피 그 회사가 없어지면서 퇴직을 했고, 남편을 따라서 미국에 갔다 왔다. 다녀온 후에는 아르바이트로 프로젝트를 몇 가지 했었다.

차병원은 아키비스트를 원하는 곳이었다. 면접에서 ‘혼자 알아서 A부터 Z까지 할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회사는 자료를 관리할 필요가 있어서 사람을 채용하는 상황이었지만 기록관리에 대한 어떤 그림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이것 저것 다양한 일을 해봤고 혼자 알아서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지금 있는 곳은 홍보본부 아래에  있는 마케팅커뮤니케이션실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인데 히스토리마케팅과도 연결되어 있다.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고 주로 콘텐츠를 만드는 곳이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홍보 글을 쓰는 일을 한다. 

 

처음 출근한 날 “그래서 뭐 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내 롤(Role)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물리적인 공간과 전자적인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진행했다. 지금 있는 서고는 크지는 않다. 남겨진 기록물의 양도 별로 없다. 그래서 뭐든 다 달라고 하고 정리하는 중이다.

 

차병원 안에서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일상적으로 하는 업무는 어떤 것인가?

내가 소속된 팀은 사보를 만드는 팀이기 때문에 주로 거기에 사용될 사진, 마지막에 나오는 글, 홍보 팜플렛 등을 만든다. 얼마 전에는 소장님(그룹 회장을 칭하는 말이 ‘소장’이다)의 전기를 출판했는데 그 때 필요한 자료를 발굴하고 전달해주는 일을 했다. 지금은 홍보관 리뉴얼을 위해서도 노력하는 중인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서고 공간이나 예산에 대해서는 지원이 충분한가?

처음 출근한 날 “그래서 뭐 하실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내 롤(Role)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물리적인 공간과 전자적인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진행했다. 지금 있는 서고는 크지는 않다. 남겨진 기록물의 양도 별로 없다. 그래서 뭐든 다 달라고 하고 정리하는 중이다. 사진전을 통해 기증을 유도하기도 하고, 우리 팀의 업무에 대해 홍보하면서 자료 기증을 이끌어내고 있다.

기록을 주로 찾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 내용은 주로 어떤 것인가?

인사팀이 신입사원 교육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많이 찾고, 가끔 원장실에서 정리된 히스토리를 찾기도 한다. 연혁의 경우 정리되어 있는 자료가 없었고 있더라도 사실 관계와 다른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정리하는데 신경을 썼다. 초기 기록이 너무 없어서 초창기 멤버들을 대상으로 구술기록을 채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각 교수들의 연구성과를 정리하고 영상으로 만드는 일을 했는데, 한 줄 한 줄 들어가는 정보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차병원의 연구 내용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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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채록을 위한 인터뷰를 직접 준비하고 진행했다.
 
입사한 지 3년이 조금 넘었다. 기관 내에서 ‘기록관리’라는 업무는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고 느끼는가?

이제 조금은 알려진 것 같다. 전에는 직원들이 어떤 자료를 찾으면 주로 본인이나 그 부서에서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기록관으로 보내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초반에는 자료를 다른 부서로 보내는 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느껴졌는데, 기록관에 이관을 하고 정리된 자료를 이용하는 경험을 해보면서 자료를 자연스럽게 주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 홍보실과 협업하는 일이 많다 보니 그 경로를 통해서 내 업무가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본인이 하는 업무 중 직장에서 가장 호응이 좋은 일은 어떤 것이었나? 

사진에 인덱싱을 추가해주었던 일. 사진 한 컷만으로도 스토리가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절한 사진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기존에는 프로젝트별, 날짜별로만 사진이 보관되고 있었다. 키워드로 색인을 만들어서 필요한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준 일이 긍정적 평가를 많이 받았다.

일을 계속 하면서도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강의도 했다. 

박사는 석사 졸업 후에 바로 들어갔었다. 그 때 아니면 어려울 것 같았다. 논문을 쓰지는 못할 것 같다. 강의는 정보서비스로 한 번 했었는데 그 때 준비를 잘 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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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기업에서 기록관리에 대한 자문을 받으러 오기도 한다.
 
기업 기록관리와 관련된 사례가 국내에는 많지 않은 만큼 해외 사례를 많이 참고하고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페이스북에 공유를 많이 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본 중 지금 직장에서 벤치마킹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거나, 인상 깊게 본 사례가 있다면?

IBM 100주년 기념 동영상이 기억이 난다. 옛날에 공헌했던 사람부터 현재 근무하는 사람까지 한 사람씩 나와서 한 마디씩 이야기하는데 사람이 중요한 회사라는 기억이 남았다. 만약 기념 영상을 만들 일이 있다면 사람을 중심으로 감동적인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다. 

기관에서 시키지 않았는데 해서 기분 좋았던 일이 있다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모두 찾고 정리한 일. 상장까지도 다 찾아냈다.  병원에서는 연구 성과를 가지고 차별화를 두려고 하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었다. 요즘 그 내용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아키비스트는 나 혼자이고 일을 혼자 해나가야 하다 보니 모든 사람과 관계를 잘 형성해야 하는 점이 어렵다.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기록연구사들과 비교할 때 더 좋은 점이 있다면? 그 반대로, 단점이 있다면?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연봉이 더 높았던 것이 좋았다. 시키는 일 말고 내가 하고 싶다고 하면 그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단점은 혼자 일해서 외로운 것. 나를 대우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아키비스트는 나 혼자이고 일을 혼자 해나가야 하다 보니 모든 사람과 관계를 잘 형성해야 하는 점이 어렵다.

학부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서이자 기록전문가로서, 기업에서의 기록관리에 사서의 관점과 기록전문가의 관점이 다른 것을 느낄 때가 있다면?

사서는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보는 것 같고, 아키비스트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관리의 관점에서는 사서가, 맥락과 기록 하나 하나의 가치를 살리는 것은 아키비스트가 잘 하는 것 같다.

RM이냐 AM이냐를 떠나서, 기업에서 기록관리업무를 하고 싶어도 어떤 부분을 준비해야 하는지, 언제 어떻게 입사할 수 있는지 잘 모르는 후배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취직과 관련한 팁을 부탁한다.

기업에서 기록을 관리하는 TO가 난다면 한 명이나 두 명일 것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할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록연구사 시험을 준비해서 바로 공공기관에서 일한 경력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경험이 중요하다. 

요즘에도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부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참여해서 일을 해봐야 한다. 면접에서도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야 할 것 같다. 기업에서 면접관들은 기록관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전문용어를 쓰면서 학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늘 보조적인 일을 하게 된다. 이용자가 1을 원하면 3-4까지 주어야 만족시킬 수 있다. 

 

기업의 기록관리 담당자로서 ‘일을 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늘 보조적인 일을 하게 된다. 이용자가 1을 원하면 3-4까지 줄 수 있어야 만족시킬 수 있는 것 같다. A라는 사진 한 장을 원한다면 다양한 각도의 다른 사진들을 같이 제공해줄 수 있어야 ‘다르다’는 평을 들을 수 있다.

함께 일할 후배를 직접 뽑을 수 있다면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보겠는가?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좋은 사람과 일하고 싶다. 일을 해보니 기획력이 좋은 사람이 개성이 강한 경향이 있지만 나는 감당할 수 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기록학을 전공하고 이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해 온 선배로서, 기록학이라는 전공에 관심을 가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업무환경이 외롭기 때문에 혼자 일하는 것을 잘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타 부서 사람들과 잘 지내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인터뷰를 하든 수집을 하든 다 사람을 만나면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일을 통해서 성취감을 느낀다면 이 일과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이다.

앞으로 어떤 기록전문가로서 성장하고 싶은가.

어느 기업이든 총무 부서에서는 기록관리를 하고, 그 일을 담당하는 비전공자들은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른다. 꼭 아키비스트가 아니어도 그런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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