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st Archivist 또는 활동가 아키비스트. 처음 사용된 시기는 1970년이지만 미국 아키비스트들이 월가점령운동을 기록화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개념이죠. 이슈가 된 사건의 성격상 퇴근을 한 후에 어딘가로 뛰쳐나가서 시민 운동에 참여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용어가 나왔을 때의 의미처럼, 꼭 지금 내가 속한 일상적인 기관이 아닌 어딘가로 나아가야만 ‘활동가’ 아키비스트가 되는 것은 아닐겁니다. 각자 자신이 있는 기관에서 차근차근 기록관리를 해나가는 것, 기관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것을 기록화할 지 고민해서 하나씩 해나가는 것도 중요한 ‘실천’이겠죠.
그래서 이번 달 아키비스트라운지에서는 한 기관에서 10년 이상 일해오면서 자신과 그 지역을 함께 키워온 아키비스트를 만나보았습니다. 증평군청 신유림선생님입니다. 낯설기만 했던 외지에서 어떻게 그 지역의 사람이자 아키비스트가 되었는지 들어보았습니다.
- 서면인터뷰로 진행하였습니다. (황진현, 류신애 정리)
- 답변 내용은 2019년 9월 25일 현재를 기준으로 합니다.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워킹 맘이면서 학생이다. 증평군에서 기록관리를 하고 있고, 9살 딸의 엄마이면서, 기록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가진 시간을 3등분하여 각기 다른 세 가지 역할을 하는데 쓰고 있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을 못견디고, 한 가지에 미쳐 깊이 몰두하는 것도 어렵다. 여러가지 일에 관심을 갖고 바쁜 일정을 만들며 사는게 좋다.
지금 본인에게 가장 소중한 세 가지를 꼽는다면?
일, 딸, 공부. 요즘은 주로 이 세 가지만 생각한다. 아마도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 평생의 과업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일 잘하는 사람, 좋은 엄마, 믿을만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계속 달리게 될 것 같다. 빠르진 않지만 멈추지 않는 거북이처럼.
2003년도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기록학이라는 학문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대학원에 입학하기로 한 계기는 무엇인지 듣고 싶다.
나이 서른에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온 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 되었다. 호기롭게 뛰쳐나오긴 했는데 재취업이 너무나 힘들었다. 마침 학부 은사이신 정연경 선생님께서 대학원에 기록학 과정이 생겼는데 공부해보면 어떻겠냐 말씀을 해주셨고, 공무원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입학을 결심했다. 그 당시엔 왜인지 독신으로 살 것이라 결심 중이었고, 스스로 밥벌이할 수 있는 직업은 참 중요했다. 그리고 좀 다른 얘기지만, 대학원 진학을 이끌어 주신 정연경 선생님은 내 인생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직접 말씀드린 적도 없고, 최근엔 연락도 못드렸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시골 생활의 낭만과 여유를 꿈꾸고 갔었는데, 상상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증평은 시골이 아니고 도농복합 도시이고, 기록관리는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늘 야근을 해도 답이 안보이던 하루하루, 파라다이스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옥이 열린 느낌이었다.
올해 아키비스트캠프 발표에서 서울에서만 살다가 증평군 기록연구사가 되면서 증평으로 가게 되었다고 들었다. 처음 간 낯선 도시에서 지내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는지, 첫 출근할 때 각오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의외로 힘들어서 당황했다. 시골 생활의 낭만과 여유를 꿈꾸고 갔었는데, 상상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증평은 시골이 아니고 도농복합 도시이고, 기록관리는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늘 야근을 해도 답이 안보이던 하루하루, 파라다이스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옥이 열린 느낌이었다. 고향 서울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향수병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앗, 잊고 있었는데 그땐 정말 그랬다. 그래도 지금은 까맣게 잊었을 만큼 완벽히 증평화 되어 전혀 힘들지 않다.
첫 출근 때는 각오보다는 기대감만 있었다. 9시-18시 정시 출퇴근을 하고 근무시간 중에도 항상 여유로운 직장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놀아야 하나를 생각했다. 공무원이나 기록관리를 하는 사람은 참 일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처절하게 무너졌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기록연구사로 일하게 되는 경우 기록관리 업무 이외에도 지역행사, 지역의 자연재해 등 다양한 일에 직원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지자체 소속 공무원인 기록연구사가 겪게 되는 힘들거나 재미있는 점들이 있다면?
각종 행사, 축제, 교육은 물론이고, 전통시장 장보기, 쓰레기 줍기, 산불감시, 호우피해나 눈 쓸기, 가축전염병 돌 때 초소근무 하기 등 동원이 참 많다. 처음엔 내가 기록관리 하러 왔지, 이런 거 하러 왔나싶어 불만도 있었는데 이젠 괜찮다. 행정직, 세무직, 전산직 동료들도 모두 하는데 기록연구직이라고 뭐가 특별해서 열외를 하겠나, 동원업무는 품앗이 같아서 내가 잘 참여해주면, 동료들도 업무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다. 기록관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늘 협조와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여러모로 득이다. 다만 나이가 들어 체력이 떨어졌는지 밤샘근무는 힘들다. 이번 주말에 태풍상륙 소식이 있고 돼지열병도 퍼지고 있어 걱정이다. 비상 뜨면 안되는데.
증평군 기록연구사로서 모든 업무를 잘하면 좋겠지만, 혼자 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나 비용을 고루 분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업무를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업무는 무엇인지, 일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원칙은 어떤 것이 있었나?
‘기록관리 업무는 방대한데 한꺼번에 모든 일을 잘하려다 지치지 말고 1년에 한 가지씩만 바꾸자.’ 이렇게 마음먹고 매년 새로운 사업계획을 크건 작건 세웠다. 생애주기에 따른 기록관리 업무보다는 새로운 일, 안해본 일을 기획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저러한 일들에 도전해 보고 최근 2-3년간은 기록관 외연을 키우는데 몰두했다. 기록관을 신축하고, 예산을 확보하고, 연구사를 추가 채용하고, 행정기록 관리를 넘어 지역아카이빙을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혼자라면 불가능했겠지만 적극적으로 주변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도움을 받을만한 사람을 수소문해 길을 찾았다. 함께하고 협력하며 일하겠다는 평소 업무원칙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그렇게 일을 하던 중에 박사과정에 입학해서 재학 중이다. 박사과정에 들어간 계기는 무엇인지, 더 연구하고 싶은 분야는 어떤 쪽인지 듣고 싶다.
일을 잘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했다. 증평을 아카이빙 해보고 싶은데 아무것도 몰랐다. 혼자서 논문을 읽거나 관련 세미나를 가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석사 졸업 후 10년이나 지난 시점이라 더 늦기 전에 공부하자는 생각도 들었고, 마침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육아휴직을 낼 계획이라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어쩌다보니 휴직은 못하게 되어 작년엔 많이 힘들었지만,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벌써 4학기째 접어들었고 이제는 공동체아카이브, 지역기록을 활용한 서비스, 기록을 통한 민관협치 등 구체적인 관심분야가 생겼다.

한 기관에서 일한 지 10여년이 되었다. 그 동안 일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는가? 그리고 언제 내 업무가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는지도 궁금하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기록관을 새로 짓는 것이 확정되었을 때. 입사 10년 만에 20평을 200평으로 10배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아주 넉넉한 공간은 아니지만 퇴직 전에는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왔기 때문에 참 감사하다. 2020년 5월 준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이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입사하고 처음 1년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파라다이스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지옥이 열렸던 시기였다. 조직도 지역도 낯선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참 부끄럽지만 ‘나는 뭐든지 척척 해내는 전문가야,’ 이렇게 뻐기다가 처참하게 깨진 것이 그 때의 나였다. 덕분에 메타인지가 높아져서 늘 노력하고 공부해야 그나마 남들 반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는 주제파악을 잘하게 되었다.
좋은 일, 힘든 일도 많았지만 최근 부쩍 내 업무가 인정받고 있다고 느껴 참 좋다. 동료들이 대놓고 ‘힘들지? 일이 많지? 기록관리 참 중요하지!’ 등의 말을 해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아무래도 혼자 일을 하다보니 같이 일할 동료가 절실할 순간이 있을 것 같다. 현재 증평에는 두 명의 기록연구사가 있지만, 향후 본인이 같이 일할 후배를 직접 뽑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가?
긍정적인 사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함께 갈 수 있는 사람.
기록관리 일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끝도 한도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업무영역을 확장하고 진화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 끊임없는 일들을 같이 해줄 후배를 기대한다. 특히 희망적인 결과를 믿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 혹시나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시도할 수 있는 끈기, 주변과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일의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작년에 수집/이관한 기록물과 <마을기록만들기>, <경관아카이빙> 사업의 결과물을 가지고 전시회를 개최했다. <마을기록만들기>와 <경관아카이빙> 사업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을 부탁하고, 기록으로 여는 전시회라는 측면에서 어떤 측면에 더 신경을 썼는지 궁금하다.
<마을기록만들기>는 국비사업 공모에 쓰려고 진행한 샘플사업이었고, 증평기록관이 마을로 들어가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할지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사업비를 마련하고, 주민들을 만나고, 사진과 마을이야기를 수집하는 과정이 모두 도전이었다. 또 현재의 주민과 마을 모습을 사진작가와 함께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했는데, 멋진 사진이 나와 준 것도 좋았고, 주민들이 즐겁게 참여해 주어 보람도 있었다.
<경관아카이빙>은 증평의 주요경관을 기록화 하는 것으로, 같은 장소를 주기적으로 사진촬영 한다. 드론도 띄우고, VR도 만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지금 당장보다는 10년, 20년 기록이 쌓이면 참 흥미로운 결과들이 만들어 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들 사업의 산출물로 기획된 작년의 증평전시는 기록관의 첫 전시였던 만큼 기록관을 드러내고, 기록관이 무엇 하는 곳인지를 알리는데 주력했다. <마을기록만들기>나 <경관아카이빙> 같은 재미있는 일을 하는 곳이 기록관이고, 이 기록관은 증평과 증평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작년 전시회 포스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키비스트 캠프에서도 ‘뭐든 일단 예뻤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포스터 말고도 구석 구석 신경을 썼을 것 같다.
작은 규모가 문제였기 때문에 ‘예쁘기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전시장도 원래 하려던 오래된 군청로비에서 새로 지은 도서관으로 바꿨고, 포스터나 리플렛, 전시장 안내판은 폰트 디자인 뿐만 아니라 사이즈까지도 고려했다. 기획전시라 바로 철거될 것이지만 상설전시처럼 견고한 재료를 썼다. 부대행사로 진행한 스탬프투어는 모두 다른 디자인의 스탬프 8종을 예쁘게 제작했고, 기념품도 허투루 하지 않아 꽤 인기가 좋았다. 기증캠페인이나 관람객 설문조사 등 완벽하진 않아도 이것저것 구색을 맞추려 노력했다. 덕분에 전시 하나에 신경 써야할 것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랜 시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지역보다는 내 일에 대한 애정이 있어 가능했다. 그런데 기록연구사라는 나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했던 일들 덕분에 증평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일을 하면 할수록 애정은 더 깊어지고 있다.
올해에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농촌다움 복원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마을기록화 사업을 5년간 지원받게 되었다. 액수도 군비와 국비를 합쳐 총 20억으로 일반적인 기록관리사업에 비해 매우 크다. 아키비스트캠프를 통해 발표해주었지만(캠프 해당 세션 속기록 링크예정), 처음 듣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사업을 기획하고, 기관 내에서 의견을 관철시키고, 사업을 따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다시 한 번 부탁한다.
농림축산식품부나 문화체육관광부 같은 부처에는 국비보조를 해주는 다양한 공모사업들이 있다. 새로운 사업을 해볼 만한 예산을 만드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에서 그런 공모사업들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당연히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공모사업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을 자꾸 만나 묻고 공부했다. 이러저러한 일을 해야 하니 돈이 필요하다, 공모해 볼만한 사업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단단히 말도 해두었다. 그러면서 타부서 사업잔액을 끌어다가 <마을기록만들기>나 <경관아카이빙>같은 샘플사업을 진행해 사례를 만들었다. 이 과정이 2년이나 걸렸다. 그 기간동안 쓸데없는 일을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기록관에서 돈을 따올리 없다 생각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관심을 안보여서 부담없고 좋았다. 2018년에 농림축산식품부에 농촌다움복원 사업이 새로 생겼고 공모사업 담당자의 코치를 받아가며 페이퍼 작성, 2번의 평가를 거쳐 최종 선정되었다. 공모사업 관련 팁이라면 처음 생긴 사업에 도전하면 선정 가능성이 높다는 것, 혼자서는 힘드니 공모사업 담당자와 협업을 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과 앞으로 한 사업들은, 그 지역에 대한 큰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오래 일해 오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겠지만, 혹시 증평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계기가 있다면?
지금까지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지역보다는 내 일에 대한 애정이 있어 가능했다. 그런데 기록연구사라는 나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했던 일들 덕분에 증평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일을 하면 할수록 애정은 더 깊어지고 있다. 증평은 알수록 아름다운 곳이다.
지자체에서 ‘아카이브’형 기록관(아카이브 기능을 하는 기록관)을 만드는 시도는 고무적이다. 아카이브로서 기록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나? 단순히 공공기록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 텐데.
증평은 역사가 짧아 그런지 딱히 정체성이란 것이 없다. 뭐하는 곳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기록관과 비슷하다. 지역의 정체성을 만드는 일을 기록관에서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도 살고, 기록관도 살고, 증평도 살 기회라 생각했다. 자연스레 지역기록을 공공기록화 하는 방법들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증평기록은 증평에 두는 것이 맞을 것이니 이 작고 다정한 동네에 아카이브를 한번 만들어보자 결심했다.
아무래도 그동안은 법률과 규정에 따른 업무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증평군 만의 색깔을 가지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기획하고 만들어나간다.‘재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너무 재밌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삶은 편하긴 해도 재미없지 않았을까.
지방자치단체의 아키비스트로서 ‘일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역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것, 조직내부, 지역사람들과 협력과 협업을 잘하는 것, 눈앞이 아니라 100년 후의 지역역사를 생각할 수 있는 것. 지방자치단체 기록관은 지역과 가장 가까이에 있으니 이런 능력이 필요할 것 같다.
주변에 친구, 동료, 선후배 등 많은 기록전문가들이 있을텐데. 모여서 이야기하는 가운데 느끼는 문제의식이나 바람이 있다면?
우선은 우리가 너무 일이나 사람에 안주해 있는 것 같다. 해오던 일을 끼리끼리 모여 도모한다. 변화나 혁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싶다. 또 한 가지는 내로남불이 심하다는 것. 손가락질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나부터도 노력과 성찰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록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록학은 정적이면서도 활동적인 학문이다. 서고에서 홀로 문서더미를 정리하는 일 만을 배우지 않는다. 기록과 사람을 찾아다니는 적극성을 가져야겠다는 각오로 공부를 시작하면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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