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계속해보겠습니다: 대검찰청 이현정

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인터뷰시리즈-17

 

‘아키비스트는 사회적 기억의 수호자’라고 말하지만(각주 1), 그렇다고 이 말이 아키비스트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부분을 연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닐겁니다. 자신이 맡은 부분에 대해 더 고민하고 노력하면 그 합이 모여서 ‘사회적 기억’이라는 것을 형성하는 데에 일부 기여할 수 있게 되겠죠.

다가오는 11월 15일은 대검찰청의 국가형사사법기록관이 개관 1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보존기간이 30년 이상인 중요 검찰기록물을 관리 대상으로 하는 이 기록관은 중요 검찰기록물을 보존, 관리하는 전문 시설을 갖춘 대검찰청의 특수기록관입니다(소개 페이지 보기). 이 특수기록관 개관 뒤에는 2007년부터 이 기록관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온 분이 계신데요, 긴 과정 속에 한 분야의 사회적 기억을 담아내고 있는 대검찰청의 이현정 기록연구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서면인터뷰로 진행하였습니다. (류신애, 황진현 정리)
  • 답변 내용은 2019년 10월 29일 현재를 기준으로 합니다.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대검찰청 기록연구관 이현정.  대검찰청에서 13년째 기록연구직(아키비스트)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 본인에게 가장 소중한 세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나의 가정, 나의 일, 나의 미래

1. 나의 가정

남편, 딸아이…이렇게 세 명이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습니다. 딸이 생기면서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지만 아이가 집안의 활력소가 되는 것 같아요. 남편이랑 저는 딸아이를 챙기면서 서로 공유하는 지점도 많이 생기고 서로 도와가며 양보해가며 살게 되더라구요. 부모님에 대한 생각도 자식을 낳으면서 어떤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셨는지도 더욱 이해가 되구요. 가정이 저에게 깨닫게 해주는 것들이 많습니다.

2. 나의 일

역사를 전공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기록관리학을 접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이 기록관리가 제 業이 될 줄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인생의 가장 많은 부분을 기록관리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만큼 제 인생에서 이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3. 나의 미래

일이 있고 가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항상 하게 되더라구요. 앞으로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고 있어요. 딱 떨어지는 답이 있는 것은 아니고 계속 고민을 하고 있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역사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2005년 명지대학교 한국기록관리학교육원에 입학하셨습니다. 기록학이라는 학문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역사학도로서 교육원에 입학하기로 한 계기는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기록관리학은 대학원 선배들이 이전에 많이 입학을 하셨다가 자격증 문제 때문에 계속 학업을 유지하시지 않은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대학원 다닐 때부터도 알고는 있었는데, 졸업하고 나서 한 대학원 선배가 기록관리학을 공부를 해두면 좋겠다는 조언을 듣고 2005년도 명지대학교 한국기록관리학교육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원에서 기록관리학을 공부하는 동안 역사학과는 다르게 현재 사회현상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실용적 학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많은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대검찰청에서 기록전문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여러 중앙행정기관에서 동시에 채용 공고가 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검찰청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그리고 기록연구사라는 신입을 처음 맞이한 기관의 반응과 기대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대검찰청은 2005년 동시 채용 공고일 때 같이 나지는 않았어요. 2006년도 2월에 별도로 대검찰청 기록연구사 채용공고가 났고, 저는 교육원을 2월에 졸업해서 3월에 시험을 볼 수가 있었어요. 교육원을 졸업하자마자 대검찰청 채용공고가 나서 사실 큰 고민 없이 지원을 했던 것 같아요.

2006년도 대검찰청에서 기록연구사를 채용할 때는 대검찰청에서 직접 공고를 내고 채용을 했었어요. 그래도 기록연구사라는 직렬 자체가 매우 생소했고 이전에 기록관리 업무를 맡고 계신 분들이 실무관급이었기 때문에 6·7급 상당의 기록연구사가 기록관리 업무를 진행한다는 것이 기관에서는 좀 어색하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아요. 과연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인지,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인지, 어떤 업무를 진행할 것인지 등등…의구심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기관에 들어가서 자신이 세웠던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제일 처음 맡은 일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처음 대검찰청에 들어가서 맡은 일은 각 청의 담당자 교육이었습니다. 전국 검찰청이 60여개가 되기 때문에 각 담당자들에 대한 교육과 생산현황통보 등 많은 업무들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공무원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공문형식도 잘 몰랐는데 당장 각 청의 담당자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해서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검찰청에 입사하고 1년 남짓 지날 때쯤 검찰청에서 정말 필요한 기록관리가 무엇인지 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검찰청은 사건기록이 가장 중요한 기록 중에 하나이고 이 기록들이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세운 목표가 검찰 특수기록관 건립과 중요기록물 DB구축 이었어요. 중요한 기록들이 훼손·멸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중앙집중적인 보존시설이 필요하고 검찰 기록관리의 Control Tower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록관이 건립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기록관을 건립하는 것은 오랜 세월이 걸릴 수 있는 일이니 우선적으로 중요기록물을 정리하고 전산화할 수 있는 DB구축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현명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행정안전부 예산을 확보해서 먼저 DB사업을 5년간 추진했습니다.

대검찰청은 내부 직원의 주류가 검사인 조직이라는 점에서 특수해 보입니다. 다른 기관과 비교할 때 비교할 때 조직 문화나 업무 절차 등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검찰청은 내부 직원이 검사, 검찰수사관, 전산·통신직, 시설직, 공업직, 연구직(보건연구직, 공업연구직, 기록연구직, 학예연구직)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수사가 검찰의 주된 업무이다 보니 직원의 주류가 검사인 조직이 맞고, 나머지 직렬들은 사건 수사에 지원을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른 조직에 근무해본 경험이 없어서 검찰이 지니는 조직문화의 차이점은 잘 모르겠구요. 기록관리적 측면에서의 업무절차에서 차이점이 있어요. 타 조직 같은 경우에는 기록관리 부서가 총무과 또는 운영지원과 등 1개의 부서에서 처리하고 있지만, 검찰 조직은 사건기록관리는 기록관리과(집행과)에서 관리하고 행정기록관리는 운영지원과(총무과)에서 관리합니다. 기록관리가 이원적인 체계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대검찰청은 다수의 고등검찰청과 지방검찰청을 두고 있습니다. 이제 고검과 지검에 연구사들이 대부분 배치가 되었는데, 소속기관 연구사들과의 협력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검찰청은 한 5년 전부터 기록연구사가 고등검찰청과 지방검찰청에 1명씩 배치가 되고 검찰특수기록관인 국가형사사법기록관이 건립되면서 일부 기록연구사가 충원되어 지금은 총 29명의 기록연구직이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산하 청에 있는 기록연구사들과 긴밀한 협력체계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작년에 국가형사사법기록관이 개관하면서 이제 체계를 갖추고 있는 터라 아직까지는 그 부분까지 신경을 잘 못쓰고 있어요. 앞으로는 국가형사사법기록관과 전국 검찰청의 기록연구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루어서 전국 청의 기록관리체계를 수립할 때 많은 조언과 합심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10년 넘게 한 기관에서 일해 오셨습니다. 슬럼프도 있었을 텐데 직장을 관두고 싶다거나 기록연구사 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때가 있다면요?

검찰청에 입사한 이후로 13년이 지나고 있어요. 꽤 오랜 세월이 지났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그냥 진행하던 업무를 쭉 해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검찰 특수기록관 건립이 한 10년 정도 세월 동안 이루어지다보니 그 업무를 진행하면서 많은 고비들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없던 것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많은 설득과 협조가 필요한 일이라서 이 부분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고 필요한 자원을 수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더라구요.

 

준비 과정에서 모든 과정이 다 기억에 남고 그 고비를 넘기는 그 순간 순간이 모두 뿌듯하기는 했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그 중에서도 기록관 건물이 신축되어 완공되는 순간과 시스템 개발을 완료되어 오픈하는 순간이 가장 뿌듯했어요.

다음 달(2019년 11월)에 국가형사사법기록관 개관 1주년을 맞습니다. 2013년과 2018년 기록인대회에서 발표하기도 했지만, 검찰청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준비해서 설립한 기록관입니다. 관련해서 2019년 국가기록원 50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으시기도 했는데요,  특수기록관을 주도적으로 준비해 온 연구사로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싶어요. 맨 처음에는 검찰 특수기록관 건립이 검찰에서 가장 필요한 기록관리가 아니겠냐는 생각으로 2007년 검찰 100대 전략과제로 제출했고 그것이 선정되면서 1년간 벤치마킹, 현황조사 등을 통해서 기록관 설립 목적, 기능, 조직, 규모 등을 수립했어요. 사실 그 당시에는 이 과제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많이 못했습니다. 부지도 있어야 하고 예산이 워낙 많이 소요되는 일이기 때문에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10여 년이 흐른 지금 기록관에서 제가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 좀 신기하기도 하고 진짜 이렇게 건립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아요.

기록관을 건립하면서 너무 많은 고비들이 있었고 업무적으로도 힘든 일들도 많아서 사실 누군가 건립을 시작한다면 굉장히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도 국가형사사법기록관에서 중요기록물을 수집해서 관리체계를 수립해나가고 같은 직렬의 기록연구사들과 함께 근무를 하면서 검찰 기록관리의 정책을 수립하기도 하고 시스템을 개발해가면서 조금이나마 한걸음씩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조직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아가고 있을 것 같은데 국가형사사법기록관 내에 기록연구사는 몇 명이 있는지, 업무 분담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국가형사사법기록관은 기록연구직이 5명인데, 그 중에서 기록연구관이 1명이고 기록연구사가 4명입니다. 업무는 처리실 기준으로는 중요기록물을 수집하고 등록하는 수집팀, 수집된 기록물을 정리 등록하는 정리등록팀, 정리등록이 완료된 기록물을 스캔하고 색인목록화 작업을 하는 스캔팀, 스캔 완료된 기록물을 마이크로필름화 하는 마이크로필름화팀으로 업무 분담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기록관리 표준이나 지침을 수립하고, 기록관리 계획수립, 전자기록물 관리, 행정기록물 및 압수물 관리, 공개재분류, 국가기록원 이관 등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요.

예산, 인력은 물론 구체적인 설립과 운영 계획까지 설레지만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고, 준비 과정에서 가장 뿌듯했던 때는 언제였나요?

국가형사사법기록관을 건립하면서 계획 수립, 건물 설계, 공사, 조직, 예산, 시스템 개발 등 여러 건립 사안들을 추진했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을 뽑으라고 한다면 예산 확보와 시스템 개발이었어요. 처음 기록관 건립하는 것으로 확정되고 예산을 확보했는데 일반 건축물 공사 정도를 할 수 있는 예산이었어요. 기록관은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다른 건축물에 비해서 예산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기획재정부와 관련 자료를 확보하여 협의해가는 과정이 만만치 않더라구요. 그리고 건축 부지가 상업건물 건축 부지이다 보니 건축지정선이 인도와 인접한 지역이라서 그 건축지정선을 후면으로 미는 작업도 서울시와 협의해가야 하는 부분이 많아 6개월 이상 소요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다른 부분을 꼽으라고 한다면 시스템 개발 분야인데요. 현재 기록관리시스템과 국가형사사법기록관 시스템 2개의 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이 정말 많이 힘들더라구요. 검찰기록 특성에 맞게 시스템을 구현하는 과정이 3년 정도 걸렸는데요. 1년 정도는 매일 3~4시간씩 시스템 개발 회의를 전산직 계장님과 진행했는데요. 정말 힘든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준비 과정에서 모든 과정이 다 기억에 남고 그 고비를 넘기는 그 순간 순간이 모두 뿌듯하기는 했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그 중에서도 기록관 건물이 신축되어 완공되는 순간과 시스템 개발을 완료되어 오픈하는 순간이 가장 뿌듯했어요.

 

사법기록관-1
국가형사사법기록관 전경. 꾸준한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네요.

1년간 (내부) 이용자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던 기록관 서비스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30년 이상의 기록물을 관리하는 사실상 아카이브로서, 기획중인 시민 대상 서비스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직은 많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지는 못해요. 그래도 내부 이용자들은 수사에 필요한 사건기록을 시스템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시민 대상 서비스로는 저희 기록관에서 학생(단체)들에게 견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고 있어요. 사건기록이 어떻게 수집되고 처리되고 관리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2013년에 박사과정을 수료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사과정에 입학한 계기와 앞으로 더 연구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 들려주세요. 

제가 교육원을 졸업하고 기록관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라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그래서 대검찰청에 입사한지 3년 정도 지난 시점에 박사과정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 초에 박사과정 수료를 했는데 그 이후로는 아이를 키우고 회사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서 대학원 박사과정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미루게 되었어요.

지금은 일단 생각만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검찰청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형사사건기록에 대해서 연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들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고 그 분야 분야가 모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작은 분야의 기록관리를 추진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존경스럽습니다. 기록관리 라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 기록이 정의를 실현하기도 하고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역사를 만들기도 하죠. 그래서 모든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신 기록인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지금 직장이 본인에게 주는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인가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기 전공을 활용해서 직장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좀 드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기록관리학을 전공하고 그것을 활용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가치를 둡니다.

같이 일할 후배를 더 뽑을 수 있다면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가요?

검찰 기록관리를 같이 고민하고 더 나아가서 기록관리를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머리를 같이 맞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기록커뮤니티의 동료들과 선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다들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고 그 분야 분야가 모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작은 분야의 기록관리를 추진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존경스럽습니다. 기록관리 라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 기록이 정의를 실현하기도 하고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역사를 만들기도 하죠. 그래서 모든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신 기록인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대학원 입학을 고민하는, 또는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사실 요즘은 공공기관에서 기록연구직을 많이 채용하지는 않는 분위기라서 대학원 입학을 고민하거나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이라면 많은 고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단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념이 있다면 한번쯤 도전해볼만한 분야라고 생각해요. 아주 실용적인 학문이라 본인이 수립한 정책이 그냥 생각만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34

 


 

각주1. ICA(International Council on Archives), Who is an archivist?, https://www.ica.org/en/discover-archives-and-our-prof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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