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의 Re:view #3: 디지털 기록과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1/2)

매년 12월 3일은 국제연합(UN)이 지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입니다. 올해 12월 3일 금요일 저는 여느 날처럼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5호선으로 갈아타려는데 보통날과는 다르게 플랫폼은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북적였습니다. 겨우 몸을 비집고 열차에 탑승했지만 거의 모든 정거장마다 대기를 하는 탓에 회사에 지참(遲參)을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열차 내에는 장애인 단체 회원들의 기습 시위로 열차 운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안내 방송과 승객들의 볼멘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또는 평생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비해 겨우 1시간 지참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은 너무 미미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지난 12월 18일 발행된 한겨레 기사에 의하면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은 오히려 비장애인들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장애인의 목숨을 건 투쟁으로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노인, 무거운 짐을 든 비장애인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이동권에 한한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아카이브로 영역을 넓혀, 디지털 기록을 이용할 때 장애인은 어떤 불편함을 겪을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카이브에서는 장애인과 같은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겨우 소수를 차지하는 이용자 유형을 위해 너무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 아니냐는 반대에 부딪쳤을 때 장애인을 위한 아카이브가 비장애인들에게 어떻게 이롭게 작용하는지 논리를 구성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리뷰에서는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에 대한 문제를 ‘디지털’ 기록에 한정하여, 디지털 기록에 대한 장애인 정보 접근성과 관련한 지침(1편)우수 사례(2편)까지 총 두 편에 걸쳐 소개해보겠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먼저 유네스코(UNESCO)의 ‘접근 가능한 기록유산(Accessible Documentary Heritage)’ 지침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지침의 서문은 유네스코의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 2030의제에서 물리적 및 디지털적으로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강조합니다. 이는 기록유산의 디지털화를 통해 문화 접근성이 보편적으로 확대된 오늘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서도 중요한 논의입니다.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디지털화의 이점을 누려야만 진정한 정보 접근성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디지털 기록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성을 지원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장애 보정 기술(assistive technologies)’입니다. 장애 보정 기술은 휠체어, 전용 소프트웨어, 맞춤형 전자 기기 등 장애인이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를 이용하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장애 보정 기술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여러 지침과 기준이 있지만, 월드와이드웹컨소시엄(World Wide Web Consortium)이 수립한 ‘장애 보정 웹 컨텐츠를 지원하는 웹 컨텐츠 접근성 지침(Web Content Accessibility Guidelines, WCAG)’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2019년 8월 기준으로 상위 10,000개의 웹사이트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조사 대상 중 2%만이 WCAG 2.0의 기준을 충족했다고 합니다. 아직 장애인 접근성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자료는 역시 유네스코가 발간한 ‘기록유산 디지털화의 기본 원칙(Fundamental principles of digitization of documentary heritage)’입니다. 이 지침에 따르면 디지털화 과정은 (1) 기획, (2) 디지털화 전, (3) 디지털 변환, (4) 디지털화 이후까지 총 네 단계로 나뉘어지는데요. 장애인 접근성 문제를 디지털화의 모든 단계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한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기획 단계부터 접근성 문제를 고려하기 위해서는 잠재적인 장애인 이용자들의 요구사항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비롯하여 장애 보정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보격차를 겪기 쉬운 사회적 약자일수록 기획 단계부터 이들이 직면하는 문제를 예측하여 접근성을 보장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리뷰를 위해 자료를 찾던 와중에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이 법률은 경제적·지역적·신체적 또는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생활에 필요한 정보통신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자에게 정보통신망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과 정보이용을 보장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제정되었다고 합니다. 무려 20년 전이지만 위 지침들과 취지는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2009년에 폐지되었지만 ‘국가정보화기본법’에 녹아 있는 이 법은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온 언택트 시대에 새로운 시사점과 경각심을 줍니다. 사회적 약자의 불편함이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정의로운 아카이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단계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장애인 정보 접근성과 관련한 우수 기관 및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더 보기>

  • 국립중앙도서관의 월드라이브러리에서는 유네스코(UNESCO)의 ‘접근 가능한 기록유산(Accessible Documentary Heritage)’ 지침을 총 2회에 걸쳐 번역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 월드와이드웹컨소시엄(W3C)의 접근성 지침 실무그룹(Accessability Guidelines Working Group, AGWG)은 2021년 12월 7일 WCAG 3.0 작업 초안(Working Draft)을 공개하였습니다. 이 WCAG3은 WCAG2보다 더 폭넓은 유형의 웹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도구 또는 조직 및 장애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1 thought on “차차의 Re:view #3: 디지털 기록과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1/2)”

  1. […] 지난주 뉴스레터에서 우리는 디지털 기록에 대한 장애인 정보 접근성과 관련한 지침을 살펴보았습니다. 대표적인 지침으로 유네스코(UNESCO)의 ‘접근 가능한 기록유산(Accessible Documentary Heritage)’ 지침과 ‘기록유산 디지털화의 기본 원칙(Fundamental principles of digitization of documentary heritage)’이 있었습니다. 또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경제적·지역적·신체적 또는 사회적 여건으로 정보통신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자에게 정보 이용을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는 내용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 지침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디지털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입니다.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디지털화의 이점을 누리고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정보 접근성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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