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의 Re:view #4: 기억과 기록 사이

요근래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낸 일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가족은 저에게는 항상 먼 존재였죠. 경상도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문화 속에서 여성을 차별하고 저의 소중한 사람을 부려먹는, 굳이 비유를 든다면 놀부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 그랬던 탓일까요? 그 가족과의 추억이나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를 떠나보낸 뒤에야 알게 되었어요.

예전에 독일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시냐, 왜 개인의 역사들을 알지 못하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6.25 때 조부모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물었는데 제가 대답하지 못했거든요. 그때는 ‘안친해서 물어본 적 없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렇게 떠나보내고 나니 문득 그 때 그 순간이 기억나요. 조금이라도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해둘걸, 살갑게 찾아가서 녹음기 들이밀고 옛날 이야기라도 해달라고 할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해드릴 첫 번째 전시는 ‘한 사람의 기억력보다 더 강력한 것은 어떻게든 기록하고 남기는 것’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잉크>예요. 작가는 거대한 사건들 속에서 역사를 쓰는 주체로서의 지식인과 목격자로서의 예술가가 어떤 선택을 통해 ‘쓰는 자’가 되는 지를 주목하고 있지요.

(참고: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잉크 전시소개)

저는 무엇보다 이 전시의 제목이 가장 끌렸어요. 개인의 경험 뿐 아니라 사회적인 사건들까지, 모든 것은 기억에서부터 출발하여 기록으로 남겨져 이어져야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해서요. 전시에서 보여주는 기억의 기록화는 어떤 것들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지는 여기에서 직접 보실 수 있어요.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잉크>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 전시정보

기간ㅣ 2022년 2월 11일 금요일 – 2022년 3월 25일 금요일

장소ㅣ 스페이스99 (서울시 구로구 부일로 9길 135)

시간ㅣ 화-금 14-17시, 토 10-17시

요금ㅣ 무료


다시 저의 가족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가족의 장례식은 모두들 덤덤히 잘 보내주었어요. 이제 남은 순서는 사십구재를 지내고 그의 짐을 정리하는 것이었지요. 사십구재를 지내며 사람들은 하나 둘 가족과의 추억을, 그와의 기억을 이야기하였어요. 또 가족의 짐을 하나 둘 정리하며 그가 가지고 있었던 물건, 그가 보관했던 사진첩을 보며 간접적으로나마 가족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이소선 10주기 특별기획전: 목소리> 중 ‘함께하며 기억하는-제3차 노동구술기록사업 사료전’도 이소선을 기억하는 15명의 인물이 이소선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억울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서 신념과 가치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이소선을 기억하는 인터뷰는 이 전시에서 보여지고 있지요.

(참고: 목소리 전시소개)

인물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인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작업이에요. 본인의 생각과 경험에 따라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 다음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그를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 중 하나예요.

<목소리: 이소선 10주기 특별기획전>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 전시정보

기간 | 2021년 8월 31일(화) – 2022년 5월 29일(일)

장소 |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3층 꿈터(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05)

시간 | 화-일 10-18시

요금 | 무료


저에게 할머니는 애증의 대상이자, 너무나 궁금한 사람이었고 또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비록 그의 기억들을 직접 들을 기회는 놓쳤지만,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과 남겨둔 기록 사이 그 어드메를 유영하며 뒤늦게나마 그를 알아보아야겠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와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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