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의 Re:view #5: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연구사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직장에서 듣는 질문입니다. 저는 대다수가 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기록연구사’라는 길고 생소한 호칭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떠올려볼 때 이 체계에서 벗어난 직급 명칭을 가진 분들은 주로 임금피크제에 진입한 일반직 분들입니다. 변호사도 회계사도 디자이너도 개발자도 직급을 가지고 있는데 저 혼자 ‘기록연구사’이니, 직원들 입장에서 “이 사람은 뭐지?” 싶을만 합니다. 공무원인 기록연구사/기록연구관 분들은 이런 질문을 덜 받을 수 있겠네요.

왜 이런 일이 발생했냐면, 저는 대다수 직원이 속하는 일반직이 아니고, 별도 직렬 분류 중에서도 (인사 부서에서 판단하기에) 애매한 직종을 모아놓은 카테고리에 편성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이 집단에 속하는 사람은 경력과 직무에 무관하게 이 기관이 속한 업계의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주임’이 됩니다. 인사 부서에서는 대신 다른 공식 호칭을 쓸 수 있게 해 주었고, ‘기록연구사’로 해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진거죠(정확히는, 제 상사가 저의 의견을 존중해준거죠). 아직 같은 직렬에 속한 다른 직종의 직원들 중 ‘주임’이나 다른 호칭을 받은 사람을 본 적은 없습니다. 당한건가..? 제 전임자가 들어올 때는 이런 식으로 제도가 바뀌기 전이었기 때문에 경력을 인정 받아서 ‘대리’라고 불렸고, 그래서 저라는 존재는 더더욱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기록연구사’는 저에게도 익숙한 호칭은 아니에요. 호칭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 일이 처음이었던 저는 이런 생각의 흐름을 거쳤습니다.

  • ‘기록물관리전문요원’: 공공기록물법에서 명시하는 자격 이름이긴 하지만 일단 너무 길다. 그리고 ‘요원’이라니 뭔가 굉장히 비밀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
  • ‘아키비스트’ 또는 ‘레코드매니저’: 대리/과장/차장..으로 올라가는 체계 속에서 혼자 너무 튄다.
  • ‘기록관리사’: ‘Records Manager’의 번역어라고 생각하면 나쁠 건 없지만 쓰이고 있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관리사님’은 ‘연구사님’보다 더 어색하다.
  • ‘기록연구사’: 그렇다면 공무원 직급 명칭인 이 단어가 제일 합리적이긴 한데 여전히 길고, ‘연구사님’은 높은 사람 느낌이라는 상사의 의견이 있다.

[입사 첫 날에 봉착한 질문. 나는 누구인가.]

그래서 기록’연구원’이라고 합의가 될 뻔 했지만, 기록공동체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 명칭은 기록관리업무를 보조하는 실무자들의 직급명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는걸 알게 되어 ‘기록연구사’로 신청서를 정정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 저는 ‘기록연구사’ 라고 적힌 명패를 새로 받았고 그제서야 명함을 신청했습니다.

명함신청서에는 뒷면에 들어가는 영문 호칭을 슬며시 ‘archivist’라고 입력했습니다. 사실 내가 일반적인 의미의 ‘아키비스트’라는 영어 단어와 매칭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의문이 있긴 합니다. 영미권 기준으로 볼 때 내 일은 ‘archivist’보다는 ‘records manager’나 ‘records officer’에 더 가까우니까. 하지만 ‘아카이브’도 내 업무 범위에 있고, 나는 21세기에 필요한 아키비스트가 되고 싶으니까. 그리고 사실 제일 중요하게는, 나는 ‘아키비스트’라는 말이 좋으니까 그렇게 썼습니다.

명함 앞면에도 당당하게 ‘아키비스트’라고 적을 수 있게 될, 내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부를 날을 기대해 봅니다.


근데의 리뷰 #5: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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