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시리즈에서는 제프리 여(Geoffrey Yeo)의 2017년 인터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프리 여는 기록의 개념을 확장하는데 기여하고, 전자기록관리에 있어 InterPARES 등 다양한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입니다. 시기가 좀 오래된 인터뷰이기는 하나,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기록학 연구자는 어떻게 이 학문에 입문하게 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인터뷰라 소개해보기로 했어요.
여러분이 기록학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혹시 미쳤다(crazy)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으셨나요?
- 이 포스팅은 영국 기록전문가협회( Archives and Records Association, ARA)의 블로그 웹페이지인 The New Archivist의 Career 인터뷰 중, Geoffrey Yeo의 인터뷰를 번역한 글입니다.
The Careers Officer(이하 ‘진로 담당자’)는 내가 막 내리려는 선택을 정말 후회하지 않을 것인지 내게 물었다. 나는 학부 마지막 학년이었다. 진로담당자에게 기록학(archives)과 고고학 사이에서 직업을 결정하고 싶다고 말한 참이었고, 그녀는 내가 미쳤다(crazy)고 확신했다. ‘Civil Service(공공기관, 공무원 행정조직)에 들어갈 생각은 해봤나요?’라고 내게 물었다. ‘아니면 법 쪽을 고려해 볼 수도 있겠네요. solicitor(사무변호사, 공공기관의 법무관)가 되는 것은 어떨까요?’ 진로담당자는 엉뚱한 학생들을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직업 선택으로 이끄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는 1970년대 중반이었고, 나는 그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블로그의 많은 독자들처럼 나도 역사의 ‘원 자료(raw materials)’를 가지고 일하고 싶었다. 결국 진로 담당자는 나를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글쎄, 정말로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아카이브를 선택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고고학을 선택하면 직업 전망이 좋지 않아 아마도 인생의 대부분을 실업자로 보내게 될 거에요. 아카이브에서는 결코 많은 돈을 벌거나 현기증 날 정도의 영향력(rise to dizzy heights of influence)을 발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취직하고자 할 때 일을 구할 수는 있을겁니다.’
진로담당자가 고고학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이 사실인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내가 상상했을 때 고고학자에게 필요할 것 같은 무한한 인내심이 내겐 없다는 것을 알았고, 이미 아카이브 쪽으로 진로를 택하는 것으로 결심을 한 상태였다. 진로 담당자는 ‘아카이브 작업’이라는 제목의 3페이지짜리 리플렛을 줬는데, 나는 아직도 이걸 가지고 있다. 리플렛에는 집중력, 행정에 대한 관심, 힘든 일을 기꺼이 수행하려는 의지,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 지난 세기의 일상 생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행정에 대한 관심’은 잘 모르겠지만, 나머지는 다 괜찮은 것 같았다. 리플릿에는 아키비스트의 업무 중 일부가 ‘일상 업무에서 축적되는 기록(records)’에 관한 것이며, 이를 ‘기록 관리(records management)’라고 한다고 했는데 – 이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명칭이었다.

그래서 나는 University College London의 도서관, 아카이브 및 정보학부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그러면 지금처럼 ‘UCL 과정’을 1년 안에 이수할 수 있었다. 이는 대학원 학위 과정으로 광고 되었다. 몇 년 후 나는 UCL에서 아카이브 연구에 대한 석사 및 박사 과정도 할 수 있다는걸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잠잠했다. 어쨌든, 1970년대에 학위는 아키비스트를 고용하는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이었다. 이 과정은 놀랍게도 포괄적이어서 앵글로색슨의 글부터 1970년대 스타일의 컴퓨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루었지만 주로 사실을 배우는 데 중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오늘날의 UCL 학생들과 달리, 우리는 배운 것에 대해 질문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낯설었다.
UCL에서 나는, 영국에서 온 약 12명의 정규 아카이브 과정 학생 중 한 명이었다. 학생 수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내 생각에 우리 모두 – 물론 대부분 – 학위 후에는 지방 정부에서 아키비스트로 일할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공석의 대부분은 카운티 기록관(county record offices)의 보조 아키비스트(Assistant Archivist) 직책인 것을 보아서였다. 나는 records management에 대한 공고를 본 기억이 없으며 UCL에서 records management 대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 누구도 그 방향으로 경력을 이어나갈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UCL에서 공부할 때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자리는 영국 county record office, 더 좋게는 역사적인 도시나 대성당이 있는 도시에 있는 기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다르게 전개되었다. 실제로 county record office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 1970년대에도 영구적인 일자리를 얻기란 항상 쉽지 않았고, Warwickshire Record Office에서 몇 달의 단기 계약직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런던에 있는 Guildhall Library, St Bartholomew’s Hospital, Royal College of Physicians의 다른 주류 아카이브에도 근무했다. Guildhall과 Bart’s는 일하기 좋은 곳이었다. Guildhall는 런던 역사의 거의 모든 측면을 포괄하는 풍부하고 다양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었고, Bart’s는 최첨단 의료 및 의학 교육을 제공하는 850년 된 기관이었다. 물리학 대학에서는 아카이브 업무와 같이 기록관리 업무도 맡았지만, 나는 여전히 예측 가능했던 진로를 따르고 있었다.
다만 내가 초보 전문가였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내가 학생이었던 UCL로 돌아가 아카이브와 records management 프로그램을 가르칠뿐만 아니라, 급성장하고 있는 아카이브 교육 및 연구 국제분야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지난 20~25년 동안 아카이브용 ADLIB 컴퓨터 시스템의 초기 개발에 참여했고, LEADERS 및 InterPARES를 포함한 여러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석사 및 박사 수준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했다. 기록 관리(records management)에 관한 베스트셀러 책을 공동 집필했고, 레코드매니저와 아키비스트를 위한 전문 서적 시리즈를 편집(edit)했다. 기록 기술(records and archival description)의 개념에 대해 광범위하게 글을 쓰기도 했다.
영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디지털 기록에 관한 유럽 DLM 포럼과 협력했고, Gambia의 병원 기록을 재구성하기 위한 IRMT(International Records Management Trust) 프로젝트의 컨설턴트로 일했으며, 보츠와나와 우간다의 교육 설계 워크숍에 참여했다. 캐나다 대학에서 기록학 객원 교수로 4개월간 근무하기도 했다. 오슬로(Oslo)에서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밴쿠버에(Vancouver)서 호바트(Hobart)에 이르기까지 컨퍼런스 연설에 초대받았다. 처음 직업을 선택할 때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나의 기술(skills)을 연마하고 직업에 기여할 수 있었다.

오늘, 새로운 전문가들에게 내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서 기쁘다. 기록 분야의 커리어는 당신을 부자나 권력자로 만들어주지는 않겠지만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거라고 했던, 진로담당자의 말은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