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의 Re:view #6: 더치 매뉴얼

근데의 Re:view에서 첫 3주간 젠킨슨의 기록관리편람을 살펴보았었는데요, 오늘은 그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1898년에 네덜란드에서 출판된 “보존기록의 정리와 기술을 위한 매뉴얼(a.k.a. 더치 매뉴얼)입니다. 영어로는 물론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중국어로까지 번역된 ‘더치 매뉴얼’은 그렇게 유럽과 영미권 기록 실무에 큰 영향을 미쳤고 “현대 아키비스트들의 성경”이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주1).

[여기부터 표지 그림 전까지는 주2, 주3 자료의 일부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의 내용은 오직 세 사람의 새로운 생각으로 나온건 아닙니다. 에릭 케텔라르(Eric Ketelarr)에 따르면 저자 중 한 사람인 샘 뮐러(Sam Muller)와 같은 나이이기도 했던 아키비스트 판 림스딕(Van Riemsdijk)이 이 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둘은 비슷한 커리어를 밟아왔고, 둘 다 1800년 이전 기록을 정리할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 때는 “아카이브 시작하기” 같은 책이 없었기에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기록학 이론을 만들어나갔다고 합니다.

판 림스딕은 1877년에 ‘기록 archival documents는 그 본질과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원래대로의 맥락에 놓여야 한다”고 했고, ‘퐁에 따른 정리는 그 원 조직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고 해요. 익숙한 내용이죠? 그는 또 기록이 만들어진 출처를 조직으로 국한하지 않고 기록관리 절차와 등록 체계 등으로도 확장해서 보았다고 하는데요, 이 지점에서 더치 매뉴얼 세 저자와 의견이 갈렸고, 림스딕은 탈보관주의 패러다임의 선구자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더치 매뉴얼에 영향에 준 배경이 또 있는데, 바로 샘 뮐러가 프랑스 고문서학교(Paris Ecole des Chartes)에서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뮐러는 수업을 했던 교수가 퐁 존중의 원칙을 아주 많이 강조했다고 회상했었다고 해요.

그럼 왜 ‘매뉴얼’이었을까요? 이건 실증주의가 발전해 있던 19세기 후반의 상황, 그리고 세 저자를 지원했던 내무부 예술/과학부 책임자인 빅터 드 스투어스(Victor de Stuers)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문서보관소, 기념물 및 박물관 분야에서 중앙집권적 정책을 만드는 강한 정신의 소유자”로 묘사된다고 하는데요, 기록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방안 중 하나로 주(province) 수도에 있던 아카이브를 국가 관할로 점차 바꾸어 나갔고, 그 과정에서 기록을 정리하는 방법을 단일하게 표준화할 필요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구글에서 ‘dutch manual’이라고 치면 한 번에 SAA에서 2003년에 발간한 영문판본 원문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표지부터 한 번 볼까요?

이렇게 생겼네요. 몇 장 넘겨서 서문을 보니 이 세 저자는 ‘이 책은 지루하고 꼼꼼한 책이라는 점을 경고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또한 이 책은 동료들의 어깨에 무거운 멍에를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며, 자신들이 쓴 규칙을 고려하고 만일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설명과 비판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럼 이제 목차와 구성을 한 번 보죠.

목차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는데요,


Chapter I . The Origin and Composition of Archival Depositories . . . . . . . . . . . . . . . . . . . . . 13

Chapter II . The Arrangement of Archival Documents . . . . . . 48

Chapter III . The Description of Archival Documents . . . . . . 100

Chapter IV . The Drawing Up of the Inventory . . . . . . . . . . . 125

Chapter V . Further Directions for the Description of Archives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60

Chapter VI . On the Conventional Use of Certain Terms And Signs . . . . . . . . . . . . . . . . . . . . . . . 190

Index . . . . . . . .. . . . . . . . . 219


이렇게 목차를 보고 원문을 쭉 스크룰하다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바로 1부터 100까지, 챕터와 상관 없이 중요한 단락에 숫자가 이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초반에는 기록(archival collection)의 범위를 설명하고(1번), ‘기록은 하나의 유기체임을 밝히는(2번)’ 큰 이야기가 나오는데, 100번으로 가니 설명서처럼 구체적인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럼 번호 몇 개만 뽑아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은 제2장~제6장까지 각 장의 첫 문장을 모아본 것입니다.

기록 컬렉션은 그 기관이나 관련자들이 남겨서 보관하기로 의도한 범위 안에서, 쓰여진 문서, 인쇄된 것, 관리 조직이나 그 행정관들이 공식적으로 만들었거나 접수한 것 모두이다.

– 제1장 (기록관의 기원과 구성)

15. 기록 컬렉션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 제2장(기록의 정리)

37 . 기록 기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벤토리는 가이드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벤토리는 문서의 내용이 아니라 컬렉션의 개요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 제3장 (기록의 기술)

50. 기록 컬렉션의 인벤토리는 그 컬렉션 원질서와 일치하도록 배치하여야 한다.

– 제4장 (인벤토리 작성)

70. 기록보관소의 일반적인 인벤토리에서 기록 컬렉션의 기술이 어디 올 것인지를 결정하는 요소는, 인벤토리의 다른 섹션과 관련된 컬렉션의 성질이지, 특별한 행정 기관을 통해 인수된 상황이 아니다.

– 제5장(아카이브의 기술을 위한 추가 지침)

84. 명확성을 위해서 다양한 인벤토리에서 동일한 용어와 기호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제6장(특정 용어와 표시의 관습적 사용에 대해서)

같이 원문을 열어보면 아시겠지만 장과 상관 없이 번호는 쭉 이어지고, 성경 구절처럼 보이기도 하는 문장 뒤에 상세한 설명을 붙이는 구조로 내용이 전개됩니다. 저는 조금씩 훑어 보니 이렇게 당연한 얘기를?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긍정적인 의미가 섞여있어요.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서면으로 남기는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기록원의 표준화 지침을 보는 것 같기도 하더라구요. 앞서 언급했던 맥락을 조금 알고서야 이 책의 구성이나 내용이 조금 이해가 갔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그 책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오늘은 더치 매뉴얼을 살짝 펴봤습니다. 저자들은 2022년의 아키비스트들도 자신들이 쓴 책을 찾아 읽어보고 있을거라는 상상을 했을까요?


주1 | SAA 용어사전, https://dictionary.archivists.org/entry/dutch-manual.html)

주2 | Ketelaar, Eric. 1996. “Archival Theory and the Dutch Manual”. Archivaria 41 (April), 31-40. https://archivaria.ca/index.php/archivaria/article/view/12123. p. 32.

주3| Marcus C. Robyns, (2014). Using Functional Analysis in Archivral Appraisal: A Practical and Effective Alternative to Traditional Appraisal Methodologies. Rowman & Littlefield


근데의 리뷰 #6: 더치 매뉴얼 끝.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