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인터뷰시리즈-20
10년 후의 나를 떠올려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렸을 적에는 막연히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10년 후에는 뭘 하는 사람이 될까’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은데, 점점 미래보다는 현실을 헤쳐나가는 데에 집중하게 되더라구요.
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시즌2 첫 인터뷰의 주인공은,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한양대학교 염지수 선생님입니다. 첫 인상은 차분하고 조용해보였는데, 인터뷰를 해보니 누구보다 용기있고 단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카고대학교 도서관 인턴십부터 모교의 기록연구사가 되기까지 그간의 여정을 들아보았습니다.
커리어 전성기 시작점에 서 있을 10년 후의 염지수 선생님을 기대하며, 시즌2 첫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 일시 : 2023. 8. 18. (금) 22:00-23:30
- 장소 : 온라인(zoom)
- 인터뷰 : 황진현
- 정리 : 류신애, 황진현
본인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한양대학교에서 일하는 2년차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다. 전 직장인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의 경력을 포함하면 4년차다. 현재 직장에서는 기록연구사라는 호칭으로 불리는데, 이게 공무원 직렬명이다 보니 외부에 소개할 때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박물관 소속이긴 하지만 2015년에 역사관 건물이 생겨서, 그 곳에 있는 대학기록실 사무실에서 교육 전문 학예연구사 선생님과 나 둘이서 일하고 있다. ‘기록관리’라고 하면 생각하는 업무가 다 내 일이라고 보면 된다. 행정기록물 관리부터 올해 84주년을 맞은 학교 역사기록물 관리, 교사유물 관리, 역사관에서 운영하는 전시실 콘텐츠 기획 및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학예연구사 선생님은 한국박물관협회 지원을 받는 교육 전문인력이라 역사관 서포터즈 학생들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 운영, 도슨트 접수 및 진행, 각종 역사관 행사 등을 담당하고 있다. 둘이서 하기에는 매우 광범위한 범위이다.
안산에 위치한 에리카(ERICA) 캠퍼스에서 생산되는 기록물에 대한 평가와 폐기도 담당하고 있다. 1년에 두세 차례 방문해서 진행하는 정도로. 일의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SNS와 블로그를 보면 기록학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기록학에는 어떻게 입문하게 되었는가?
사학과 학부생일 때 박찬승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기록연구사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2학기를 보내면서 진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다른 직업에 비해 기록연구사라는 직업은 그 이름만 들었을 때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와닿지가 않아서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06학번 선배를 통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학부생 인턴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페이스북 메시지로 어떻게 지원하면 되는지 문의했다. 당시 SNS 담당자였던 원종관 선생님께서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그렇게 2015년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 간 주 2~3회 정도,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를 했다. 그 때 기록연구사라는 직업에 대해 자세히 알아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료관에 페이스북 메시지로 연락을 했다니 좀 철이 없었다 싶긴 하다.
사료관에서 학부생 인턴으로서 한 업무는 무엇이었나?
인턴으로서는 기증자가 개인적으로 정리해서 기증한 사료를 장기 보존에 적합하도록 보존매체로 옮기는 작업, 반납된 자료를 다시 서가에 넣는 작업 등을 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업무를 단순업무라고 생각해서 흥미를 잃을 수도 있는 일들이다.
일단은 내가 반복적인 업무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가가 주는 느낌 자체가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잘 접근할 수 없는 공간에 내가 들어와 있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닌 것을 선택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으로 선택할 때도 그랬다. 잘 알려져 있지 않더라도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아키비스트가 그런 직업이라 생각해 관심이 많이 갔고, 2016년 8월에 대학원에 입학했다.
충분히 알아보고 진로를 결정했던 만큼 대학원에 입학할 때 나와 학교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텐데, 학교에서 그런 점이 충족되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생각했던 대학원과는 조금 달랐다. 지금도 친구들은 내가 석사학위를 받은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학문으로서의 기록학을 연구하는 것 보다는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공부에 치중이 되는 느낌이 있었다. 기록학이 실용학문이어서 그럴 수도, 또는 학부가 없는 전공이어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맞다. 미디어에서 흔히 보는 ‘대학원생의 찌든 모습’과는 조금 다르기도 하다. 대학원을 다니며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
나는 한국외대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입학하면서 막연하게 기대했던 ‘한국외대’라는 학교의 국제교류 경험과 인프라를 활용할 기회가 대학원에는 많지 않았던 데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예를 들어 기록학 대학원생들에게 해외 대학 아카이브를 견학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더 넓은 무대를 상상할 수 있으니 좋았을 것 같다. 지금 나와 같이 일하는 한양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선생님이 곧 국제박물관협회(ICOM)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시드니로 출장을 갈 예정인데, 우리 대학 박물관을 비롯하여 다양한 국내 박물관이 기관회원 자격으로 ICOM Korea를 결성하고 국제무대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궁금해서 ICA에 가입되어 있는 국내 기록관을 찾아보니 국가기록원, 국회도서관이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국고지원사업 등 석사과정생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대학원에서 키워야 할 연구 역량을 습득할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런 아쉬움이 한국국제교류재단(KF, Korea Foundation)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던 것인가?
그렇다. 학부도 조기 졸업을 하느라 교환학생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해외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가다가 외교부 산하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F)에서 주관하는 글로벌챌린저 프로그램 공고를 우연히 보았다. 세계 유수의 박물관·도서관·싱크탱크에 우리나라 청년 인턴을 파견하는 프로그램인데 이건 꼭 지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녀왔던 KF 도서관 인턴십은 문헌정보학과 전공자들에게 지원 자격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학과 전공자인데 어려움은 없었나?
지원자 조건이 ‘문헌정보학 유관 전공자’라고 조금 애매하게 적혀 있었다. 궁금해서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문의했더니, 지원은 가능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도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학교마다 지원 조건이 조금씩 달라서 살펴보니 문헌정보학과 졸업자로 지원자를 한정하지 않는 대학교가 시카고 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 딱 두 곳이 있더라. 컬럼비아 대학교는 뉴욕에 있는데 물가도 비싸고 해서 1지망으로 시카고대를, 2지망으로 컬럼비아 대학교를 적어서 냈다.
그래서 시카고 대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렇다. 가기 전에는 그렇게 위험한 도시인 줄은 몰랐다. 총 소리도 들었다. 치안이 정말 좋지 않아서 한 학기에 한 명 씩은 총기 사고로 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도 매일 아침 직원들을 대상으로 어젯밤 있었던 사건·사고를 요약한 이메일을 보내 주는데 거의 하루도 조용한 날 없이 ‘누가 강도를 당했다, 갈취를 당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내 근무 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는데, 담당 사서 선생님께서 나에게 아시아인 여성은 더 위험할 수도 있으니 5시에 퇴근하자마자 곧장 집으로 가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래도 주말에는 내가 살던 동네보다는 안전한 편이었던 다운타운으로 버스를 타고 나가서 전시관을 둘러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시카고 대학교 인턴십에서는 어떤 업무를 주로 담당했나?
북한 우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주된 일이었다. 사서 선생님께서 일본 벤더로부터 구입한 2천여 장의 우표였다. 스캔하고 제목만 넣는 수준이 아니었다. 2천 장을 펼쳐 놓고 보면서 주제를 분류하고, 우표 제목과 우표 안에 쓰여 있는 문구를 작성하고, 그 정보를 다시 영문으로 번역도 하는 일이었다. 영문 번역은 우리나라로 치면 도서관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계셨던, 당시 박사과정생이었던 코리안 아메리칸 선생님한테 한 번 검토를 더 받았다.
한국학 자료와 관련해서 문의가 오면 대응해 드리는 레퍼런스 서비스도 했다. 시카고대에는 한국의 대형교회를 연구하는 한국계 미국인 교수님이 계셨는데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지는 못하셔서 그 분을 많이 도와드렸다. 인턴십 기간이 끝났는데도 본인과 별도로 계약을 맺고 줌으로 연구자료 검색, 요약 등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먼저 해주셔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도 몇 개월 일을 더 하기도 했다.
분류체계를 만들어서 적용하고 기술(description)하는 업무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정말 큰 일이다.
맞다. 이렇게 구축한 DB가 지금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다고 들었다. 중앙도서관에 우표 실물을 작게나마 전시했는데 관심을 갖고 둘러보는 학생들이 많았다. 시카고대 교내 신문과 시카고 공영 방송인 WTTW에서도 보도가 되었다.
북한 우표는 외화를 벌기 위한 목적이 물론 크지만 체제 선전도구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보통 우표보다 문구가 빼곡하다. 북한우표만으로 북한 체제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을 정도다. 외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궁금해하기는 하지만 한국어를 하지는 못하다 보니, 상세 정보를 영어로 번역해 둔 것을 보고 관심을 많이 갖는다고 한다.
시카고 대학교에서의 경험이 기록학 공부와 접점이 있었다거나,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더 나은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있었나?
나에게는 2016년에 4주간 싱가포르로 다녀왔던 어학연수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장기간 해외에서 거주한 시간이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도움이 된 것인지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지는 못하겠지만, 낯선 곳에서 혼자 적응을 잘 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냈다는 경험 자체가 도움이 되었다. 기록물관리전문요원들도 보통 기관에서 혼자 일하는 존재 아닌가.
기록학, 문헌정보학 등 모든 유관 전공자들에게 꼭 한번 지원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을 만큼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다만 어느 곳으로 가는 지에 따라 지역적 특수성도 고려할 것을 권한다.
기록학 전공자로서 바라본 해외 도서관의 모습은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시카고 대학교를 포함해서, 해외의 많은 도서관들이 아카이브의 역할을 겸하기도 하니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사서, 아키비스트 등 구성원들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도서관이든 공공도서관이든 기관의 유형을 막론하고 이용자에게 수준 높은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부분이 보였다. 자료를 확보하고 장서를 개발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연구기관이자 공적 공간으로서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느껴졌다.
직위상 서열이 존재하긴 하나 인턴도 관장이 있는 자리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수평적인 분위기였던 것도 기억이 난다. 물론 예산, 인력, 공간부족 등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건 어디에도 존재하는 문제니까.
돌고 돌아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학생 때 내가 정말 좋아했던 공간이니까.
그럼 이제 한국에 들어와서 일한 기관들에 대해서 말해봤으면 좋겠다. 기록물관리전문요원으로서 처음 일한 직장은 대한장애인체육회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돌아온 시기가 2020년 1월이었는데, 4개월 정도 취업준비를 하다가 운이 좋게 서울에 있는 기관에 합격해서 2020년 5월부터 일했다. 1년 7개월 정도 근무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고, 일단 올림픽 공원 안에 있어서 근무 환경은 좋았다.
하지만 기록관리 예산은 0원이었고,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경험을 했다. 일단 예산이 없는 상황이니 창고처럼 방치된 문서고를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일반자료, 간행물 복본 등 문서고에 두지 않아도 되는 자료들을 마대에 담아 버리는 작업부터 했다. 곱등이도 봤고..
그리고는 매일 서고에 노트북을 가지고 들어가서 세 네 시간씩 있으면서 직접 목록을 하나 하나 작성했다. 서울사무처 비전자기록물 전수조사 사업을 나 혼자 한건데, 그 때 내가 정리한 기록물 양이 1만 5천 권에서 2만 권 사이였다. 예산은 없고, 관리는 해야하고, 일단 이 기관에 어떤 기록이 있어야 하는지 파악하는게 시작이니까.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을 처음 채용한 기관이었던건가?
그렇다. 내가 첫 담당자였다. 서울사무처 비전자기록물 전수조사 목록 구축을 끝낸 후에는 또 예산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기록물관리규정 제정, 문서관리규정 개정, 기록물관리 기증과 수집 프로세스 수립, 처리과 기록물관리책임자 대상 교육 같은 것들.
기록물관리보다는 SNS 홍보 업무, 부서 서부 업무, 주간 뉴스레터 작성처럼 다른 일을 다양하게 했다. 2020년 도쿄 패럴림픽대회 때는 미디어 CLO(코로나 연락관, Covid-19 Liaison Officer)로 출장을 다녀왔고, 2021년에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주요종목 및 선수 사진기록물 제작과 홍보도 했다.
그래도 첫 직장이고 서울에 있는 몇 되지 않는 공공기관인 만큼 퇴직을 마음 먹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점 때문에 이직을 고민했는지 궁금하다.
내가 유일한 기록전문가이다 보니 예산이나 기록관리업무의 필요성에 대해서 상급자들의 기록관리에 대한 기관의 의지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1인 기록관 체제에서는 행복한 기록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몸소 체험했다.
정말 고민이 많았다. 내가 유일한 기록전문가인데 기록관리에 쓸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은 정말 없었다. 이 기관이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을 뽑고 싶었다기 보다는 행정직원이 필요했는데 공공기록물법을 통해서 티오를 한 명 받은게 아닌가 싶었다. 주어진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려면 매일 야근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내 몸이 너무 혹사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소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모교에서 기록연구사를 채용하는 공고가 나왔고 이직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양대학교 기록연구사가 되었다. 모교에서 일한다는 것이 특별한 의미일 수 있는데. 어떠한가?
처음에는 진짜 좋았다(약간 허탈한 웃음). 돌고 돌아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학생 때 내가 정말 좋아했던 공간이니까.
하지만 역시 학생으로서 등록금을 내면서 다니는 학교와 직원으로서 월급을 받으며 마주하는 학교는 다르다는 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직장은 직장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혼자 기록전문가이고 ‘기록관리’하면 떠올리는 유일한 직원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성과를 계속 보여줘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있다.
한양대는 오랜 기간 동안 계약직으로 기록연구사를 채용해왔다. 사립대로서, 어떤 지점에서 이제는 기록연구사를 정규직으로 뽑아야 한다고 판단했을까?
사립대학교는 기본적으로 다른 대학교와 경쟁하는 게 있는 것 같다. 업무 보고를 할 때도 다른 OO대학교가 더 잘 하고 있다, OO대학교는 이미 시스템을 도입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하면 ‘그럼 우리도 해야지’ 라고 솔깃해 하는게 느껴진다. 인력 측면에서 봐도, 서울대학교를 포함해서 기록관리 인력이 4-5명 되는 곳들의 기록관이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보니까 ‘우리도 기록연구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올해 84주년을 맞은 학교인 만큼 현재 생산되고 있는 행정기록물부터 역사 기록물까지 모두 관리할 전문 인력이 필요한데, 기존 체계대로 최대 2년까지 근무 가능한 계약직 인력을 채용하는 방식으로는 기록관리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현재 대학교 박물관에 정규직 학예연구사도 단 한 명 뿐인데, 2013년에 들어온 이 분이 열심히 일을 하면서 기록연구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피력해온 것도 도움이 된 것 같다.
또 역사관이 별도로 생긴 후부터 별도 공간을 관리할 인력이 필요해진 것도 있는 것 같다.
한양대학교 역사관의 전시실과 수장고
기억 나는 면접 질문이 있나?
‘면접 전에 한양대학교 역사관에 방문해서 전시실을 한번 둘러본 적이 있’냐는 질문이 기억이 난다. 다대다 면접이었는데, 며칠 전에 언니와 함께 둘러본 나를 제외하고는 가봤다고 대답한 사람이 없어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앞으로 일할 곳’이라는 생각으로 당연히 다들 가봤을 줄 알았다. 이 외에는 자기소개서를 기반으로 한 평범한 질문들이었다.
그게 합격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겠다. 면접을 보러 오는 기관에 대한 애정으로 봤을지도. 보통 출근하고 나서의 업무 루틴은 어떻게 되나?

이건 내가 실제로 매일 쓰고 있는 메모다.해야 하는 모든 일을 쓰고, 하면 동그라미 표시를 하고, 다음날에는 동그라미 표시를 다 지우고 다시 시작한다. 정신 없이 일을 하다 보면 기본적인걸 놓치게 될 것 같은데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다 쓴다.
물 마시기, 텀블러 씻기에 ‘카톡 답장하기’까지 있다!
업무 메신저가 따로 있지 않아서 업무 메시지도 다 카톡으로 오다 보니, 카톡이 올 때마다 집중력이 분산되는 게 싫어서 한 번에 몰아보고 답장을 하고 있다.
어떤 업무에 가장 마음을 쓰는지 궁금하다.
시기마다 달라지는데, 지금은 전시실 개편 업무다. 역사관 전시실 중에 교수님들의 연구성과를 전시하는 ‘미래방(The Future of Hanyang Zone)’ 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2015년에 마지막으로 개편된 공간이라 더 이상 ‘미래방’이 아닌 곳이다. 교수님 총 여덟 분의 연구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중 반 이상이 벌써 정년퇴임을 하셨다.
나에게 전시는 생소한 영역이었는데 각각 다른 업체, 부서와 함께 시설공사, 하드웨어, 전시 콘텐츠를 조율하면서 끌고 나가야 하다 보니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역사관이 사실상 학교의 홍보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신입생들이 처음 캠퍼스 투어를 할 때 꼭 오는 공간이기도 하고.
1인 기록관이다 보니 부가적인 업무가 많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일을 하다가 고민에 빠지는 지점이 있을 것 같은데.
매일매일 느끼는데, ‘내가 아니면 누가 하냐’는 생각으로 한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해줄 딱 한 사람의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어 본다. 저연차 직원으로서 일 잘하는 선배의 퍼포먼스를 가까이서 보고 배우고 싶기도 한데 그럴 수 없어서 아쉬운 점도 있다.
기록과 관련한 최종 결정은 결국 내가 내려야 한다는 데서 오는 부담도 있다. 관장님, 부장님께서 기록관리 업무에 관심을 가져 주시지만, 결국에는 내가 판단을 하고 이끌어가야 한다는게.
중점을 두어야 하는 업무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본인의 자리를 잡아나가면서도 이것만큼은 꼭 이루고 싶다는게 있다면?
아직 기록물을 엑셀로 관리하고 있어서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한다. 현재 대학 차원에서도 기록관리의 중요성을 점차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빠르면 내년 중 예산을 받아 기록물 분류체계 개편과 함께 시스템 도입을 추진해보려고 한다. 또 최근에 다른 대학교 기록관에 출장을 가보니까 기록관리 실무자가 2~3명 함께 일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장기적으로는 계약직으로라도 기록연구사 인력을 한 명 이상 채용하는 일도 해내고 싶다.
내가 이 직장에서 기록전문가로서 기여하고 싶은 것, 또는 직장이 기록전문가인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면 무엇인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였다. 궁극적으로는 내가 기여하고 싶은 것과 직장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을 일치시키고 싶다. 결국 직장에서는 직원이 하나의 부품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더 이상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조직에 할 수 있는 최선의 기여는 내가 없어도 역사관과 기록관리 사이클이 잘 돌아갈 수 있는 하나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직장에 대해 뭔가를 기대하는건 직장인 4년차가 되니 사라졌다. 그저 나 다음에 오는 사람은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혹시 사람들이 나를 전문가로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 경험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혹은 그 반대로 전문가로서 인정받았던 경험은 어땠나?
첫 직장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비전자문서 전수조사를 하더라도 부서 내 캐비닛에 있는 기록물은 각 부서에서 협조를 해주어야 하니 부서별로 기록물관리책임자를 지정하고 조사방법을 교육하려고 대상자들을 불렀다. 보통 이럴 때는 막내 직원들이 오지 않나. 그런데 한 부서는 나이가 많은 막내 직원이 책임자로 지정되었는데, 이걸 왜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다 하지 않고 부서 직원들에게 ‘떠맡기냐며’ 나를 ‘혼내러 왔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혼자 일할 때의 고충에 대해 선배들에게 정말 많이 들었고, 최대한 감정을 쏟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았나? 라는 자기 검열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기관의 유일한 기록전문가이니 내가 기록커뮤니티의 얼굴이라는 부담감이 있고, 그래서 오히려 계속 공부하게 되는 선순환도 있다. 너무 자기 검열만 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지켜야 할 것 같다.
직원들이 ‘이걸 왜 해야하냐’는 질문을 하지 않고 협조를 잘 해주실 때에는 내 일이 인정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관리 대상 부서가 이전에 있었던 공공기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학교 조직이 복잡한데,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평가.폐기 업무는 자리가 잡힌 업무여서 각 부서에서 협조를 잘 해주신다.
그리고 기록물 열람 요청이 들어와서 제공을 해드리면 이용자가 감사하다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나는 내 일을 했을 뿐인데 그런 도움이 될 때도 보람을 느낀다.
“이 직업에 대해 너무 냉소하지도, 너무 과대평가 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그냥 하루 하루 할 일을 해나가는게 중요한 것 같다.”
그간의 이력과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일 이외에도 글쓰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브런치 글과 SNS, 우리와 함께 했던 리뷰 시리즈 등을 찾아 보았는데 꽤 많은 글들을 쓰고 있었다.
지금은 야근도 많이 하고 바빠져서 잘 쓰지 못하고 있긴 한데, 이건 학부 때 영향이 큰 것 같다. 책을 1주일에 한 권씩 읽고 리포트를 쓰고 서로 이야기하는게 일상적이었다. 매주 과제를 써서 제출해야 하는 과목이 매학기 2-3개는 있었고, 그래서 정말 많이 쓸 땐 한 학기에 리포트를 40-50개 썼던 것 같다. 나는 그게 싫지 않았고,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들으면 그저 기분이 좋았다. 음악을 들으며 감동 받는 사람,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감동 받는 사람 등 사람마다 감동을 받는 포인트가 다른 것 같은데 나는 좋은 글을 읽으면 감동을 받는 것 같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그리고 나는 내향적인 편인데, 말은 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글은 몇 번이고 수정하고 검토할 수 있어서 글쓰기에 애정을 느낀다.
기록학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 필드에 가장 부족한 점, 혹은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네이버에는 기록관리 관련 카페가 있고 카카오톡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오픈채팅방이 있는데, 여기 올라오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직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직업이든 나름의 고충이 있는데, 너무 이 안에 매몰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이 직업에 대해 너무 냉소하지도, 너무 과대평가 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그냥 하루 하루 할 일을 해나가는게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 어떤 기록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면.
2033년이면 만39세다. 개인적으로는 커리어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때쯤 되면 지금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좀 더 수월하게 풀어낼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아카이브라는 공간, 기록전문가라는 직업을 대중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업무 루틴 적어 놓은게 인상적이네요. ㅋ 생각이 깊게 느껴져서 나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10년 뒤 39라니 깜놀입니다. 좋은 인터뷰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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