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이방인과 들러리 사이 

아키비스트라운지 인사이트 아웃 #1 평가심의를 평가합니다 – 2


신애에게

글을 읽으며 평가심의위원으로 위촉되어 첫 평가심의회에 참석하기 바로 전 날이 생각났어요. 마치 그 기관의 면접을 보러가듯 기관 홈페이지를 탈탈 털며 공부하던 날 밤.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평가심의를 다니는 선생님들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나도 해볼 수 있을까 라는 기대감을 가졌던 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첫 심의는 긴장과 설레임으로 가득했죠. 그 마음과 행동이 여전했다면 좋았을텐데, 솔직히 말하면 충실하지 못한 때가 많았다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기록관의 평가가(영구기록물관리기관도 평가를 하지만) 얼마나 중요하고 무게있는 일인지, 평가심의가 폐기를 결정하는 단순 절차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 공공기관 기록관에서의 평가는 평가라 부르기엔 솔직히 어렵고, 합법적 폐기를 위한 근거를 만들어주는 일처럼 수행되기도 해요. 평가심의에 임하는 외부 위원으로서도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 그 업무를 수행하는 담당자도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가는 기록전문가가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전문성있는 업무 중 하나라 이야기하는데, 평가심의회라는 그 테이블에서 나누는 안건이 ‘전문적’이었나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기록관리가 기관에서 시작되던 초반, 평가심의회를 여는 기록전문가들에게 중요했던 사안 중 하나는 심의위원을 어떻게 구성하는지가 아니었을까요. 심의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누가 심의할 것인가, 어떤 단계를 거칠 것인가에 집중했다 들었어요. 민간의 외부위원 비중을 늘리고, 생산부서 의견 조회를 의무화하는 등 제도적 장치는 분명 중요한 성과 중 하나에요. 그러나 형식적 요건이 갖춰졌다고 해서 좋은 평가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죠. 실제 초반에는 기록학을 전공한 많은 외부 심의위원들이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고, 기록관리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기록의 평가가 법률 안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내용적으로 좋은 평가’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각 기관의 업무를 완전하게 이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일 년에 한 번 하는 심의에 열과 성을 다하여 기관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평가심의에 참여할 때에 걱정이 앞서요. 전문요원이 작성한 검토 의견에 거수기 역할에 그치거나, 폐기를 위한 통로로 이 심의회가 이용될까봐요. 

제가 평가심의위원으로 참여하는 기관들은 다양한 특성이 있어요. 몇 가지 사례만 얘기한다면, A기관은 6년 이상 위원으로 위촉되어 있으나 단 한 번도 대면 심의를 개최한 적이 없어요. 평가심의 대상으로 올라오는 안건은 모두 회계, 증빙을 위한 동종의 5년 기록물로, 대면심의를 해도 별다른 의견을 주기 어렵긴 합니다. 하지만, 서면으로 매년 회계증빙 기록만 심의를 하는 것은 괜찮은 걸까요? 서면으로 의견을 주었을 때, 심의위원 간 의견이 다를 경우 이에 대한 결정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개인적 의견을 제시하면서, 가/부 칸에 동그라미 치면 다수결로 결정이 나는건가요? 서면심의만 하는 기관들 중에는 서식에 ‘의견’을 작성하는 칸은 없고 가/부만 결정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는데, 심의위원의 의견은 필요 없는건가요? (물론 별다른 의견을 묻고 듣기 어려운 내용이긴 합니다만, 이 서식이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의견이 있을 경우 이메일에 씁니다)

B기관은 평가심의회에 종종 기록물관리에 대한 여러가지 이슈나 해결하고 싶은 문제들을 함께 안건으로 올립니다. 가령, 기록관리기준표 개정에 대한 적절성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거나 간행물 디지털화 및 폐기에 대한 방안을 논의 했어요. ‘평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대신, 그 외 기록관리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평가심의로 적절한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외부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기관의 모습에 살짝 감동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외부 심의위원 모두가 기록관리 전공, 관련자였기에 가능했습니다.) 

C기관은 매 년 평가심의에 올라오는 심의기록 건 수가 6만건에 달합니다. 기관의 특성도 한 몫 하겠지만 소속기관이나 처리과로부터 이관받는 기록물의 양도 많고, 이를 기록전문가가 꼼꼼히 보시더라구요. 이 기관은 기관에서 발행하는 신문, 뉴스레터 등을 심의위원에게 보내줘요. 사실 귀찮고 안볼 때도 많았지만, 심의 시기가 다가오면 도움이 됩니다. 기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이나 비전을 알 수 있으니까요. 

D기관은 제가 심의위원으로 위촉된 첫 해, 평가심의대상 목록을 PDF로 주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늘 엑셀을 받아왔기에 너무 당황했어요. 왜 엑셀로 주지 않느냐 물으니, 그동안 퇴직공무원들이 평가심의위원을 맡아주시며 기록 목록을 보지 않는 것이 일상적이라 그랬다 했습니다. 목록만 보고 심의를 하는 것도 문제라고 하는데, 필터링 등의 기본적 활용도 불가능한 PDF만 보고 심의 안건 파악이 가능할까요?

평가심의의 방식도 문제지만, 평가심의위원의 전문성에 따라 평가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기록관리에 대한 전문성은 있을지 몰라도, 특정 주제분야의 공공기관 업무에 대해서는 완전히 알지 못해요. 만약 제가 사는 지역의 심의위원을 한다면, 지역 주민 한 사람으로서의 관심과 공부로 조금 더 나은 심의가 가능하겠죠. 하지만, 그 외의 여러 분야는 특정 분야 업무 전문성 부족이나 기관 환경에 대한 이해 부족이 크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평가심의 대상으로 올라오는 심의 안건은 커다란 업무 덩어리가 아니라, 그 업무에 의해 생산된 기록들이고 업무의 조각들이니 이해가 더 어려웠어요. 이 심의를 내가 하는 것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며,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 심의비를 받을 만큼의 값어치를 했는가에 찔림을 곱씹었어요. 

평가심의회에서는 저를 전문가라며 초대하지만, 저는 기관과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이방인으로 그 자리를 채웁니다. 물론 제가 더 준비해야겠죠. 평가심의위원으로 참여하는 기관에 대한 관심도 더 가져야 하는 것이 맞아요. 하지만, 위원 개인의 의지나 선의에 기대는 것은 편차를 만들어요. 어떤 기관들은 평가심의회를 아주 형식적으로 운영하기도 하고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일 년 간의 열심과 노력을 귀찮은 폐기 절차 중 하나로 치부합니다. 기관의 의견에 동의하고 추가 의견이나 질문 없이 빨리 집에가는 위원을 바라는 기관들도 있습니다.(질문을 하면 불편해 하는 내부위원들의 눈초리가 매우 따가웠어요)  

저는 초대된 이방인이기도 하지만, 종종 행정처리의 들러리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기관들의 평가심의회가 안정적이면서도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각자 쌓여있는 불편과 어려움, 부끄러움을 꺼내놓고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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