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라운지 인사이트 아웃 #1 평가심의를 평가합니다 – 3

진현에게
기록물평가심의회 외부위원도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고충이 많구나. 그래도 거절하지 않고 심의요청에 응해주고 있어줘서 고마워! 외부위원을 섭외하는건 정말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고, 기관 기록연구사 입장에서는 존재만으로 든든한 평가위원들이 있거든. 심지어 여러 해 동안 하고 있다면 2-3년에 한 번씩 바뀌는게 일반적인 당연직 내부위원보다도 심의 목록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일거야.
심의비의 가치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 없어. 회의 전에는 인쇄를 다 하기도 어려운 양의 목록을 충분하지도 않은 정보와 함께 미리 검토해야 하고, 회의 후에는 ‘폐기’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에 서명을 하잖아. 기록물평가심의회 외에 외부위원에게 이렇게 막중한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는 회의가 또 있을까 싶네.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핵심적인 평가 업무는 평가심의서 목록을 오류 없이 만들어내는 것일텐데, 이 목록 서식이 바로 내가 평가 과정에서 느끼는 찝찝함의 두 가지 근원 중 하나인 것 같아1.
목록만 보고 평가해야 하는 현실이 아쉬울 때는 있지만, 심의 대상이 되는 모든 기록을 실물을 꺼내 열어보면서 미시평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야. 그게 정답도 아니고. 공공기관 기록관에서는 업무기능 기반의 평가를 정확한 정보(기록물 정보, 관련 법령의 최소 보존기간, 관련 업무 진행상황 같은)를 바탕으로 하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어차피 주제 기반으로 ‘역사적 가치’를 찾는 과정은 꽤 상식적인 선에서 일어나거든. 그렇다면 가장 필요한 건 기록물평가심의 목록 안에 있는 값들에 오류가 없을거라는 확신이지. 그런데 공공기록물법 시행규칙 별표에 있는 평가심의서 서식은, 내가 볼 땐 오히려 작성자마다 항목명을 다르게 해석하고 기록물에 대한 정보를 잘못 입력하도록 유도해. 시작하는 단계부터 이미 평가를 잘 하기는 틀린거지.


시행규칙 별지 제10호 서식 | 기록물평가심의서

위 서식을 좀 뜯어볼까. 첫번째, ‘생산연도’란 무엇일까. 그 전에 ‘생산’은 또 무슨 낯선 용어야. 모르는 사람이 직관적으로 볼 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기록연구사는 알지. 생산이란 생산과 접수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한다는걸. 그리고 생산연도는 기록물철의 ‘종료연도’를 기준으로 한다는 걸2.
기록물평가심의서상 생산연도라는 정보값은 이관을 할 때 인계부서에서 제출한 이관목록 속 숫자를 가져온 것일텐데(시행규칙 서식 이관목록에는 ‘생산연도’라는 항목이 아예 없는데, 이 정보 없이 이관을 받는 곳은 없을거야), 그 작성 시점에서 작성자는 그 문서철에 담당자가 써놓은 연도 또는 그 문서철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연도를 써놨을 가능성이 높지. 여기서 이미 ‘생산연도’라는 항목명과 실제로 쓰인 연도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어. 심지어 그걸 쓰는 사람은 그 문서를 직접 만든 사람이 아니라 그 후임자 또는 그 부서의 막내일 가능성도 높아. ‘생산연도’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확인할 여유가 있겠냐고.
그 다음, 생산연도 옆에 보존기간 만료일을 적는건 뭐야. 일단, 생산연도는 ‘연도YEAR’인데 보존기간 만료일은 ‘일DAY’인 이유는 또 뭐야? 어차피 보존기간 기산일은 기록물철이 종료된 해의 다음해 1월 1일부터인데. 연도가 아닌 날짜를 쓰게 하려면 꼭 기재하도록 해야 할 건 그 문서와 관련된 업무가 종료된 날이야. 계약 관련 문서라면 그 계약이 체결된 날. 대출과 관련된 기록물이라면 그 대출의 상환이 완료된 날. 그래서 정확히 어느 해 1월 1일이 보존기간 기산일인지 확인할 수 있는 날3.
그런데 또 보존기간 칸은 없어. 그리고 기록물평가심의의 주체들 – 생산부서에서 의견조회를 하는 사람, 기록연구사, 내외부 평가위원 – 은 모두 이 목록만 보고 판단을 하는데, 평가 대상 기록물철의 보존기간이 현재 몇 년인지는 심의할 때 중요한 고려 대상인데 말이야. 생산연도와 보존기간 만료일을 모두 적어 두었으니 계산을 해보라는걸까? 보존기간 값 없이 만료일만 적는다는건 ‘보존기간 지난거 맞아요!’라고 설명하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있을까. 국가기록원 표준 심지어 보존기간은 국가기록원에서 제정한, ‘공공기관이 생산 또는 접수하는 기록물에 대한 맥락과 내용, 구조 및 기록생애주기 동안 기록물관리기관이 관리할 사항’을 정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기록물관리 표준인 기록관리 메타데이터 표준(NAK 8:2022(v2.3))에서 필수요소로 정하고 있는 정보라고4.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처리과의 처리의견과 사유,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처리의견과 사유, 그리고 심의회 의견란. 주관식으로 되어있지만 사실 답은 정해져 있어. 처리의견은 ‘폐기, 보류, 보존기간 재책정(N년)’ 중 하나가 되는거고, 사유란은 ‘업무 참조 필요’ 아니면 ‘보존기간 만료’ 를 다양하게 변주한 문구로 채워지지. 더 구체적으로 쓴다면 관련 소송이 진행중이라든가 ‘역사적 가치’가 있다 정도 쓰일텐데, 여기 – 특히 ‘역사적 가치’라는 말 – 에 대해서도 다음에 따로 이야기하기로.
평가 과정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 심지어 같은 기록연구사가 하더라도 연차가 올라가고 기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심의를 다르게 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단호하게 결정을 내릴 수도 있지. 심의위원들도 어떤 분야에 전문적인 사람이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어. 의결에 반영이 되지는 않았더라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어. 그러니 의결 결과만큼 중요한건 그런 결과를 도출해낸 과정인데, 그걸 제각각의 행에 쓰고 넘어가는 정도로는 추적해서 관리하기가 어렵지 않나. 물론 의견란에 ‘회의록 참조’ 라고 하고 회의 결과 보고에 자세하게 쓸 수 있는데, 그렇게 정리하면 다음 심의 때 엑셀만 보다가 놓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보존기간에 이어 꼭 필요한데 또 없는 것. 바로 평가심의 이력. 같은 기록물이라도 심의회에 신규로 처음 올라왔는지, 한 번 보류가 되었다가 재심의로 올라온건지, 아니면 보존기간이 상향 책정되었다가 그 기간도 경과해서 올라온건지 등에 따라 평가 결과는 달라질 수 있어.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이 평가심의서 형식은 누가 이 서식을 만드는지, 이게 전체 평가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각 단계에서 누가 무엇을 위해 보고 어떤 칸을 채우는지, 마지막에 남기고 축적시켜야 할 정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고 게으르게 만든 서식이야.



이렇게 쓰게 하는게 뭐가 문제냐. 한 번에 평가하는 기록물이 수백 권 단위이기만 해도, 기록관리시스템이 있든 엑셀로 다 해야하든 다른 DB를 자체적으로 만들었든 관리할 수 있고 심의회 결과를 누적해서 볼 수 있을거야. 그런데 그 목록이 수 천, 수 만 행으로 이어진다면? 매 심의회 대상량이 그 정도가 된다면?
물론 이 서식을 평가심의때 그대로 쓴 적도 없고, 외부심의위원으로 가서도 본 적이 없어. 그만큼 도움이 안되는 서식이라는거지. 전문가인 기록연구사가 알아서 보완해서 써야한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어. 그런데 그게 맞아? 법정 서식을 그대로 써서는 실무를 할 수 없는게, 각 기관 기록연구사가 알아서 커스터마이징 해야하는게 맞냐고. 그럴거면 애초에 시행규칙에 서식을 넣어 놓을 이유는 뭐냐고. 이론과 실무 사이 그 기관의 최선의 실무를 만드는게 기록연구사가 할 일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기록연구사가 주어진 조건 안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과, 애초에 법령이라는 권위있고 공식적인 업무 추진 근거에 이토록 비현실적인 서식이 올라와 있는건 다른 문제잖아. 공공기록물법을 제정/개정해왔고 그걸 근거로 공공기관의 기록관리를 감독하는 국가 아카이브가, 공공기관이 기록물의 어떤 정보를 핵심적으로 관리해야하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뜻이잖아.
기록과 사회 뉴스레터에서도 한 번 쓴 적 있지만, 서식은 중요해. 문서 형식은 그걸 만든 주체의 의도와 목적을 품고 있지(물론 꽤 많은 공공부문 업무에서, 그런 의도 없이 그저 이상하게 만들어지는 서식도 아주 많은걸 알지만 그건 그것대로도 큰 문제이고, 무엇보다 이건 시행규칙 서식이잖아?!). 기록물평가심의서는 생산부서 의견 – 기록물관리전문요원 심사 – 기록물평가심의회 심의로 이어지는 기록 평가 과정에 대한 기록이기도 한데, 그리고 평가는 주관적일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평가 결과를 도출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중요한데, 지금의 평가심의서는 그런걸 담지 못해.
이건 결국 기록관리 관리하는 기록물에 대한 메타데이터의 문제, 목록의 문제야. 무엇보다 정확해야 할 정보를 모호하게 흐리는, 이런 서식에 채워진 정보를 어디까지 신뢰를 할 수 있을까? 100% 믿고 평가해도 부족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목록을 바꾸지 않고 다른 절차를 개선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까, 내가 하필 여러 업무 중 가장 핵심적인 기록관리 일을 할 때 회의에 빠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 이런게 아니어도 평가를 평가라고 부르기 어렵게 만드는 문제는 도처에 있는데.
<끝>


1. 나머지 하나는 기록관리기준표로 대표되는 기록물 보유일정표의 서식이야.
2. 공공기록물법 시행규칙 제14조(기록물의 정리) 6. 기록물철을 생산연도별ㆍ보존기간별로 구분하여 보존상자에 담는다. 이 경우 생산연도는 그 기록물철의 종료연도를 기준으로 한다.
아니 그런데 ‘종료’의 의미는 또 뭐야? 문서를 마지막으로 만든 시점과 그 업무가 실제로 종료된 시점은 다를 수 있는데.
3. 생산연도라는 항목과 같이 이야기하자면, 간혹 법령에서 최소 자료보존 기준을 ‘OOOO 후 5년’ 등으로 정할 때가 있고, 그 기준이 문서가 만들어진 시점이 아닐 때가 있어. 어떤 문서가 작성된 건 2010년인데 관련 업무가 종료된건 2013년이라면? 그래서 2013년이라는 시기는 모른 채로 2010년을 기준으로 폐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직 법정 보존기한은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면?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편지에서 이야기하자.
4. 이 보존기간의 분류(1년, 3년, 5년, ..)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이건 기록관리기준표로 대표되는 보유일정표를 수립하는 과정에 대해 별도로 이야기할 때 다시 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