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라운지 인사이트 아웃 #1 평가심의를 평가합니다 – 4

신애에게
글을 읽어보니 평가심의 서식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네요. 여러 기관의 평가심의를 다니면서 서식들을 꽤 많이 보아왔거든요. 그렇지만 평가를 위해서 서식 안에 어떤 내용을 채웠나, 처리과와 전문요원 평가 의견이 다른건 얼마나 되나 위주로 살펴봤지, 서식 항목 하나하나를 생각해보지는 않았더라구요. 실무자들은 그 칸 하나하나를 채우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겠다 싶어요. 특히 ‘보존기간만료일’같은 항목은 어차피 다 12월 31일인데 왜 굳이 만료일을 쓰려고하는지 늘 궁금했어요. ‘보존기간’ 항목이 시행규칙에는 없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지 뭐에요. 그동안 받아 본 서식에는 보존기간이 늘 있었는데, 이건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이 추가한 항목이었네요.
기관 별 평가심의서 서식이 거의 비슷하긴 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경우들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A기관의 경우, 처리과 의견을 직원들이 직접 적는 것이 아니라,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이 먼저 만들어준 가, 나, 다, 라 기준에 따라 의견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구요. B기관은 보류로 지정되었던 연도와 사유가 명확히 식별될 수 있도록 항목을 늘 구분해뒀었어요. C기관은 평가심의 이후 보존기간 재책정으로 지정된 기록들의 유형과 단위업무들을 별도의 문서로 작성하여 정보들을 축적해두었어요. 향후 유사 기록이 평가심의 안건으로 올라왔을 때, 연속성 있게 평가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요.
종종 평가심의 서식부터 운영 방안, 후속조치까지 작지만 의미있는 차이들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열성으로, 어떤 기관은 우연히 좋은 팀장님이나 과장님을 만나서, 또 다른 기관은 평가심의위원의 적극적인 압력(?)으로 운영 방안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해요. 사례들이 많이 공유되면 좋겠다 싶은데, 이상하게도 다른 기록관리 사례에 비해 평가사례는 공유가 많이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서식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볼게요. 평가심의서식이 단순한 서식에 불과할까요? 여러가지를 고려하지 않고 만든 게으른 서식이란 말에 정말 동감해요. 평가심의서식은 기록의 생애주기 전체를 관통하는 정보가 담겨 있잖아요. 생산에 대한 기본정보(생산연도, 부서 등)부터 기록 하나를 두고 업무적 관점(처리과), 기록관리적 관점(전문요원), 외부의견(심의위원) 세 가지 시선이 하나의 서식 안에 남겨진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거든요. 기록의 맥락과 내/외부 전문가들의 견해가 응축된 평가의 중요한 과정이자 결과에요. 그런데 이 서식이 이렇게 단편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뇨.
게다가 이 서식의 목적은 분명하지 않은 것 같아요. 왜, 누구를 위해 만드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어디에 있나요. 기록을 평가하고 폐기하는 관리자를 위한 건지, 기록의 생애주기에 따른 결과를 이용자에게도 알려주기 위한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닌지. 이 서식이 폐기의 근거인지, 평가 과정의 증거인지 목적도 모호한데 서식의 항목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가이드라인조차 없어요. (모두 다 목적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겠지만요)
처리과, 기록물관리전문요원, 심의회 의견이 서식에 어떻게 담기는가에 대해서도 같이 얘기해봐야 할 문제에요. 처리과의 의견은(성실한 고민의 결과라는 것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보류나 재책정에 대해 업무참조, 민원, 국정감사 등 어쨋든 그 사유는 명확하거든요. 그 반면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평가의견은 ‘역사적 가치’라는 용어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해요. 분명 여러 사유와 고민의 결과일텐데, 이것이 평가심의서식에 담기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요. 심의위원의 의견도 서식에는 남지 않잖아요? 결국 심의회 회의록이나 결과보고에 축약된 몇 줄로 남겨지겠죠 평가의 전 과정이 서식 안에는 남겨질 순 없을까요. 평가심의회를 위한 자료가 아니라 평가심의가 끝난 이후에도 내용이 추가되고 관리되는 것으로요.
서식의 이력 관리와 활용도 요즘 고민이 많이 되더라구요. 보류된 기록이 언제, 어떤 사유로 보류되었는지 그 이력이 서식에 남아야 하고요. 보존기간이 재책정되어 영구기록물관리기관으로 이관되는 경우, 보존기간재책정 이력이 꼭 함께 전달되어야 한다고 봐요. 동일한 업무기능에서 다른 기록들은 폐기되었지만, 이 기록은 어떤 사유로 살아남게되었는지가 설명되어야 하니까요. (물론 오편철과 오분류 사례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보존기간이 재책정되는 기록들이 다수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역사적 가치라는 그 평가의견이 기록의 이력으로 잘 관리되고, 이 이력이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의 기술을 통해 이용자에게 서비스 될 필요성이 있어요. 기록의 생애주기 이력 또한 중요한 맥락이니까요. 그럼에도 이관목록에 평가이력에 대한 정보가 빠져있다는 것은 정말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에요.
저의 이런 고민을 몇몇 기록연구사들과 나누었더니, 이상적인 이야기라며 쓴웃음을 지었어요. 신경도 손도 많이 쓰이는 과정들인건 분명하죠. 그치만 AI가 우리의 모든 능력을 대신할 수 있다는 위기 속에서 사는 이 시대에,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지 이걸 할 수 있냐 없냐를 이야기할 순 없어요.
서식이 개선된다고 해서 평가가 저절로 잘 되진 않을거에요. 이건 하나의 도구일 뿐이고, 우린 결국 평가의 본질을 논하게 되겠죠. 평가는 기록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야 하고, 생산 전단계부터 어떤 기록을 남길지 고민하는 일까지 포함되어야 하니까. 그리고 평가가 ‘폐기’와 ‘재책정’에만 머물지 않고 보존 방식이나 매체의 변화까지 포함하는 ‘처분’도 함께 논의해야 하고.
저는 그 시작점이 ‘레코드 스케줄(Records Schedule)’을 만드는 일이라고 봐요. 우리에겐 기록관리기준표가 있지만, 지금처럼 보존기간 가이드라인 수준에 머물 게 아니라 근본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언니, 다음엔 큰 수술이 필요한 기록관리기준표에 대해 얘기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