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그 해에 저를 지탱해 준 노래 제목들을 적어보곤 합니다. 이 글을 위해 일기를 찾아보니 옥상달빛의 <희한한 시대>와 제이레빗의 <growing everyday>가, 정준일의 <해 달 별 그리고 우리>와 <Say Yes>가 각각 다른 해의 노래로 선정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뮤지션 이름과 노래 제목만 보아도 그 때의 출퇴근길, 그 당시 일을 하면서 느낀 기쁨과 슬픔, 함께 그 시간을 통과했던 사람들과 나눈 공기가 떠오르네요. 연말결산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그 때 보았던 책과 영상들도 언제 어떤 목적과 마음으로 찾아 보았었는지는 기억하는데요, 위 노래들을 듣던 시기에는 무엇을 읽고 보았는지 떠올려 보니 그 당시 살던 집의 거실 테이블이 제일 먼저 그려지는군요. 새벽 세 시 감성으로 시작하는 근데의 플레이리스트입니다.
쉬고 싶은 시간의 플레이리스트
어디에 비용을 지불하고 있느냐 만큼 마음의 방향을 명확하게 나타내주는게 없을텐데, 따져보니 제가 하는 유료구독은 대부분 쉼을 위한 콘텐츠들입니다.
yes24 북클럽과 밀리의 서재를 구독 중이고 최인아책방 북클럽도 직장 지원으로 이용 중입니다. 사실 yes24 북클럽은 무료 1개월을 넘겼는데 정기결제 전에 해지하는걸 깜박한 전자책은 특히 2년 전에 육아 휴직을 하면서 애용하게 된 매체인데요, 잠든 아기를 아기띠에 안은 채로 편한 의자에 앉아 이북리더기(저는 크레마 카르타G를 씁니다)로 책을 보는 시간만 기다리며 하루를 보냈어요. ‘공부와 관련된 걸 읽어야 하는데’라는 죄책감 없이 소설과 에세이를 맘 편하게 마음껏 읽을 수 있었던 때이기도 했구요. 다시 출퇴근하는 삶으로 돌아온 지금은 평일 점심시간과 주말 육아 시간에 잘 쓰고 있는데요, 특히 밀리의 서재는 오디오북이 다양해지고 있어서 얼마 전 자가격리가 시작될 때 급히 다시 결제를 했습니다.
최인아 책방 북클럽은 궁금하던 차에 직장에서 지원이 된다고 해서 바로 가입을 했고, 지금까지 세 권의 책을 편지와 함께 받았습니다. 제 관심사를 넓혀줄거라는 기대에 부응하는, 낯설지만 설레는 책이 매달 오는데 더 보고 싶은 다른 책에 밀려서 다 읽지는 못하고 있어요. 독후감을 올려야 하니 발췌독이라도 하게 되겠거니 예상합니다.
무언가를 하면서 배경음악이 필요할 땐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과 <민음사TV>, 팟캐스트 <책읽아웃> 중 무언가를 틀어놓고는 합니다. 특히 <민음사TV>는 요즘 최애 채널인데요, 제 또래인 마케터와 편집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나도 저 중 한 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변하고 싶은 시간의 플레이리스트
일을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PUBLY>는 읽어 보고 싶은, 내가 따라 써보고 싶은 콘텐츠가 넘치는 곳입니다. 책 큐레이션 콘텐츠를 비롯해서 이제는 웬만한 주제는, 특히 직장생활과 관련한 주제는 거의 다 다루고 있어요. 초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책 박람회, 책은 없다 – 2015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처럼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리포트나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처럼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게 큰 매력이었는데요, 요즘에는 ‘당신 곁의 랜선 사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정말 다양한 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콘텐츠도 많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분이 계시다면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외국에서 일하는 아키비스트/레코드 매니저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구독하는 콘텐츠도 있습니다. SAA에서 하는 <Archives in Context>가 그 중 하나인데요, ‘아키비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흔하지 않은 방송이라 가끔 찾아 듣고 있어요(괜히 영어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무작정 ‘archivist’, ‘record manager’ 등을 검색하다 발견한 Sheila joy 채널도 있는데 얼마 전에는 18세기 책을 스캔하는 브이로그를 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런 콘텐츠는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보게 되어서 이런걸 새로 발견하면 리뷰팀 오픈채팅방에 올려서 공유하고는 합니다.
마지막으로 <김교수의 세 가지>라는 채널도 자주 보는데요, ‘아니 교수님, 이런걸 왜 제가 석사과정 대학원생이었을 때 진작 알려주지 않으셨죠?’라는 마음을 종종 품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직장인에게도 유효한 내용이 많이 있어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공부로 이어가지는 못하고..).

세상을 알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난 몇 달 간 왕복 2시간 30분이 넘는 출퇴근길을 다녔습니다. 버스 노선도에서 찾아보니 무려 5개 구를 넘어가는 긴 여정이었죠. 힘들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그만큼 생겨서 좋았고, 좀 ‘생산적’인 무언가를 듣고 싶다는 생각에 팟캐스트 <다독다독>을 조금씩 듣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재테크 책을 다루는 독서 팟캐스트여서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방송인데,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대유행하는 요즘 저도 관심을 가져보고 있습니다. 이사를 하고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면서는 뜸해졌지만요. 그리고 <듣똑라>는 오래 전부터 출근 준비 시간을 함께 해 온 메이트인데, 차차님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소개되었으니 넘어갈게요.
출근해서 제일 처음 열어보는 메일함에는 구독 신청은 했으나 열어보지는 않고 있는 다양한 뉴스레터들이 들어와 있는데요, 그 중 가끔이라도 읽어 보는 건 <어피티>와 <북저널리즘>의 뉴스레터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른 사람들은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며 살고 있는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아요. 여러 번 소개 된 <북저널리즘>은 생략하고 <어피티>에 대해 소개하자면, 20-30대 여성을 주 타겟으로 경제/재테크와 관련된 소식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이미 사회 초년생 시기는 오래 전에 넘겼지만 돈과 경제 뉴스 앞에서는 여전히 위축되는 저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에요.

SBS의 <마부뉴스(마부작침 탐정사무소 뉴스레터)>도 한 번씩 열어 보는데요, 데이터와 기사를 활용해서 이슈를 던지고, 알려주고,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해주는걸 보며 기록 서비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꺼내는 도구
1차 메모는 주로 휴대폰 메모장인 삼성 노트 앱을 씁니다. 지나가는 생각, 찾아보고 싶은 책, 여행 짐 목록 등 쉽게 다시 찾아볼 수 있어야 하는 대부분의 메모를 여기에 해요. 폴더별로 메모를 정리해서 넣기도 하지만 주로는 폴더 없이 쓰고 최신순으로 보는 편이에요. 그 날 아이가 한 말 중 기억하고 싶은 말을 메모한 것이 가장 많은데, 이건 일기 블로그에 내용을 옮긴 다음 삭제합니다. 일기 블로그는 한동안은 텀블러를 쓰다가 아키비스트라운지를 시작하면서 같이 워드프레스로 바꾼 후 쭉 쓰고 있어요. 둘 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서비스여서 잘 숨어있으면서도, ‘퍼블리시’를 해서 내가 뭔가를 썼다는 느낌은 준다는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블로그를 통한 이익 창출을 생각하면 역시 네이버에서 시작했어야 했다는 후회를 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쓰는 행위 자체를 즐길 때에는 작은 노트를 폅니다. 비싸고 예쁜 노트와 다이어리가 많이 있지만 결국 매일 가지고 다니는 건 모나미 노트와 제트스트림 볼펜입니다. 일기, 읽은 책 필사, (올해에는 꼭 써야지 결심만 하다 말다 하는) 논문 아이디어 메모 등을 모두 적습니다.
잘 쌓아 두었다가 다시 꺼내보고 싶은 것들은 인스타 부계정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아카이브’라는 말을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발견했을 때 사진으로 찍어두는 계정(collection.s_shape.of.archives)과, 장르를 불문하고 작가들이 ‘작가의 말’을 통해 가족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따뜻한 말들을 모아 두는 계정(collection.a_authors.note)이 있습니다. 아, 아기 사진을 가족들과만 공유하는 계정도 있네요. 매일 그 날 올리지는 못해도 최대한 시간 순으로 선별한 사진을 올리고 나중에 1년치가 되면 한 번에 사진첩으로 만드는데요, 아이가 자기와 가족들 사진을 보는 시간을 아주 좋아해서 뿌듯합니다.
업무노트로는 두 번째 첫 출근을 앞두고 올라이트 매장에서 산 노트와 노션을 같이 쓰고 있었는데, 얼마 전 사내 외부망에서 접속이 막혀서 지금은 워크플로이로 옮겨 왔습니다. 전산 부서에서 아직 막지 않은 노트 서비스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니겠죠? 같이 힘을 내 봅시다. ㅎㅎ
5년 후 나는 이 플레이리스트를 보며 지금을 어떻게 회상할까
가끔 생각합니다. 어차피 깊게 파고들지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 이것 저것 계속 찾아보고 있나. 왜 이걸 다 볼 시간이 없다는(넷플릭스와 휴대폰을 끊으면 시간이 있다는걸 알고 있지만) 것에 이렇게 아쉬워 하는가. 어쩌면 이 플레이리스트들은 포모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의 뒤죽박죽한 머리 속을 반영하는 목록일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으로 몇 년이 지나 이 리스트를 다시 보면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될 지 벌써 기대가 되기도 하는데요, 제 목표에 다가서게 해 준 전환점이 된 시기라고 회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플레이리스트는 어떤가요? 오픈 채팅방에서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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