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인터뷰시리즈-23
여러분은 하루 동안 기록관리 업무를 얼마나 하시나요? 속한 기관에 따라 행정, 민원, 정보공개 등 다른 업무를 하느라 기록관리는 소홀할 수 밖에 없는 경우들을 많이 듣게됩니다. 기록, 기록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만 알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근무시간 중 우리의 역량을 온전히 보여주기엔 아쉬운 상황들을 많이 마주하게 되죠.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기록과 기록관리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는 최성미 선생님입니다. 인터뷰를 하며, 이 정도로 자기 분야에 대한 애정이 깊다니! 하고 놀랐어요. 그 무엇보다 의미있는 하루를 만들어내고 싶은 최성미 선생님을 아키비스트라운지도 응원합니다.
- 일시 : 2023. 11. 15. (수) 20:00-21:00
- 장소 : 스타벅스(대전중앙로R점)
- 인터뷰 : 황진현
- 정리 : 황진현, 류신애
본인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최성미. 대통령기록관에서 지정해제 공개재분류 업무를 하고 있다.
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기록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사학과는 수능 점수에 맞춰 들어간 학과였다. 역사를 잘 모르기도 했고,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당시 선택할 수 있는 과가 몇 없었다. 그 중 사학과가 눈에 들어왔고 원대한 꿈 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입학하기 전에는 현대사 위주로 배우지 않을까 했는데 중국 등 동양사, 미술사도 배우는 등 꽤 커리큘럼이 다양했다. 한자 강독도 재밌게 들었다. 입학 전에는 이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재미있게 잘 다녔다.
그러던 중 교양과목 하나를 듣게 되었는데 곽건홍 교수님의 ‘한국생활사’라는 과목이었다. 노동아카이브, 여성아카이브 등 매주 다른 아카이브를 주제로 강의하셨고, ‘아카이브’, ‘아키비스트’, ‘작은 역사’ 등 새로운 단어들을 처음 듣고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도 강의를 이야기하듯 해주셔서 너무 멋있기도 하면서 ‘저게 뭐길래 저렇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실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수업 끝나고 찾아가서 여쭤보기도 했고. 그렇게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대학원은 모교가 아닌 명지대로 진학했다. 계속 대전에서만 살았어서 집을 떠나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원 생활 중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이 있나? 기록전문가로서 일하면서 힘이 되는 기억이라거나.
뭔가 특별한 사건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고, 아주 일상적인 것이 떠오른다. 매일 백팩 메고 학교가고, 원우회실에 모여 동기들이랑 ‘오늘 이건 꼭 끝내자’ 라고 얘기하고 공부하다 보면 금방 두 세 시간이 지나있고, 그러면 서로 어찌어찌 끝내고 했던 비슷한 하루하루 말이다. 조교 활동도 하고, 저녁 수업도 듣고, 기분이 좀 다운되면 같이 맥주도 마시고! 다같이 원우회실에 모여 있었던 기억이 참 좋았다.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내가 오늘 기운이 없어도, 옆에서 열심히 하는 동기들이 있으면 나도 같이 열심히 하게 되지 않나. 그런 것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실무를 하면서도 기관에서 혼자 일 할 때 가끔 생각도 나고, 어딘가에서 다들 고군분투하고 있겠구나 싶다. 그 땐 힘들었었는데, 미화된 것도 있다.(웃음)
대학원이 좋은 기억이라 다행이다. 졸업 후엔 무엇을 준비했나?
2016년 2월 졸업 후 몇 개월 간 시험 공부를 하다가, 너무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아 원자력연구원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많이들 시험 공부를 하는데. 어떤 이유로 그만두게 되었나?
사실 공부를 하면서, 나에게 공부하는 소질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4-5지 선다 문항을 반복해서 푸는 것도 그렇고. 동기들은 시험 공부를 해서 처음부터 공무원으로 취업한 경우도 많은데, 나는 그게 잘 맞지 않았다. 실무부터 해볼까 싶어, 인턴에 지원해보게 되었고, 원자력연구원에서 2016년 8월부터 12월까지 인턴 생활을 했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에 채용되어 2017년 1월부터 일하게 되었다.
인턴을 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실무는 KDI가 처음이다. 처음 실무를 시작할 때 기록전문가로서 다짐한 것이 있는가?
막연하게 기록물 사이클을 전부 다 해보고 싶었다. 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으로 하루를 채우는지였다.

KDI를 시작으로 총 4개의 직장에서 근무(KDI-대전 동구청-산림복지진흥원-대통령기록관)했다. 이직을 여러 번 한 편이다. 대부분은 이직을 하더라도 정규직으로 가거나 더 나은 조건을 찾아 가는데, 정규직-일반임기제-정규직-전문임기제로 남들과는 다른 행보를 선택했다. 지금까지 전체 커리어를 생각할 때 어떤 방향으로 이직을 결정했나? 지원할 기관을 고를 때 1순위로 봤던 조건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내가 이직을 많이 한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내가 이직을 했다고 해도 놀라지 않길래, 주변에서 무뎌지는 것을 보니 내가 자주 했구나 싶기도 하다.
사실 이직을 할 때마다, 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이었다 했다(소위 ‘안정성’이라는 것을 1순위로 두진 않는다). 주변에서 이해를 못하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물론 정규직 여부는 취업에 있어 정말 중요하고, 한 곳에서 오랜 기간 커리어를 쌓으신 분들을 동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으로 하루를 채우는지였다. 아키비스트라운지 인터뷰를 요청받으면서 사전에 받았던 모든 질문을 관통하는 답변인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정규직, 승진이 중요했다면 첫 직장에서 계속 있었을 것이다. 안정적이고 팀원들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원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졸업하고 첫 직장이라 배운 것을 적용해보고 싶었고, 누굴 만나면 ‘저 이것도 저것도 해봤어요.’ 라고 말하고 싶은 허세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기관에서는 막내였기 때문에 차분히 배워가야 하는 입장이었고, 간행물 관리를 주로 했기 때문에 기록물관리 전반을 하지 못했다. 물론 연구기관이었기 때문에 간행물이 중요한 기록 유형인 것은 맞다. 하지만 석사과정 때 배운 ‘기록물’, 기관의 역사를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사명감, 이런 일들을 해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마침 기관에 조직 개편과 큰 변화가 있었고, 기록관리만 해보는 곳으로 가보자 하는 마음에 이직을 결심했다.
이직 할 곳을 정해두고 그만둔 것은 아니고, 무작정 그만뒀다. 한 5개월 정도 쉬고, 지자체(구청)로 입사했다. 1인 기록관 체제는 막막하기도 했지만, 설레었다. 내가 원하던 기록물 생애주기 전반을 다룰 수 있고, 팀 이름도 기록관리팀이라니! 정말 너무 재미있겠다 싶었다. 서고도 있고, 나만 잘하면 될 것 같고, 살림살이들을 가지고 내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겠다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또 그만두었다.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느꼈다. 기록관리 프로세스를 배워가는건 재밌었지만 답답함도 느꼈다. 기관에서 나에게 원하는 수준을 정해놓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처리과에서 이관이 잘 되지 않아서 직원 교육을 하겠다고 팀장님께 말씀드렸을 때 팀장님께서 ‘성미야 그런거 해도 아무 소용없어, 하지마, 너만 힘들어’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땐 눈물이 나기까지 했다. 사업을 내보려고 해도 어차피 예산 받지 못할텐데 내지 말라고 한다거나, 기록물 자리의 평가 등급은 어차피 정해져 있다고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쌓였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엔 할 일이 많아 보이는데 그 정도만 해,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공공기관은 실적이 중요하다고들 하니 내가 좀 더 도전적으로 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서 새 직장에 지원하게 되었다.
어디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기 보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주체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맞다. 사실 기록관리가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가 달라지지 않나. 내가 이만큼 해볼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이 기관에서 요만큼만해! 라고 정해주기도 하고. 그걸 참기 어려웠다. 나는 호기심도 많고, 누가 ‘그거 맛있어’ 라고 해도 내가 직접 먹어보고 ‘이게 맛있네’ 라고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것 때문에 자꾸 이직을 하는게 아닌가 싶다. 궁금해서.
결국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서 퇴사를 선택했다 하는 것이 있나?
많이들 이해를 못하기는 하지만, 더 많은 일을 해보고 싶어 퇴사한다. 기록물 안에서도 많은 유형이 있지 않나. 전자/비전자를 넘어 간행물, 시청각 등 여러 유형을 다루어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이 일을, 분야를 너무 좋아한다. 기록물관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여러 기관에서 다양한 기록물 업무를 해보고 싶다. 계속 확장해가는 즐거움이 좋다.
사실 조직의 분위기라거나, 직원들 간의 관계 등은 내게 있어 퇴사의 이유는 아니다. 지인들을 만나서는 이런 세세한 얘기까지는 하기가 힘들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니까 힘들어서 그만뒀다고 이야기하는 편이지만 사실 하기 싫은 행정이나 민원 업무도 하려면 할 수 있다. 실제 오랫동안 하기도 했고, ‘그거 제가 할게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다만 그 에너지가 아까울 뿐이다. 이 에너지를 기록물관리에 쏟으면 더 재밌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으니까. 사실 행정은 재미없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어떨 땐 너무 쉬울 때도 있다. 그저 타성에 젖어가는게 싫다.
기관에서 일하며 현타가 가장 세게 왔을 때는 언제였는지 궁금하다.
명함 만들기. 기관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명함을 만들게 되었는데, 일이 꼬이면서 자꾸 빠지는 것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메일 주소에 오타가 있거나, 지도 화살표 모양이 이상하다거나 하는 등 자꾸 수정사항을 지적받게 되었다. 이 시기에 기관장 관사 관리도 했고, 부서 현판을 바꾸는 일도 했다. 하루가 너무 바쁜데, 끝나고 나면 ‘나 뭐했지?’ 싶은거다.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기록관리에 대해 결재 좀 받아야지 하면, 너무 쉽게 ‘그래, 알아서 해’ 라고 하는 것이 속상했다. 명함 같은건 세세한 것까지 지적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기록관리는 ‘알아서 하든지’ 하는 태도가 너무 야속했다. 교육자료도 열심히 만들고 있으면 뒤에서, ‘뭘 그렇게까지 해요?’ 라고 말한다든지. 이런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을 때 현타가 왔다.
기록관리에 대한 애정을 기관에서 담아주지 못한 것 같다.
열심히 하려고 한다. 사실 마음은 큰데, 역량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말도 잘하고, 내가 100을 했으면 200 한 것 처럼 보여줄 수 있고, 이런 것도 다 능력인데 사실 난 그렇지 못하다. 그냥 좋아한다. 짝사랑 하는 느낌?
나는 기록물이 뿌리 같다. 학교 다닐 때 설명책임성 이런 것들을 배우지 않나. 실무를 하다 보면 잊는 경우가 많은데, 기록물관리 업무를 하다 보면 진짜 이 기록 한 장이 중요할 때가 있다. 직원들은 본인이 얼마나 중요한 업무를 하는지 모르고, 그냥 하는 경우들도 있다. 나중에 서고에서 정리하다보면, 이런 일도 했었구나 싶고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기록관리는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 분명하지 않나. 한 명인 기관도 여러 명인 기관도 있지만, 이게 나에게 달린 것 아닌가. 내가 열심히 하면 혼자 있어도 여러 명 있는 기관만큼 더 잘 할 수도 있고. 기관의 행정 업무는 내가 열심히 한다고 어느 선에 도달하기가 힘들지만, 기록관리는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어느 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쾌감이 있다.
이런 말을 민망해 할 수 있겠지만, 이직의 달인에게 질문하고 싶다. 사실 이직을 계속 한다는 것은, 그 기관에서 뽑아줬다는 것 아닌가. 내가 지원한 기관에 합격하기 위해 신경썼던 부분 – 또는 자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예를 들어, 자기소개서를 잘 쓴다든가, 가점 조건을 채우고 있다던가, 면접에 강하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음, 근데 나는 면접도 그렇지만 자소서를 쓸 때부터 정말 간절하게 쓴다. 자소서만 쓰는 단계이지만, 내가 이 기관에 입사 했다고 상상하고, 그리고 입사했을 때 할 수 있는 것과 못할 것 같은 일마저도 상상하며 쓴다. 오래, 계속, 하루종일 쓴다. 글은 사람을 다 보여주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느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쓸 때마다 최대한 진심을 담으려고 한다.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자소서를 써야 면접에서 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온다. 그게 좋게 보이지 않았나 싶다. 내가 학력이 엄청 좋거나, 경력이 긴 것이 아닌데도 하던대로 하니 되었던 것이 많다. 엉덩이로 하는 것, 그것 밖에 없다.
혹시 이직한 기관 외에 다른 기관도 지원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면접 질문이 혹시 있었나?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라거나.
항상 받았던 질문은, 당장 실무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이 질문은 지원한 기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야 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 면접 준비를 할 때도 필요 이상으로 하려는 편이다. 기관장 인터뷰라든지, 홍보팀에서 공개한 영상이라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찾아본다. 이렇게 하면 면접에서도 덜 부담되지만 떨어져도 오히려 타격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다 보니 면접에서 질문에 잘 답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뭐부터 하고 싶다 라는 답변이라든지.
또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을 할 때, 간혹 고개를 끄덕이는 등 긍정적 반응을 보여주는 면접관들도 있었다. 그럴 때 ‘아 한 고비 넘겼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자주 이직을 하다보니, 주변에서는 내가 쉽게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진짜 많이 쓰고, 많이 떨어졌다. 아쉽기도 하지만 이게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직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 내가 현재 기관이 마음에 안들거나 좀 더열정을 쏟고 싶은 분야가 있어서인데, 떨어져 보기도 하는 것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기록물을 정리, 이관하고, 폐기하는 등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야 의미가 있었다면, 여기에서는 기록을 만나는 행위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2016년 2월 졸업과 거의 동시에 취직을 하고 4개 기관에서 근무를 했다. 직장인 아키비스트로서 8년차인데 지금의 마음은 어떤가?
사실 세 번째 기관을 그만두고는 열정적인 마음이 많이 사라졌었다. 내가 열심히 해도 안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기록관에 들어가고 난 이후에 많이 리프레시 되었고, 재미를 되찾고 있다. 대통령기록관에는 기록연구사, 학예연구사 등 전문직렬이 많지만 하루 종일 기록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난 지금 하루 종일 기록을 보고, 공개 여부에 대해 판단하고, 모르는 것이 있을 경우 팀장님에게 여쭤볼 수 있다. 이런 전문가들의 집단에서 일하는 느낌이 좋다. 과거 다른 기관들에서는 내가 행정직들을 도와주는 입장이었다면, 대통령기록관은 행정직들이 연구직들을 도와주는 것이 너무 새롭기도 하다.
이제 일이 익숙해져가고 있는데, 기록물 자체를 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이 기록물을 정리, 이관하고, 폐기하는 등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야 의미가 있었다면, 여기에서는 기록을 만나는 행위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말씀록을 읽고 있으면,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이 때는 무슨 분위기였을까 상상하게 되고. 공개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고민하는 그 줄타기 과정이 재미있기도 하다.
다양한 일을 경험해봤을 것 같은데 이건 진짜 아니다 싶었던 일과 이건 좀 재밌다고 느꼈던 일이 있다면?
기관에 처음 발령 받고 갔는데 서고 보유 기록물 목록이 없었던 적이 있다. 목록이 없으니, 기록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기록을 찾는 사람들에게 대응이 어렵기도 했고, 내가 내 업무에 자신이 없어지기도 했다. 아마도 기관 건물이 이사를 하면서 기록을 정리할 타이밍을 놓치고, 일이 계속 쌓이다 보니 목록이 만들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이 부분이 많이 아쉬웠다.
이건 좀 재미있다 싶은 건 지금이다. 좀 특별하게 느껴진다. 대통령기록관은 대학원에 다닐 때 부터 늘 궁금했는데, 그 곳에서 일하게 되어 신기하고 재밌다.
즐거운 상상이랄까. 가능성과 별개로 나에게 모든 결정권이 주어진다면(예산, 인력, 업무추진 모두),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만약에 모든 결정권이 주어진다면 ‘공공기관’에 근무하고 있다면 좋겠다.(웃음) 기관의 기록물로 백서를 낸다거나 전시를 해보고 싶다. 기록물이 우리 기관 안에 있을 때는 그냥 기록물인데, 외부에 공개되는 순간 홍보물이 되기도 한다. 그게 기록의 가치를 잘 말해주는 것이라 보기 때문에 나중에 한 번 꼭 해보고 싶다. 내가 모아놓으라고 했지? 버리지 말라고 했지? 하면서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너무 힘든 일인 것은 알고 있다.
사실 각 기관마다 조직문화 등 특성이 다를 것 같다. 다양한 기관에서 일해보았으니, 차이점을 말해줄 수 있나?
경험에 의한 개인적 의견을 말하자면 연구원은 기록관리를 하는데 일정 부분 한계가 있는 곳이라고 느꼈다. 스콜라쉽이 있는 기관이라 직원들이 대부분 매너있고, 나이스하지만 기록관리라는 업무를 수행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교육과정에서는 기록의 생산시점부터의 관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연구원에는 보이지 않는 생산기록이 많다. 또 연구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이 본인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의 최종보고서 한 권이 전부는 아닌데, 그것만을 기록으로 관리하는 현실이 아쉬웠다. 내가 배운 프로세스대로, 기록의 모든 사이클을 다루어보고 싶다면 연구원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자체는 기록물도 오래되고, 직원들도 오래 근무한 분들이 많다. 사실 처음에는 이 지방공무원 문화가 좀 버거웠다. 연구원은 자유롭고, 명확하게 자기 업무가 구분되어 자기 할 일만 하면 되는 분위기였다면, 지자체에서는 옆 직원이 휴가를 가면 당연히 그 일을 대신하고, 큰 민원이 생기면 거기에 다 집중해야 하기도 한다. 코로나 때에는 물품보급이나 확진자 모니터링 업무를 하기도 하고, 해돋이 행사 때에는 주차업무를 하기도 했다. 그럴 때 ‘이게 뭐지?’ 싶기도 했다. 그리고 공무원은 평판이 참 중요한 듯 하다. 내가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조금 불친절하거나 직설적이라면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공공기관은 실적 위주의 업무를 하기를 바랐다. 경영평가에 쓸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업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팀의 성과로 보여줄 수 있고 기관의 성과가 되는 업무를 하기 요구했다.
아카이브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험한 곳들 중에 제일 깔끔한 것 같다. 대상과 목표가 명확하다. 집중해서 정확하고 꼼꼼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같다.
실무를 하면서, 대학원에서 이런걸 더 배우거나 공부해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
이론과 실무의 간극이 참 크다고 느꼈다. 대학원에서는 전공, 기록전문가로서의 사명감에 많이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실무는 말 그대로 실전이더라. 이론에서 말하는 프로세스가 기관과 처리과의 상황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더라. 그래서 이게 내가 알고 있는 것, 배운 것이 다 정답이라고 하기에는 실무 현장은 참 냉혹했다. 대학원에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기록전문가들이 와서, 우리 기관은 이렇다고 알려주시면 진로를 정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는 발이 넓은 편이 아닌데, 선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 경험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선배나 누군가의 간접 경험을 배울 수 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말을 들으니, 대다수의 기관은 1인 기록관 체제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 깊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경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정말 많을텐데. 일을 하는 과정에서 협회 또는 기록 커뮤니티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지점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은 많다. 그런데 학회나 협회에 진입하기에는 진입장벽이랄까? ‘저 어디에서 일하는 누구에요’ 라고 말하면서 다가가기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그냥 혼자 일하다 보니 계속 혼자 일하게 되는거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함께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나는 I라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웃음)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동기, 선후배 등에게 물어보았다. 구청에서 근무할 때에는 5개 구청 모임에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기록물관리를 처음 했을 때라, 이론으로 배운 것을 실무에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하는지, 시작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을 때 주로 연락을 드렸다. 이전 담당자가 했던 기록들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사실 ‘시작점’을 잘 모르겠을 때가 많았다. 나는 궁금한게 있으면, 친분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냥 전화를 드리고, ‘어디어디 누구인데, 죄송하지만 이런게 궁금해서 전화드렸다’ 라고 말한다. 기록관리 하는 분들은 어디나 다 친절하고,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다 잘 알려주신다.
아무래도 혼자 일하는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서로 도우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기록전문가가 기관에서 장기적으로 ‘잘’ 일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에게는 기록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 기관에 대한 애정도 그래야 생기는거니까.
기관은,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기관의 기록관리를 위해 채용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록물관리로 채용되어도 팀의 다른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기관에서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직무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더 나은 진척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규칙적으로 하는 업무 루틴이 있나?
1등으로 출근하는 걸 좋아한다.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스트레칭도 하고. 집에서 가져온 커피도 마시고, 투두 리스트도 쓴다. 오전에 할 일, 오후에 할 일, 확인해야 할 일 등을 적는다.
오늘, 또는 이번주에 특별하게 신경쓰고 있는 중점 업무가 있다면?
다음 주에 공개여부를 논의하는 심의회가 있다. 심의서에 올라온 내용과 실제 내가 하고 있는 내용을 서로 맞추는 작업이 필요해서, 요즘에는 이 일에 집중하고 있는 편이다. 공개여부에 대한 기준을 작성할 때,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쓴다고 했는데, 팀장님이 작성하신 심의서를 보면 또 수정해야 할 것이 많더라.
후배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가?
추진력 좋은 사람, 그리고 이 업무를 좋아하는 사람! 나보다 더 과감한 사람이면서 업무가 힘들때도 기록관리에 대한 확신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장기적인 목표가 있나?
장기목표는 잘 세우지 않는 편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얘기한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라는 문구를 보고 매우 공감했다. 오늘은 열심히, 계획한대로 살지만 긴 인생계획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살아온 과거를 보면, 모두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기도 하고.
지금 시점에서 스스로가 기특하다고 느끼는 점을 하나 꼽아본다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잘하든 못하든 지금까지 계속 해왔다는 것!
내가 상상하는 10년 후의 나의 모습은?
사실 어디에서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디서 일하든지 재밌게,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어디에서 일하느냐보다 내가 오늘 하루 동안 쓸모 있는 사람이었는가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그 때에도 스스로에 대한 편견 없이 조금 더 성장했구나, 라고 느끼면서 일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