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인터뷰시리즈-25
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시리즈2에서는 상대적으로 연차가 적은 인터뷰이들을 종종 만나고 있는데, 자신의 일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매우 깊다는 느낌이 들어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인터뷰이도 마찬가지인데요. 처음 기록학에 입문한 이후 지금까지, 기록학계에 적응하는 과정부터 한 기관의 기록전문가로 일하는 모든 순간 나의 역할은 물론 기록전문가라는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조용해보이지만 꽤나 저돌적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도요. 무엇보다 긍정적으로 나의 일을 대하는 모습에 인터뷰 내내 저까지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요즘, 아니 항상 기록관리 하기 정말 힘들죠. 그래도 작은 변화들을 느끼고 있지 않나요? 그런 긍정의 신호를 모두 찾길 바라며, 독립기념관 최혜영 선생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 일시 : 2024. 3. 6. (수) 16:00-17:00
- 장소 : 카페 워커샵(대전 소제동)
- 인터뷰 : 황진현
- 정리 : 황진현, 류신애
본인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독립기념관에서 일하고 있는 기록연구사 최혜영. 2021년 7월에 입사해서 3년 정도 되었다. 학부에서는 역사학을 전공했고, 2019년 2월 강릉원주대학교 기록관리협동과정으로 석사 졸업했다. 한 기관을 거친 후 지금 두 번 째 기관이다. 현재 기관에서는 기록물관리와 정보공개를 하고 있고, 부가적으로 사회공헌 업무를 함께 하고 있다. 흔히 독립기념관에서 일한다고 하면 독립운동과 관련된 기록을 관리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기록들은 자료부(학예연구직)에서 관리하고 도서는 사서가 관리한다. 나는 공공기관인 독립기념관의 운영 및 행정과 관련된 기록을 관리한다.
기록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 과정)는 무엇인가?
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할 때 전공선택 과목으로 이승일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기록관리 입문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 수업에서 ‘나의 기록물관리’라는 과제를 내주셨는데, 내 기록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를 정리하여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것들과 일기들을 모아 과제로 제출했는데, 교수님께서 ‘기록관리 잘 할 것 같다’는 한 마디에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마음으로 대학원 진학을 위한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다보니 이상하게(?) 재미있었고 그러다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되었다.
기록관리를 몰랐을 때에는 어떤 진로를 고민했나?
역사학 전공이다 보니 박물관에서 근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진로탐색에 열정이 있었던 터라 근로장학생으로 도서관에서 일하며 사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할 때 서가 사이에 서 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책들이 나를 감싸는 느낌이 들면서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보다는 무생물과 있는 것이 좋다’ 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다 수업을 통해 기록관리를 알게된 후 진학까지 하게되었다.
처음에 기록학이라는 것의 이미지는 어땠나?
진짜 딱딱하다! 배우는 내용도 그냥 읽으면 되게 쉬운 것 같은데, 깊게 빠지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늘 생각했다. 기록관리라는 학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뭘까, 난 어떤 해답을 얻어야 할까? 가 늘 고민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역사자료들을 수집해서 관리하고, 서비스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은 현대 공공기관의 행정기록물에 집중되어 있어,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대학원 다니던 시기에 특별한 기억이 있나?
특별한 기억이라기 보다, 지나고보니 참 재미있었다 싶다. 강릉원주대학교 기록관리협동과정은 내 위로 졸업한 선배가 한 명 뿐이었고, 내가 2기이다 보니 정보 등이 많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교수님 지도 하에 기록관리에 관심 있거나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함께 스터디를 하는 것이 매우 유익했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는 그 스터디를 이어 받았고, 스터디모임의 장이 되어 대학원에서 배운 것을 가르쳐주었다. 매 주 스터디 준비를 하며, 후배들에게 뭘 말해줄 수 있지? 하는 것에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즐거움, 희열을 느낀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수업을 하나 꼽는다면?
법령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학원을 가서 처음으로 법령을 마주했고 조항 하나하나를 읽어보게 되었는데, 조항 하나하나가 연결이 되어 큰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법은 딱딱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어떤 것은 의무조항이고 어떤 것은 권고조항이고 하는 것도 신기했고, 조항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들도 흥미로웠다. 아직도 생각날 때가 있어, 요즘에도 힘들 때면 법령을 열어두고 볼 때가 있다. 그 때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웃음).
협회 홈페이지에서 공지하고 있는 여러 기록관리 관련 행사들을 찾아보고, 열심히 참여했다. 국회기록보존소에서 진행하는 학술대회나 학회 학술대회에도 가능한 참여했다. 기록인대회에도 가보니 많은 기록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각 세션에서 소개하는 여러 사례들을 알게되면서 점점 시야가 넓어졌다. 이렇게 다니다보니 ‘아 이렇게 그냥 스며들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에서 공부 할 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학교가 강원도에 위치해 있고, 졸업한 선배도 한 명 뿐이어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정보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 가장 컸다. 석사 1학기를 다니던 중 어느 날 교수님을 따라 학회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서로서로 인사를 하고 알고 지낸다는 것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나는 혼자인데 이 사람들은 그룹이 형성되어 있구나, 어쩌면 나는 계속 이런 무리에 속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같은 학문을 공부하지만 이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구나 하는 것들? 어울리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인터뷰어의 입장에서, 이 부분은 느낌표를 꼭 넣어주고 싶다!) (사)한국기록전문가협회에서 예비학교를 진행하는 것을 알고 신청했고, 가보니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것저것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 이후에는 협회 홈페이지에서 공지하고 있는 여러 기록관리 관련 행사들을 찾아보고, 열심히 참여했다. 국회기록보존소에서 진행하는 학술대회나 학회 학술대회에도 가능한 참여했다. 기록인대회에도 가보니 많은 기록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각 세션에서 소개하는 여러 사례들을 알게되면서 점점 시야가 넓어졌다. 이렇게 다니다보니 ‘아 이렇게 그냥 스며들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협회의 예비학교나 홈페이지였지만, 점차 어떻게 넓혀가야 하는지 알게된거다. 그래서 지방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거나, 내성적이어서 누군가와 어울리는게 힘든 후배들이 있다면 협회에서 진행하는 여러 행사나 기록인대회 등을 잘 참여해보고, 활용해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이나 혹은 재학 중 기대했던 ‘기록전문가’로서의 나의 모습은 무엇이었나?
기록인대회에 처음 갔을 때, 어떤 세션의 발표자가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에서 체계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게 너무 멋있어 보이면서도, 체계를 세우는 일이 뭘까? 체계라는 것이 뭘 말하는걸까? 무엇이길래 체계를 ‘세웠다’고 말할까? 하는 궁금증들이 생겨났다. 나도 어딘가에 가서 일을 하게 된다면 체계를 세우는 일을 하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되뇌였다. 지금은 그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전 직장이었던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이나, 현 직장인 독립기념관에서 체계를 잘 세우고 있나? (웃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체계를 세우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걸 알았고, 어디까지 해야 체계가 세워지는 것인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때 그 선생님께서는 어느정도를 하셨길래 당당히 체계를 세웠다고 이야기하셨는지! 너무 부럽다.
졸업논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논문 작성 시 힘들었던 점도 함께.
국회기록물 관련해서 논문(국회기록물 관리체제 개선방안연구 : 국회 의정활동기록물을 중심으로)을 썼다. 법령에 흥미도 있었고 기관의 사례로 논문으로 쓰고 싶었는데, 실무경험이 없다보니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교수님께 상의드렸고, 도움을 받을 수 있게되어 국회기록물로 논문 주제를 잡았다. 사실 국회기록물 관련해서는 선행연구들도 있었고, 국회나 헌정기념관에 조사 차 방문했을 시 다들 잘 설명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그 기관의 실정에 대해 잘 모르고 경험해보지 않은 내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것이 힘들었다. 대학원생의 입장에서 ‘이렇게 해결하면 되지 않나?’ 하고 단순히 생각했던 것들은 이미 기관에서 다 고려해보신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문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연구 주제나 방향성 외에 논문을 작성하는 것 자체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논문이란 것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니, 어떤 방향으로 생각을 해야하는지도 어려웠다. 할 수 있는 건 교수님을 찾아가는 것 밖에 없었고, 규모가 크거나 오래된 기록관리 대학원들의 학위논문을 보면서 대략적인 양식을 익혀나갔다. 기록인대회나 협회 행사에서 아무나 붙잡고, 어떤 방법으로 논문을 읽으시냐 물은 적도 있다(웃음).
정말 저돌적이다! 졸업을 하고 난 후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기록전문가라는 자격을 가지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인데, 내 전공과 일에 대해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게 사관이지 않나. 많이들 그렇게 설명하고. 그런데 나는 우리의 직업을 ‘사관’으로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사관은 기록하고 그것을 보존하는데 책무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보다 더 넓은 영역을 포괄한다고 생각한다. 사관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웃음). 그래서 늘 예시를 들어 설명해주려고 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그 해 같이 찍었던 사진들을 앨범으로 만들어주면서, “너랑 같이 찍은 많은 사진들 중 일부를 선별해서, 월 별로 정리해 넣었어. 너가 찾아보고 싶을 때, 월 별 기준으로 사진을 찾아볼 수 있어. 이런게 내가 하는 일이야.”라고. 어떻게든 기록이 생산되는 시점부터 활용되는 순간까지를 모두 설명해주고 싶었다. 사실 지금도 어떻게 설명해줘야 사람들이 내 직업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된다. 기록의 생산되는 시점부터 정리, 관리되는 시점, 보존 후 활용되는 시점까지 모두 우리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대학원 졸업 후 기록전문가로 들어간 첫 직장은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이다. 입사 계기와 과정은 어떻게 되나?
많은 졸업생들이 고민하듯 공공기관에 들어가야 할지, 교육청 등과 같은 시험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둘 다 준비하기에는 부담이 되었기에 시험준비를 하기로 결정했고 행정법과 문헌정보 등 강의를 들으며 시험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험이 많지도 않고, 지역제한 등 제약이 많다고 느껴 계약직이든 아르바이트든 무엇이든 해서 경험을 쌓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기관에서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은 처음부터 기록물관리전문요원으로 입사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교수님과 함께 한 연구사업 때문에 방문한 적이 있었고, 내가 기록학을 전공한 것을 기관에서 알고 계셨기에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 그러다 기록관리 업무를 수행할 사람이 필요해졌고 아르바이트에서 기록물관리 담당자인 직원으로 전환되었다.
특이한 케이스다. 기관 입장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을 뽑아서 하면 되는 정도 였던 기록관리 업무가 한 명의 직원이 필요해질 만큼 중요해졌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상황에서 직원으로 전환된 후 기관의 첫 기록관리담당자이자 전문가로서 했던 다짐 혹은 계획이 있었다면?
당시 내가 생각했던 아키비스트는 기록의 라이프사이클을 모두 다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은 관련 기록들을 수집, 관리하고 보존하는 업무를 하는 곳으로 매뉴스크립트 기관이다. 처음에는 대학원에서 배운 공공기록관리와는 다른 점이 많아 혼란스러웠는데, 그래도 이 기관에서 뭐라도 날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정리 작업을 열심히 했다. 기록관리담당자이자 전문가로서의 다짐이라면 지금 일하는 독립기념관에 와서 했던 것 같다. 정규직으로 들어왔고, 나를 기록물관리전문요원으로 칭해주는 기관에 온 것이니 말이다.
독립기념관에 처음 입사했을 때 기록들이 1층 창고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직원들에게 ‘기록관리’ 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문서고, 창고, 자료, 종이 이런 용어들을 사용했다. 이 기관에서 ‘기록’, ‘기록관리’, ‘기록관’ 이라는 용어를 직원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하는 것을 1년 목표로 삼았다. 나중에는 창고에 있던 기록을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되면서 ‘기록관’ 현판을 달았다. 이 자리는 원래 교육센터여서 직원들이 ‘옛날 교육센터 자리’라고 불러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록관’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회의가 있거나 공문을 작성할 시에도 ‘장소: 기록관 옆’ 과 같이 모두가 ‘기록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 때 참 큰 희열이 있었다.
그간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없던 곳에서, 기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니 많이 뿌듯했을 것 같다. 지금 독립기념관에서의 주된 업무는 무엇인가?
앞서 소개했듯이 기록관리, 정보공개, 그리고 사회공헌 업무를 담당한다.
독립기념관은 공공기관으로서 관리해야 하는 운영, 행정기록들이 있지만 그 외에도 독립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매뉴스크립트 기록물이 있을텐데. 그 부분은 누가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자료부에서 학예연구직 선생님들이 담당하고 계신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서 일할 때에는 내가 매뉴스크립트 기록을 담당했기 때문에 수집도 하고, 간단한 보존처리도 담당하고, 디지털아카이브도 맡아 서비스도 진행했다. 그러나 독립기념관은 매뉴스크립트 기록의 관리, 보존, 서비스까지 모든 업무가 담당자가 별도로 있어 내가 담당할 것은 아니었다. 기록관리라는 큰 범주 안에 공공 행정기록관리, 매뉴스크립트 관리, 디지털아카이브 등이 포함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러한 부분은 아직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서로서로 협업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어필하는 것도 앞으로의 내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먼저 간행물, 행정박물 등을 어떻게 관리하고 계시는지 조심스럽게 여쭤보기도 했다. 이미 잘 하고 계시는 부분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앞으로 협조가 필요한 부분은 적극 함께하겠다고 했다. 행정박물은 소외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조금씩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내 성격은 I인데, 기관에서는 나를 E로 오해하기도 한다.
독립기념관 내에는 학예사 등 역사학을 기반으로 한 전문가들이 많을 것 같은데, 스콜라쉽이 있는 기관에서 일하는 장단이 있다면?
우리 기관은 학예연구직이 많은 편이다. 전체 정원의 절반 가까이가 학예연구직이다.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높은 반면, 자신의 업무에 누군가 이야기하는 것에 벽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독립기념 관련 기록들을 전시하거나 아카이브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할 때, ‘나도 그 업무에 관심이 있는데 참여해서 배울 수 있는가’를 조심스레 물어본다. 좋은 점은 내가 기록관리를 전공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다는 거다. 한 학문을 공부했다는 것을 잘 인정해주고, 잘 들어주려 하신다. 서로서로 배우고, 알려주려는 마음들이 있어 좋기도 하다.
학예연구직이 절반 이상인 기관에서 기록직이라는 소수직렬로서 느끼는 감정도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사무처에 속해있는데, 사무처에서는 나를 연구직렬로 바라보고, 학예연구파트인 연구소에서는 나를 사무처 직원으로 생각한다. 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서로 많이 친해져서 괜찮다.
대학원 졸업 후 기관 근무 경력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도, 현재의 독립기념관도 역사적 사건을 모태로 한 기관인데. 이러한 기관을 선택하게 된 계기나 이유는?
역사학을 전공했다보니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 늘 관심이 있었다. 독립기념관 채용공고를 봤을 때, 이 기관이라면 혹은 역사적 사건이나 배경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라면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마음에 지원했다. 다른 기관들에 비해서는 조금 더 흥미가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 중 가장 재밌는 일, 또는 심혈을 기울이는 일이 있다면?
입사한지 3년 정도 되었는데, 매 년 기록관리 사이클을 하나 하나 해보는 중이다. 작년에는 첫 번째 평가심의를 준비하면서 몇 일 간 잠도 못 잘 정도로 설레었다. 올 해에는 교육을 잘 해보고싶다. 기록관리는 아무래도 직원들의 협조가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는걸 알게된 후, 직원들이 기록관리에 대해 더 잘 알게끔 바꿔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록물관리추진단’을 만들어 처리과 별 한 명씩 배정하여 운영 중이다. 이 추진단을 운영한 이후 어떤 분은 이전에 비해 이관을 너무 꼼꼼히, 완벽하게 잘 해주기도 하셨다. ‘작년에 한 번 해보니, 올 해에는 좀 더 괜찮더라고요’ 라는 이야기에, 교육이 필요함을 더 크게 느꼈다. 올 해에는 직원들과 함께 국가기록원 견학도 가 볼 예정이고, 직원들을 모아 대면교육도 직접 해 볼 생각이다.
기록물관리추진단이라니 멋지다. 구성이나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나?
처리과 별 2년차 이상 직원들로 구성했고 일 년에 두 번 모인다. 이 부분을 강하게 부장님께 요청드렸다. 예전에 학회에 갔다가 어떤 선생님께(또 무작정) 이런 추진단을 운영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그 분이 ‘연차가 높아야해요’ 라고 한 마디 하고 가셨는데, 이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적어도 2년차 이상이라면 한 해는 기관을 경험했을 테고, 너무 연차가 높아 내가 감당할 수 없지도 않겠다 싶어 이렇게 요청드렸다. 이관이나 평가심의, 폐기 등 기록관리 업무 수행할 때 서로 같이 이야기하고 협조도 구한다.
처음 추진단을 시작했을 때에는 직원들이 ‘빨리 가고싶다’ 라고만 하셨다. 그런데 나도 추진단 모임 때마다 할 수 있는 한 준비를 많이 해갔다. 기록관리와 관련하여 나에게 질문했을 경우 아는 것은 아는대로, 모르는 것은 공부하여 최대한 답변할 것이고, 개선 요구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최대한 다음 해에 반영하도록 노력할테니 도와달라고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협조를 잘 해주시는 편이다. 어떤 분은 기대하겠다고도, 어떤 분은 수고했다고, 또 교육이 재밌다고도 해주셨다.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변화가 또 다른 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조직개편에 따라 직원들의 자리 이동이 잦은 공공기관의 특성 상 추진단을 통해 교육하면 또 다른 곳으로 가고, 새로운 사람이 추진단에 들어오게 되지 않나. 이런 점이 힘들거나 피곤하다고 생각되진 않았나?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새로운 사람을 또 교육하게 되면 기록관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니까. 추진단에 2-3년 계시는 분들은 아는 만큼 열심히 해주셔서 좋고, 새로 들어오신 분들은 내가 더 열심히 알려드리면 된다.
사실 기록관리업무가 늘 똑같고 협조도 잘 안되니 힘들기도 하고 부정적인 마음이 들기도 한다. (중략) 그렇지만 하나라도 바뀌면 또 기쁨이 있고, 다음 번에는 또 다른 사람이 또 다른 환경이 변화할 수도 있다. 너무 일희일비 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희망이 보일 수도 있다.
현재 직장에서 장기적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기관에 입사하고 나서 얼마 동안은, 내가 이 기관에 꼭 필요한 사람일까를 고민했다. 나같이 경험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타 기관에서 경험도 많고 기록관리 경력도 오래된 사람이 이 기관에서 일하게 된다면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런 자기비하(?)에 빠져 지낸 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기관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내가 이 기관에 없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 기관의 기록관리가 돌아가게끔 체계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좀 장기적으로는 전시 업무를 해보고 싶다. 증평기록관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증평군 공무원들의 (업무) 기록과 인터뷰 결과를 전시로 보여주는 것이 있었다. 기관에서 일하다 보니, 직원들이 서로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 서로에 대한 불만 중 하나가 ‘이 사람은 일을 잘 안해’ 라는 것이다. 그런데 증평기록관의 전시를 보고난 후 조직문화를 잘 바꿀 수 있는 키는 기록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이 하는 일, 그 결과물인 기록을 보여주면 직원들 간에 서로 일한 결과물을 볼 수 있으니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 않을까? 거창하지 않더라도 직원들의 업무 결과물인 기록을 잘 보여준다면, 한 명 한 명이 그저 자리에 앉아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근무하고 있음을 서로 알게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약 4-5년차의 직장인이다. 대학원 졸업 후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의 다짐을 앞서 질문했다면, 혹시 현 시점에서 달라진 점도 있나?
처음 입사 당시에는 내가 열심히 하면 뭐든 다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직원들은 기록물관리에 관심이 없고, 중요하다는 인식이 크지 않다. 나를 그저 한 명의 전공자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내가 이 기관에 꼭 있어야 하나 하는 패배감도 생겼고.
그래서 이제는 어떤 큰 변화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나하나씩 해나가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바꾸었다. 버티고, 이 기관 안에 잘 스며들면 된다. 직원들이 일하면서 매일 생산하는 것도, 자신의 업무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도, 가장 가까이 있는 것도 기록물인데, 내가 열심히 하고 필요한 부분을 잘 알려주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사실 기록관리업무가 늘 똑같고 협조도 잘 안되니 힘들기도 하고 부정적인 마음이 들기도 한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볼 때면 많은 분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시는 것 같다. 저연차일 때 이런 내용들을 마주하게 되면 ‘아, 이 길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하나라도 바뀌면 또 기쁨이 있고, 다음 번에는 또 다른 사람이 또 다른 환경이 변화할 수도 있다. 너무 일희일비 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희망이 보일 수도 있다. 가끔 우리 학계가 너무 침울해진 것 같다고 느끼는데, 다 같이 으쌰으쌰 하고 싶다.
다 같이 긍정의 면을 찾아나가면 좋겠다. 혹시 취업이나 이직 시 기억나는 면접 질문이 있나? 후배들을 위해.
취업 시 보다는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 인터뷰 시 받았던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독립기념관은 입사 후 3개월은 인턴으로 근무하다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케이스였는데, 전환 인터뷰 시 한 분이 ‘우리 기관에 도면이 어디있는지 알아요?’ 라고 질문하셨다. 3개월 동안 전자문서시스템도 살펴보고, (당시)창고이자 서고에서도 비전자기록물을 살펴보았는데, 도면은 보지 못했다. 이 질문을 받으면서 내가 모르는 기록들이 시스템이나 기록을 보관해둔 서고 외에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거기까지는 파악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공공기관에서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을 처음 채용하는 경우 기록들이 많이 산재되어 있을텐데, 그 부분까지는 미처 고민하지 못했다는걸 깨달았다. 이후 기관의 기록을 전체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직원들과 많이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록관리 입장에서 기관분석이라는 것이 시스템이나 서고를 둘러보는 것 외에도 직원들이 어떤 업무를 하고, 어떤 기록을 생산하고, 그것을 어디에 보관해 두는지를 알아내는 것 까지 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과거를 돌아보며 취업준비(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준비 등)를 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나의 강점과 부족했던 점을 말해준다면?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서 근무하다가 공공기관으로의 이직을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전 기관이 매뉴스크립트 기관이다 보니 공공기관 근무 경험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이관을 해봤는지, 평가는 해봤는지 등 질문을 받았을 때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독립기념관도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한 기관이고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도 역사적 배경을 가진 기관이었기에 그런 부분들은 강점이었을 수 있다. 또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서 디지털아카이브를 구축하는데 참여한 부분을 면접 시 많이 물어보셨다. 당시 내가 고민했던 부분을 면접 시 얘기했는데, 이런 부분들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것 같다.


연간일정표. 출근 후 매일 일정표를 보며, 올 해, 이번 달, 오늘 해야 하는 업무를 생각한다.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출근 후 루틴이 있다면?
3년 동안 진행해야 하는 연간 일정을 만들어 둔 것이 있다. 출근하자마자 이걸 가장 먼저 본다. 매일. 연간 일정이 깨지지 않고 흘러갈 수 있도록, 이번 달 안에 이번 주 안에 오늘 안에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생각한다. 약간 의식처럼?
1년차 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2년차 부터 이렇게 보게 되었다. 1년차에는 각 업무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몰라서 연간 계획이 많이 늘어졌고, 연말에 일이 많이 몰렸다. 그래서 2년차 부터는 일정이 늦어지지 않도록 매일 보고 있다.
일을 매우 잘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내가 이 직장에서 기록전문가로서 기여하고 싶은 것과, 직장이 기록전문가인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욕먹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기록관리는 이 기관에서 나 혼자 하는 것이니, 나 때문에 무언가 늦어지고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싶지 않다. 더 나아가서는 기록연구직 전체를 욕먹이는게 될까봐 더 조심스럽기도 하다. 기관에서는 나 혼자 뿐이니, 내가 못하면 ‘기록연구직들은 다 저래’ 라는 소리가 혹시 나올까봐 더 긴장하는 것도 있다.
그런 긴장과 동시에 기관에서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지금 기관에서는 기록물관리를 루틴한 업무라 생각하고, 해야만 하는 업무로 생각하고 있지만 앞으로 나에게 하는 기대가 많아졌으면 한다.
앞으로 어떤 기록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면.
힘들 때 마다, ‘10년 뒤의 나는 다를거야!’ 라고 생각해서 이 질문이 반가웠다. 기록인대회 처음 갔을 때 들었던 발표자들의 이야기처럼, 우리 기관에서 기록물로 무언가를 한, 그런 성과를 가진 개척자(?)가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