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제너럴리스트: 아카이브센터 정혜지

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인터뷰시리즈-28


기록학을 전공한 많은 사람들은 졸업 후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요(주1), 공고한 조직과 제도 안에서 직원 중 한 명으로 일을 하다 보면 무기력에 젖어들 때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조금씩 바꿔나가면 될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어느 정도의 의미를 지닐지에 대해서 다시 물음표를 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내가 처음에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뭐였지?

오늘 만난 인터뷰이는 전공을 선택했던 그 이유가 삶의 여러 측면에 스며들어 있는 ‘기록인’이었습니다. 인터뷰 중에 ‘사람’이라는 단어를 스물 여섯 번이나 말하기도 했어요. 기록을 말할 때도 일 자체에 대해 말할 때도 ‘사람’을 중심에 두는, 아카이브센터(주) 정혜지 센터장을 만나보시죠.


  • 일시 : 2024. 8. 22. (목) 19:00-21:30
  • 장소 :  더하우스 1932
  • 인터뷰 : 류신애
  • 정리 : 류신애, 황진현

정혜지. 울산에서 왔다. 아카이브센터(주)라는 회사에 적을 두고 있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에서 전시분과 활동을 하고, 외부 또는 내 공간에 글을 쓰기도 한다.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결국은 ‘기록인’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다. 정리할 사진을 서울 집으로 가지고 와서 정리하고 보존상자에 넣었더니 부피가 커서 다시 들고 가기가 어렵더라. 가끔 꺼내서 바람도 쐬어 주고 있다.

이사를 앞두고 버리려던 사진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큰 딸이 이런 일을 하는 것 같으니 물어보자고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내가 잘 살펴보겠다고 하고 가지고 올라왔다. 

구술사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생활 내내 놀다가 4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던 와중에 구술사 강의를 듣게 되었고, 내가 알고 있는 역사에 누군가의 경험이 얹어지고 기록으로 남는다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원래는 중국 고대사 연구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4학년 때 중국 고대사 전공 교수님께서 기록학이라는게 있고 그게 나에게 어울린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처음에는 나를 제자로 받아주고 싶지 않으신 건가 했는데 다른 학생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셨다고 들었다. 역사학 분야는 워낙 취업이 어려우니 각오가 되지 않으면 오지 말라고. 그래서 취업이나 진학, 나의 성향,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셔서 나에게 추천을 해 주신 것이었다. 기록학 대학원 커리큘럼에 대해서 잘 아시던 우리과 교수님 덕에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처음에는 취업을 생각하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기록연구사를 하지 않을까 했다.

어떻게 보면 좀 쉽게 생각한 것도 있었다. 석사학위를 정당한 도피처로 생각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고, 다시 울산으로 돌아가더라도 무언가를 가지고 가고 싶었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부모님과 나 자신을 설득하기에 좋았다. 

세 가지 단어가 생각난다. 동기, 학회, 술! 

당시 학회 활동이 정말 활발했다. 교수님들도 많이 참여하셔서 내가 배우고 있는 내용에 대한 어려운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걸 듣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술도 많이 드시더라. 술자리에서 같이 어울릴 수 있고, 공식적 시간에서는 물어보지 못한 질문들을 할 수도 있었던 것도 좋았다.  동기들과 학회에 같이 가고, 밤 늦게까지 머물러 있다가 오던 날들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그런 자리에서 배웠던 게 더 많았다. 

공식적인 이력은 아니지만 학부생 때부터 녹취 아르바이트를 했다. 울산대학교 안에 아산 정주영 리더십 센터가 있어서 관련 일을 했던건데 그걸 대학원 1학기 때까지 했다. 그 일이 끝나면서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대학원 2학기 때는 평창동계올림픽 준비위원회에서 3개월 아르바이트를 뽑는다고 해서, 그 자리에 가게 되었다. 준비위원회 기록물을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하는 등 준비 작업을 하는 일을 맡았다. 들어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솔직하게 밝히자면 첫째는 생계였다. 내가 첫째인데 동생이 둘이나 있다. 이미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올라온 상황에서 생활비까지 받기는 죄송스러워서 대학원에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 다음으로 경험도 필요했다. 입학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견학을 간 적이 있는데, 공간을 둘러보긴 했지만 기록이 어떻게 관리되는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 경험과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이 서로 이어지면서 보완이 되어 좋았다. 

신기하게도(?) 취업 전에 한국문헌정보기술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16년 8월 졸업 후, 어디에 취업을 할 지를 두고 방황을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일까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국문헌정보기술에 입사했다. 내 존재 가치를 고민하던 그 시기에 전시를 많이 보러 다녔는데, 마침 콘텐츠서비스팀에서 아카이브 전시와 콘텐츠 제작 직무를 맡을 팀원을 채용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고, 그렇게 함께하게 되었다.

1년 반 뒤 한국문헌정보기술 아카이브연구소로 발령이 났고, 사내 벤처에서 독립하는 과정을 거쳐 아카이브센터(주)에 근무하게 되었다. 

정혜지 센터장의 책상. 아카이브센터(주)의 페이지들을 띄워 놓은 치밀함!

당시 팀은 LG화학 사업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입사 첫 날 팀장님께서 엄청 두꺼운『LG화학 50년사』를 주시면서 앞으로 일주일 동안 그 책만 읽으라고 하셨다. 속으로 ‘너무 좋은데?’ 라는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그 사업에 투입이 될 예정이었고, 석유와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내용을 모르면 석유 정제 기술, 유통 방식에 따라 확장된 회사 역사 자체를 이해하기도 어렵고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핵심어들을 기억하고 있다.

이게 중요한 것이, 기록을 관리하거나 이용하려고 할 때 테크니컬한 관리 방법뿐 아니라 그 내용까지 알아야 비로소 아카이브 전문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LG화학에서 아키비스트로 일을 한다면 석유에 대해서 잘 알아야 기록에 대한 가치 판단도 내릴 수 있고 이용자가 원하는 기록을 찾아줄 수도 있다. 더 확장해서, 사람을 잘 모르면 기록을 잘 알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기록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과 감정이 기록에 녹아 있다고 봤다.

PM으로 했던 첫 작업은 2018년 가을 통일부 주관으로 진행한 3일짜리 아카이브 부스 전시였다. 몽골 텐트 하나 정도의 공간이었는데 그 기간의 감각이 지금도 떠오른다. 첫 이틀 간은 시민들에게 통일에 대한 메시지를 적게 하거나 인터뷰를 부탁하기도 했는데, 영상 촬영 기사님도 오셔서 같이 진행한 그 과정이 재미있었다. 3일째 되는 날에는 비가 와서 관람객이 없었는데,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니 그 지난 이틀이 되게 뿌듯했다. 그래서 기분 좋게 철거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날 입사한 개발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 분은 몇 년 전에 이직을 했고, 내가 입사한 지 세네 달 뒤에 몇 명이 컨설팅팀으로 한꺼번에 입사를 했다. 그 중 두 명이 재직중이다.

맞다. 퇴사한 사람들 중 공공부문에 합격한 사람도 종종 봤다.

일반적인 회사원-공무원으로 나눠서 보자면 내가 회사원 성향에 더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관마다 많이 다르긴 하겠지만, 회사에서 좀 더 높은 자율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케이스를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제너럴리스트냐 스페셜리스트냐의 구분일 수도 있을텐데, 나는 제너럴리스트 쪽이 맞다고 생각했다.

정말 다양한 케이스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제너럴리스트 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컨설팅 하는 과정에서 매번 다른 사례를 접하게 되는 것 같다. 고객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마다 편차가 심하기도 하고, 다루려는 기록물의 물리적, 내용적 성격이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박종철센터에 다녀왔는데 그 곳에 계신 분이 진정한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아키비스트라는 생각도 했다. 기록 한 건에 대해서 집요하게 탐구하고 조사하고 그것을 데이터화한다는 점에서. 기록관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를 어떻게 정의하는게 좋을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곤 한다. 

한국에서는 기록관리를 대행하는 것과 컨설팅하는 것을 모두 ‘컨설팅’으로 묶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는, 아키비스트라는 직업 분류가 세분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에 비해서 만남과 맺음의 순간이 자주 있는 것 같다. 좋은 상대를 만나면 헤어질 때 아쉽고, 때로는 홀가분하기도 하다는 점에서 일종의 연애와 비슷하기도 하다. 헤어질 날이 정해져 있으니까 감정을 덜 실으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도 좋았던 것이, 매번 스스로 엄청난 보람이 있었고 내 지식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뿌듯함도 생겼다. 가끔은 나도 언젠가 한 곳의 기록만 깊이 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일을 잘 하는 것 만큼 잘 지시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많이 배웠다. 회사 내부에서든 고객에게서든, 나에게 온 불완전한 지시로 인해 반복적이고 사무적인 일을 많이 해야할 때 상처를 받았고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시보다는 내 능력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는 거다.

그래서 지금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일의 목적과 세부적인 내용을 나누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요구사항을 잘 이해하기 위해 여러 번 질문하거나, 상대방 입장에 서서 바라보려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진짜 다양하다. 사람마다 생각하는게 모두 다르다. 학문에서 정의하는 기록관리의 범위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쓰인다.  아카이브라는 용어가 갖는 매력을 사람들이 느껴서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카이브가 쓰이는 몇 가지 방식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컬렉션이나 큐레이팅이라고 부르던 것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기록화해서 만든 결과물을 유형과 상관 없이 아카이브라고 하기도 한다. 백업하는 행위를 ‘아카이브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기획을 통해 수집한 자료를 한 곳에 모아 놓는 행위를 ‘아카이빙’이라고 하는 경우도 흔하다.  

아쉬운 것은, 아카이브는 활용을 염두에 둔 것이라 관리/보존의 지속성을 가져가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는 거다. 인력이나 예산과 같은 현실적 문제, 의사결정자의 관심도나 정무적 판단 같은 변수가 있는 것 같다.

회사에서는 오히려 다양한 아카이브 개념에 대한 현실성을 열어두고 생각했다.

기록을 예로 들면, 이 단어는 누군가에게는 성찰의 수단, 누군가에게는 결정적인 증거물, 어떤 사람에게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것에 사람들이 끌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삶에서 갈구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무언가. 그런데 그걸 어떻게 유지해야 할 지 잘 모르기 때문에 컨설팅 의뢰를 하는게 아닐까? 그래서, 아카이브를 좋아하기 때문에 많이 쓰기도 하는 것이니 그들의 아카이브를 눈여겨 보자는 게 회사의 시각이다.

시민단체들. 어느 한 곳이라 얘기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시민단체들이 아카이빙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런데 시민단체의 특징이 이사는 많고 실무진은 소수라는 점이다. 그리고 간사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그 업무 기록들의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 기록관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우리가 ‘1차적 가치’라고 말하는 행정적 가치부터 고민을 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내부 체계에 대해 논의를 할 때 환영하는 분위기를 많이 접했다.

2023년부터 2년째 진행하고 있는 ‘여성공익단체 역량강화를 위한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사업’도 있다. 이 사업은 정말 특이한 구조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교보생명보험주식회사, ㈔함께만드는세상(사회연대은행)이 후원하고 한국여성재단이 주관하며 아카이브센터가 협력하고 있다. 여성공익단체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해 시스템과 컨설팅, 기록관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다양한 주체가 서로 협력해 공익적 지식을 아카이브에 담는다는 공동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한국여성재단 조직 내부에서 많은 직원들이 아카이브에 대해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사내 문화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 깊게 남는다.

사람마다 많이 다른데, 처음 온 분들은 기록에 대한 애정, 기록이라는 인간 자체의 본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 기록의 생산과 기록의 관리를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마을 기록단에 오면 사진 잘 찍는 법, 글 잘 쓰는 법 등을 배울 것이라고 기대하는 식이다. 그 분들에게 기록관리에 대해 교육을 하면 혀를 내두른다. 이건 누구의 탓이라기 보다는 접근 방식의 문제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아카이브의 매력과 기록자로서의 자부심을 그들에게 쉽게 전달할지 고민을 많이 한다. 

공교육에서 실시하는 정식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아카이브에 친숙해지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아카이브에 친숙해져야 한다는 의미다. 요즘엔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관, 박물관 답사를 방학숙제로 받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카이브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예전에는 기록관이 없었다 치더라도, 요즘에도 아카이브에 가보았다는 사람을 보기는 어렵다. 가본 적도 없고, 디지털 아카이브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검색해봤다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 그러니 당연히 아카이브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 어려움을 느끼는게 아닐까? 이용자로서의 경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공교육에서 실시하는 정식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아카이브에 친숙해지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용자로서의 경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표님과 이사님, 나, 연구원 두 명 해서 총 다섯 명이다.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독형으로 제공하고, 초기 구축 시 운영하는 방법을 컨설팅하는 서비스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현재 시스템을 구독 이용 중인 고객은 50여 곳이다. 

해야 할 일의 수가 많다 보니 효율적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연초에 타임 테이블과 내용을 대략 정해 먼저 기획해 두고 일정에 맞춰 운영한다. 망고보드, 스티비 같은 콘텐츠 툴을 활용하고 있다. 센스 있는 팀원이 잘 운영하고 있어 든든하다.

가슴 속에 불씨가 있는 사람, 스스로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사람. 아무리 일을 잘해도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지 못하면 결국 자기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을까 싶다. 일상적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게끔 나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지만, 그렇게 마음먹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그리고 기록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기록을 통해 타인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본다. 

마지막으로 직장과 건강하게 거래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중요하다. 요즘은 회사를 의미 없이 다니기만 하려는 사람도 있지 않나. 자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여가뿐만 아니라 하루 중 3분의 1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월급루팡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은 거절한다.

당시 내 직책은 선임연구원이었는데, 센터장이라는 직책을 주신다기에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내 벤처로 있던 시절부터 가장 오래 일을 해왔고, 사업화를 논의해 온 멤버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진짜 자주 온다. 그 이유는 매번 달랐다. 어떤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또는 몸이 너무 지쳐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되어서 등. 그 시기를 넘어가는 방법은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 같다. 이제 7년차인데, 나는 비교적 나 자신의 상태를 잘 알아 차리는 편이고, 상황과 내 감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특별히 없다. 한 가지 취미에 깊이 빠지기 보다는 작은 활동을 많이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강서구에서 청년 네트워크 활동도 했었고, 이걸 인연으로 강서구 소식지 ‘방방’에 가끔 글을 쓴다. 노션에 아카이브 템플릿을 만들어 판매해 보기도 했다. 도시연대 주관으로 ‘도시기록자 네트워크’를 기획하기도 했다. 전시 관람을 좋아해서 사진도 많이 찍고 도록도 모은다. 

그런 것 같다.

기록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기록을 통해 타인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본다. 

아카이브라는 말이 쓰이는 빈도 만큼이나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기록의 매력을 알고 있는 것 같고, 기록학 전공자들은 기록 ‘관리’의 매력을 잘 아는 것 같은데, 그에 비해 산업의 규모는 작은 것 같다. 정말 그 정도가 한계일까? 기록을 교과서적인 정의에서 꺼내어 보다 넓게 접근해가면 좋겠다. 

각자 아카이브라고 부를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고, 내가 그 아카이브들이 유지되도록 묵묵하게 일하는 상태면 좋겠다. 얼마 전 ‘아카이브’라는 말이 포함된 계정을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해 보니 200여 명 정도가 되더라. 사람들은 아카이브라는 말을 좋아하고 거기에 매력을 느끼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문가로서 그들의 요구를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주1) 2023년 12월 기준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자격을 취득한 사람은 총 3,048명이며 1,188명이 중앙행정기관을 포함한 공공기관에 배치되어 있음 (출처: 국가기록원 주요통계(2023.12.31.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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