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어디로 갔을까

아키비스트라운지 인사이트 아웃 #1 평가심의를 평가합니다 – 6


신애에게

기록관리기준표를 학생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이 용어가 너무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거든요. 글을 읽으면서 학생은 물론, 기록관리에 관심을 갖기 어려운 일반 직원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용어도, 이 기준표가 추구하는 바도요. 기록관리기준표가 업무 담당자들의 선의와 책임감에 기대는 ‘UX가 부족한’ 시스템이라는 말이 정말 와닿았어요. 기록관리의 과정 대부분이, 어쩌면 전부가 그렇다는 생각도 들고요. 기록관리기준표(기록물분류기준표 포함)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은 현재 공공기관 운영의 비효율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요. 처리과에도, 기록관에도 실질적인 효용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에요.

트리거 기반 보존기간 산정의 부재와 획일화된 7종 보존기간의 한계는, 기록관리기준표가 단순한 형식적 기준표를 넘어 법률 준수(Compliance)와 기록 가치평가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잖아요. 보존기간 7종 문제는 제가 기록관리를 시작하던 때부터 줄곧 지적되어 온 오래된 과제예요. 10여 년 가까이 분류체계 연구마다 트리거 기반 보존기간 책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는데, 그게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요? 작년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개정안이 논의될 때, 기록관리계와 충분한 논의도 없이 보존기간 종수를 단순히 줄이는 방향이 아니라 트리거 기반 보존기간 체계로의 전환이 진지하게 다루어졌어야 했는데, 정말 아쉬운 부분이에요.

세부 법률이 규정한 보존 의무기간을 기록관리기준표가 반영하지 못한다면, 기록관리 전문가는 물론 업무 담당자들에게도 신뢰받기 어렵겠죠. 오늘날 개인정보 보호를 비롯한 각종 법적 요건에 따라 기록을 적기에 보존하는 것이 기관 신뢰성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고요. 결국 현재의 기록관리기준표는 기록 자체를 관리하는 기준이 아니라, 업무의 중요도와 기록물 처리 방향에 대한 안내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 기록을 잘 생산하고 관리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해요. 분류는 BRM이 담당하니, 기록관리기준표의 항목들은 기록관리에 실질적으로 유의미해야 할 텐데, 과연 어느 항목이 제 기능을 하고 있을까요? 전자기록 환경에서 비치 여부는 무의미하고, 공개 여부와 접근 권한을 ‘철’ 단위 기록에 적용하는 것도 영 적절하지 않아요. 보존기간 책정 사유나 보존 장소 및 방법 같은 항목은 사실상 제대로 기술되지도 않고요. 정말 기록을 관리하는 데 ‘이 기준표’가 필요한 건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돼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록관리기준표가 레코드 스케줄(Records Schedule)과 같은 형태로 전면적인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기록이 생산되어야 하는지, 기록의 유형과 내용적 특성은 무엇인지(생산통제), 생산된 기록에는 어느 정도의 보존기간(트리거 기반)과 보존 방법이 필요한지, 관리 및 보존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처분의 유형·방법·주의사항까지를 아우르는 기록 중심의 관리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시행령 개정안처럼 잘 안 쓰는 항목 줄이고 이름만 살짝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죠. 그렇지 않다면 기록물관리기관은 무엇을 기준으로 관리를 하는 건지 묻고 싶어요. 기록관리단체협의회를 비롯하여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의견들은 대체 어디로 간걸까요.

레코드 스케줄을 만드는 일이 기록관과 영구기록물관리기관에 큰 부담이 될 거라는 이야기도 들려요. 쉽지 않은 작업이고,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한 번에 완성되지 않고 지속적인 갱신도 필요할 테고요. 그래도 레코드 스케줄을 잘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기록전문가의 핵심 역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스템 통합, 인공지능 도입 등으로 기록전문가의 업무는 이미 변화하고 있고, 일부는 자동화될 거예요. 비전자기록 관리의 비중도 점차 줄어들겠지요. 기록전문가의 역할은 변화해야 하고, 그 중심에는 평가와 그 토대가 되는 레코드 스케줄 수립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생산현황통보 데이터를 활용하고, 앞으로 변화해야 할 생산현황통보 방식을 기반으로 레코드 스케줄을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부분은 나중에 더 이야기하기로 해요!)

조금 범위를 벗어난 이야기이긴 한데요, 레코드 스케줄이 잘 정착된다면 폐기금지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폐기금지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폐기금지 대상 기록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기준 자체가 불명확하기 때문이잖아요. 레코드 스케줄이 이 문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통제 등 현행 기록관리에서 고질적으로 지적되어 온 문제들에 대한 구조적 대안으로도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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