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인터뷰시리즈-12
기록학은 ‘현장’과 ‘실천’이 특히 중시되는 학문입니다.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기관에 들어가서 기록관리 업무를 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박사과정에 진학하더라도 직장과 병행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비춰집니다. 그래서인지 기록‘학계’라고 통칭되기도 하는 기록인 커뮤니티에서 전업 연구자를 찾아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달에는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연구자를 만나보았습니다. 올해 2월에 박사학위를 받은 신진 연구자이자 프리랜서 컨설턴트인 송영랑 선생님입니다. 기록학이라는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 전업 연구자로서의 삶과 연구 주제, 앞으로의 바람에 대해서 들어보았습니다.
일시 : 2019. 5. 11. (토) 17:00-18:30 장소 : 파스쿠치 대전한남대점 인터뷰 : 류신애 정리 : 황진현, 류신애
본인과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소개 해달라 . 송영랑 . 올해 2 월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강의와 연구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일하는 , 기록학계에 몇 되지 않는 프리랜서 컨설턴트이다 . 이제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다 .
지금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꼽는다면 ? 가족 , 동료 , 일과 공부를 꼽을 수 있다 .
첫 번째는 가족인데 , 작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뻔 해서 부모의 부재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 평소에는 ‘ 내 인생을 즐기자 ’ 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가족이 없으면 즐거울 수가 없겠더라 . 그래서 가족 위주의 삶을 살려고 한다 . 나 혼자 즐거운 것은 내 삶이 아니다 .
두 번째는 동료이다 . 프로젝트 기반으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얘기가 통하는 동료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 . 내가 몇 안되는 프리랜서인 이유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기관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 그만큼 함께 논의 할 동료가 없다 . 새로운 이론을 배우고 적용하는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혼자이다보니 같이 얘기할 수 없다 . 가족같은 동료와 함께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 . 그래야 일이 즐거울 것 같다 .
세 번째는 일과 공부이다 .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연구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 박사논문을 쓰면서 한계를 많이 느꼈다 . 다른 분야의 공부를 조금씩 해보면서도 내가 작게 느껴졌다 . 이제부터 박사 후 과정에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고 , 논문은 1 년에 한 편이라도 내고 싶다 . 그리고 동료와 함께 여생 (?) 을 보내고 싶다 .
기록을 수집 , 보존 , 서비스하는 것만이 아카이브가 해야 하는 역할의 전부일까 ?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 명쾌한 답을 찾고 싶었다 .
2007 년 한남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 기록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 나는 대전 출신이고 한남대학교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했다 . 유학을 다녀온 후에 정부청사 앞에 살고 있었는데 국가기록원이 일본어 번역을 할 사람을 구한다는 것을 들었고 , 그 곳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 지금 생각해보니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수집해온 M/F 기록을 영구기록물관리시스템에 등록하는 업무였던 것 같다 . 그 때 내 옆에서 중국어를 번역하던 분에게 남편이 기록학을 전공하고 국가기록원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그 얘기에 흥미를 느꼈고 , 사실은 공무원이 되려고 가까운 대학원에 입학했다 .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그렸던 ’10 년 후의 송영랑 ’ 의 모습이 궁금하다 . 그 때에는 전문가로 정체성이 확립되기도 전이었고 , 잘 몰랐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다 . 가서 배우자는 생각으로 들어왔다 . 선배들이 많이 공무원이 되었으니 나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신나게 잘 놀았다 . 그리고 그 때의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 지금도 힘들 때마다 그 사람들을 찾게 된다 . 기록학 대학원 교수님과 학생들이 참여하는 사회인 야구팀에도 참여를 했는데 , 그 때 대학교때 보다도 더 재미있게 참여했다 .
나에게 영향을 미쳤던 건 김익한 선생님의 특강이었다 . 석사 마지막 학기에 학교에 오셔서 문화자원수집에 대한 특강을 하셨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 신선했다 . 원질서 , 출처 , ISAD(G) 같은 것만 듣다가 문화자원세트 같은 이야기를 들으니 재밌더라 . 그리고 그 때 ( 사 )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이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사람을 많이 필요로 했고 , 학교에서 지원자를 받아서 연구원에 추천을 해줄 때 내가 밑도 끝도 없이 지원을 했다 . 그렇게 그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 졸업을 하고 난 후 2010 년부터 연구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 그 때 그 특강 하나로 .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되는데 , 박사 논문 주제가 재난아카이브다 . 그 주제로 논문을 쓴 배경에 대해 듣고 싶다 . 재난아카이브에 대해서는 3-4 년 전부터 연구모임 등을 통해 접해왔다 . 특히 세월호 사건으로 김익한 선생님을 도우면서도 접하게 되었고 직접 인터뷰를 촬영하기도 했다 . 나는 정치적인 사람도 아니고 역사학 전공자도 아니라서 그 기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 그런데 처음으로 ‘ 재난 피해자들에게 아카이브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 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 그 답을 찾지 못했었다 . 기록을 수집 , 보존 , 서비스하는 것만이 아카이브가 해야 하는 역할의 전부일까 ?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 명쾌한 답을 찾고 싶었다 .
박사 논문을 쓰면서 일본 사례를 찾다가 고베 지진 피해자들에 대한 기록들을 보게 되었다 . 일본 재난아카이브에는 피해자들의 수기가 많은 것이 특징인데 , 그 피해자들의 구술기록과 인터뷰를 보면서 아카이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박사논문의 기반이 되었다 .
면밀한 자료조사가 돋보이는, 박사학위논문의 한 페이지.
연구원에서 일한 지 3 년째 되던 해에 퇴사를 했다 . 2010 년에 연구원에 들어갔을 때 명지대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과 동기가 되어 같이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 그런데 수준 차이를 많이 느꼈다 . 회의를 하면 70-80% 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정도였다 . 너무 창피하고 자존심도 상해서 일과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 2 년차에는 박사과정에 입학을 했고 .
낮에는 프로젝트를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다 보니 몸 관리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 그러다보니 눈에 무리가 왔다 . 안경 때문에 가볍게 안경점에 갔는데 안경점에서는 안과로 , 안과에서는 다시 더 큰 안과로 보내더라 . 더 무리하면 실명을 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 그 즉시 연구원을 그만두고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 학교도 1 년을 휴학했다 . 시력을 회복한 다음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었다 .
연구원 소속으로든 프리랜서로든 , 연구사업들을 수행하려면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다른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연구사업을 하는 이유가 있다면 ? 처음에는 일을 배워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힘들어서 그럴 틈도 없었다 . 숨을 쉬는 것도 힘들게 느껴질 정도였다 . 그러다가 2012 년에 접어들고 일이 좀 익숙해질 때에 자기 복제를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 재미도 없었다 . 그 때에는 각 기관의 특수성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 그래서 뭘 해야하나 생각하다가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고 , 자연스럽게 해당 기관의 가치를 부각해줄 수 있는 기능 설계 등을 더 고민하며 의미 부여를 하게 되었다 . 그 결과가 완성되었을 때 뿌듯하고 성취감을 느낀다 .
최근에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한다 . 예를 들어 내가 공동체나 민간기록 수집에 관심이 있으면 그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내가 공부했던 것을 적용하는 재미를 느낀다 . 기록학은 실용 학문이기 때문에 연구 사업의 결과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를 원한다 .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 내 안에 무언가 축적되는 것을 느끼면서 희열감을 느낀다 .
매우 많은 유형의 프로젝트들이 나오고 PM 급 연구원의 수는 많지 않다 . 제안받는 것 중 일부를 선택하게 될 텐데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 동료 . 어려운 과업이라도 시도하는 것이 의미가 있거나 같이 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을 때에는 참여한다 .
박사논문을 끝내고 하고 있는 첫 사업은 중앙자원봉사센터에서 기록 수집 현황을 조사하고 기능을 설계하는 일이다 . 이 외에 위안부 기록 수집과 관련한 ISP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 미정이지만 서울기록원에서 하는 ‘ 관계의 수집 ’ 이라는 평가 기준 설계 사업에도 참여하게 될 것 같다 .
프로젝트를 하는 중간에 ‘ 다 접고 관두고 싶다 ‘ 는 생각을 한 경험이 있다면 ? 첫 번째는 사람이 힘들 때였다 . 주관 기관도 있지만 내부 팀워크가 힘들 때가 정말 힘들다 .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의 사람들과 함께 연구를 해야 하는데 , 사람마다 성향과 배경이 다르다 보니 서로 맞춰가기가 쉽지 않다 .
두 번째는 공공기관 담당자들의 업무 협조가 안될 때이다 . 예를 들어 수집을 하려면 지침이라도 있어야 하고 기증 협약 등을 맺어야 하는데 그런 일에 대한 백업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
마지막으로는 주관 기관에서 과업의 내용을 잘 모를 때이다 . 과업은 넓고 금액과 기간 은 한정되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산출물을 얇고 넓게 쓸 수 밖에 없는데 그 때에는 내가 일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
공무원으로서 기관에서 일을 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나 ? 일하기 힘든 상황이 있을 때 그렇다 . 연구과제에 대해 이해도가 떨어지는 담당 공무원에게 소위 갑질 등을 당할 때 .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 어디든 다 치열하고 힘이 드니까 . 그리고 실무경험이 없다보니 가끔 실무를 해보면 좋지 않을까 ,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 내가 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도전해 볼 의향은 있다 .
인터뷰 당일, 강의를 마치고 온 그의 가방 속에 있던 물건들.
지금까지 했던 연구 프로젝트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업을 말해준다면 ? 결과에 대해 스스로 충분히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거나 . 충분히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업은 없다 . 항상 부족했다 . 다만 2010 년에 처음 했던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업이 제일 기억이 난다 . 너무 아무것도 몰라서 코끼리 뒷다리 잡듯이 더듬어 가며 일을 했는데 훌륭한 책임연구원들을 많이 만나서 함께 일하게 되어서 좋았다 . 지방에서 공부를 하다 올라왔기 때문에 책이나 논문에서만 보던 선생님들과 함께 일하고 연구 할 수 있었고 , 많이 배웠다 .
처음으로 PM 을 맡았던 바둑 아카이브 사업도 기억이 난다 . 업무를 조정하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많이 배웠다 . 작년에 했던 평창동 문화예술아카이브 수집 사업도 힘들었다 .
기관에 속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 – 프리랜서 컨설턴트 – 에 대해서 ‘ 편하겠다 ‘ 고 생각하는 시선이 있기도 하다 . 실제로는 어떤지 궁금하다 . 일장일단이 있다 . 자유롭게 시간을 배분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점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은 좋다 . 그러나 항상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 늘 새로운 기관에서 컨설팅 요구를 받기 때문에 긴장감이 있고 , 전문성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끊임 없이 공부하거나 트렌드를 찾고 우리 분야에 적용해야 한다 . 나의 전문성을 보여줘야 계속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부담감도 힘이 들 때가 있다 .
수입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한 점들도 있다 . 연구에만 집중해야 하는 시기도 있기 때문에 . 그래서 안정적 기반 하에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 포닥이라던지 . 그리고 내가 속한 명확한 조직이 없다는 점들도 좀 단점이다 .
몇 년 전부터 강의를 시작했는데 , 강사로서의 일은 어땠는지 ,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떤지에 대해 듣고 싶다 . 강의를 시작한지는 4 년 정도 되었다 . 첫 강의를 준비할 때에는 정말 힘들었다 .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도 했고 . 그 동안은 교육원 강의를 하다가 올해 박사를 졸업하고 난 후 처음으로 대학원 강의를 하게 되었다 . 나도 과목에 대해 공부하면서 , 강의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내가 내용을 소화하지 않으면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다 .
대학원과 교육원은 강의하는 방식 , 과목 , 분위기 등이 어떻게 다른가 . 교육원과 대학원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 교육원은 1 년 과정으로 코스웍이 짧고 , 시험을 봐서 전문요원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분명하기 때문에 , 아무래도 시험을 대비하는 강의가 되는 편이다 .
하지만 석사과정 수업은 함께 기록관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 우리의 목표의식이 뭔지 ,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 나의 시행착오를 함께 공유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더 심도있게 하게 된다 . 연구자로서 우리의 공부가 부족하다던지 . 그래서 대학원 수업이 더 편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
평소에 내가 하는 연구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얘기한다면 첫 번째는 퀄리티다 . 연구의 내용이 있어야 한다 . 두 번째는 기한 내에 완성하는 것 , 그리고 세 번째는 마음 . 기계적으로 자기복제하지 않고 의미 있게 일을 하는 것 . 나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
연구원으로도 , 연구 책임자로도 모두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다 . 연구를 직접 하는 입장에서 , 그리고 총괄하는 입장에서 ‘ 일을 잘 한다 ’ 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평소에 내가 하는 연구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얘기한다면 첫 번째는 퀄리티다 . 연구의 내용이 있어야 한다 . 두 번째는 기한 내에 완성하는 것 , 그리고 세 번째는 마음 . 기계적으로 자기복제하지 않고 의미 있게 일을 하는 것 . 나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기한을 잘 지키는 것이다 . 일을 하는 과정에서 연락이 안된다는 등 해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과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 . 일은 미숙할 수도 있고 , 퀄리티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 이건 배우면 된다 . 못하겠는 일이나 상황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데 , 잠수하거나 일을 떠넘겨서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 .
나이와 무관하게 , 기록학계의 성장이력으로 본다면 본인은 현재까지 이 커뮤니티의 중간세대라 할 수 있다 . 처음 학계에 들어올 때와 지금 느껴지는 차이가 있다면 ? 일단 내가 변했다. 나도 처음에 기록학 공부를 시작할 때 공무원이라는 직업 때문에 선택했지만, 점점 더 이 분야가 기능화되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는 연구직인데, 공공기관을 비롯해서 어디에서든 ‘관리’ 위주의 사고를 하지, 연구를 하고 있지는 못하다. 소속된 곳에서 일할 때 각자의 의미들을 찾아나가면 좋겠다.
그리고 연구자의 풀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어딘가에서 기록관리 컨설팅을 요청 받았을 때, 연구를 함께 이끌어나갈 연구자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각자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테니까.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기록공동체와 기록학 대학원 / 교육원에 입학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예전에 내가 기록학에 들어올 때만 해도 이쪽 업계가 블루오션이라고들 했는데 , 요즘은 레드오션에 가깝다 . 그래서 취업만을 바라보고 들어오는 학생들은 한 번 쯤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
이미 시작 한 사람들에게는 “ 공부를 열심히 하라 ” 고 말하고 싶다 . 우리는 학 부과정이 없으니 석사과정이 공부의 시작이지 않나 . 필수과목에 한해서라 도 치열하게 ,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 졸업 후 기관에 전문요원으로 들어가면 전문가로서 일을 해야 하니까 . 기록연구직렬이 기관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해 주었으면 한다 .
그리고 전문연구자가 점점 많아져 함께 ,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각주2. 송영랑 선생님 답변 (전체 인터뷰 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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